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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an 06. 2023

공대 남자 VS 법대 여자

"세상에 관심이 있는 만큼 상식이 쌓인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할 때의 이야기다. 직장인인 우리는 금요일 저녁에 만나 주말 내내 붙어 다녔다. 1년 간의 연애 후에 결혼한 지 벌써 8년 차가 되었지만, 연애 시절에는 서로 불같이 사랑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는 금요일 저녁 천호동 횟집에서 술을 한잔 기울이며, 서로의 사회생활 고단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참이슬 후레쉬였고, 아내는 그 시절에 유행하던 '자몽의 이슬'을 잔에 담았다. 그리고는 잔을 부딪치며 우리의 사랑스러운 눈빛도 함께 부딪쳤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회포를 풀고 있던 중 각자의 대학 생활 얘기가 나왔다. 아내가 말했다.


"나는 과생활을 거의 안 했어. 입학하자마자 공무원을 준비하기로 결심했거든..."


나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나도 과생활 안 했어. 군대 가기 전엔 동아리 활동하고, 제대하고는 학점 복구하느라 정신없었거든..."


그러다가 아내는 나에게 잔을 따라주며, 시험하듯 물었다.


"학교 수업을 잘 안 들어서 과에서 기초적인 것 밖에 못 배웠어. 삼권분립이 뭔지 알지? 그런 것들 말이야."


삼권분립이라는 용어를 중학교 수업시간에 잠깐 들은 듯해서 익숙했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대답은 하고 싶었다.


"아, 삼권분립 들어봤는데... 사법... 뭐 그런 거 아냐?"


아내는 충격을 받은 듯 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뭐, 비슷한데... 진짜 몰라?"


나는 알고는 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듯이 변명하며 답했다.


"아, 그거 중학교 때 배웠는데, 안 써먹으니까 까먹었다."


아내는 어떻게 까먹을 수 있는 건지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입법, 사법, 행정으로 국가 권력을 나눈 거잖아. 상식인데..."


아내의 실망한 표정을 눈치챈 나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까먹고 있었네. 그러면 페트병이 왜 페트(PET)인지 알아? 이것도 어찌 보면 상식이거든."


나도 당할 수 없다는 듯 대학 시절에 배웠던 재료공학의 기초적인 내용을 억지로 꺼내 물었다. 그러나 아내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건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잖아... 하지만 삼권분립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상식인데..."


그 얘기를 들으니, 내가 배운 교육이 통째로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것 같았고, 기초 상식도 모르는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격양된 목소리로 답했다.


"삼권분립을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고, 난 내가 배운 걸로 지금껏 잘 살아왔는데!"


아내는 그때서야 본인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사실은 좀 충격이라서 놀란 것뿐이야. 이제라도 알면 됐지 뭐...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나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아무 말 없이 소주잔을 한 번에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아내는 내 눈치를 보며 살짝 입술에 잔을 갖다 대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서 그런가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이뻐 보여 마음이 좀 풀리는 듯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런 사소한 갈등은 사랑의 힘으로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 수 있구나라는 것을 말이다.


  이 사건이 있은 이후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약간의 태도 변화가 있었다. 말 많은 법대 여자였던 아내는 본인이 생각하던 상식 선에 대한 것이 각자가 배워오고 관심 있는 영역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듯해서 더 이상 이런 상식 테스트 같은 질문들은 하지 않았다. 그냥 본인이 아는 것을 자연스레 풀어놓는 것에 집중했다. 나도 이러한 태도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복잡한 세상을 효율적으로 살아가려면 인간은 분업을 해야 하고, 분업화된 인간들이 그 과정에서 알아가는 삶은 각자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 상식은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을 테지만, 그 기초 상식의 선은 누가 판단하고 규정하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말 없는 공대 남자였던 나는 서점에서 기초 상식에 관련된 책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때 당시 유행하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그 시절 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는 억지로 삼분의 일 정도를 읽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 필요를 느끼고 그 분야에 관심이 있어야만, 알게 되고 까먹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관심이 있는 만큼 상식도 쌓이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난 좀 더 세상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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