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제일 자신 없는 경제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나는 항상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제적'이지 못한 것에 스스로 죄책감이 있었다. '경제적'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내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한 일을 통해 번 돈을 쓸 때 쓰고, 쓰지 않을 때 쓰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쓸 때와 쓰지 않을 때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개인의 경제적 관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영위하는 데 사용하는 돈은 써야만 하는 것이지만, 그 의식주에도 자신이 번 돈 중 얼마만큼의 양을 투입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게다가 의식주 중에 '의'에 비중을 높일 수도 있고, '주'에 비중을 높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써야 할 때가 동일하더라도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는 지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 말고도 써야 할 때는 많다. 보험, 의료비, 건강, 육아, 적금, 재테크 등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취사선택 가능하지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경제인이라면 대부분의 고정비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돈을 쓰지 말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 이 부분이야 말로 개인차가 클 것이다.나는 개인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쓰는 돈이 제일 아깝다. 또한 로또를 사는 것, 시험을 한 번에 붙지 못해서 쓴 재시험 비용, 부주의로 인해 가전, 가구가 파손되었을 때 드는 수리 비용 등이 있다. 쓰지 말아야 할 때 안 쓰는 것만 잘해도 돈이 줄줄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살아가다 보면 이 또한 쉽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돈이 아까워서 카드를 쥔 손이 벌벌 떨리더라도 어쩔 수 없이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은근히 많이 부딪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스스로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써야 할 때 쓸 돈의 비중 조절이 어리숙하고, 쓰지 말아야 할 때 굳게 마음먹지 못해서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이렇게 경제적으로 취약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을까? 스스로 고민해 보니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이유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부모의 영향
아무래도 기본적인 경제적 관념은 부모로부터 이른 시기에 물려받는 경향이 크다. 학교에서 돈의 쓰임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이 없기 때문에 학창 시절부터 부모를 지켜보면서 스스로 부모의 경제적 관념을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중, 고등학교 때는 그런 영향성의 차이를 분별하기가 어렵다. 그 와중에도 특별하게 세뱃돈이나 용돈을 모아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사는 친구가 주변에 어쩌다 한 명씩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사귄 동기들의 경제적 관념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집안의 자산 차이가 나타나고,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발적인 공부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확연하게 다른 길을 가는 친구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대학을 진학하고는 등록금이 아까운 줄 모르고 수업을 땡땡이치고, 방학 때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수중에 돈이 생기면 무엇을 사야 할까만을 고민했었다. 내 부모님은 IMF로 집안이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나서 열심히 일을 하셨지만 빚을 갚느라 하루하루 허덕이셨고, 돈을 모으거나 불리는 일은 생각조차 못하셨다. 나는 이를 보고서 '돈은 모아서 굴리는 것'이라는 관념 자체를 갖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본 내 동기들은 달랐다. 부모에게 받은 용돈으로 미국 주식을 시작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그때 주식 계좌도 없었다. 다른 동기는 학기 중에도 과외를 여러 개 뛰어서 아르바이트로는 만질 수 없는 큰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나는 술집, 노래방, 주차도우미 등 방학 단기 알바만을 찾아다녔고, 번 돈은 쓰기 바빴다. 또 다른 동기는 매일경제 신문을 사서 읽는 취미가 있었지만, 나는 핸드폰으로 웹툰 보는 취미가 있었다. 궁극적으로 대학교 초반에 생긴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겠다. 대학 초기의 경제적 관점의 차이는 점차 사회인이 되어서 크게 벌어지게 될 것이므로, 부모로부터 이런 경제적 관념을 물려받지 못했다면 대학교 시절부터는 경제적 습관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야만 했다.
선천적인 기질
그렇다고 부모 탓만 할 수 있을까? 내 안에도 경제적이지 못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회사에서 만난 지인들 중에는 정말 경제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과 얘기해 보면 물론 꾸준히 노력한 것도 있겠지만 돈 계산에 엄청나게 능숙하다. 금리에 따른 이자를 암산하고, 환율에 따른 달러를 산출해 내며,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돈을 버는지 훤히 꿰고 있다. 일도 바쁜데 어떻게 이런 경지까지 올랐는지 신기해서 물어보면, 취미로 또는 재미 삼아 공부했다고 답한다. 애초에 이들은 이런 경제 활동에 흥미를 많이 느끼고 있는 듯했다. 상대적으로 난 이런 돈 계산과 투자를 앞두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는데 말이다. 심지어는 가계부조차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다. 또 다른 이들은 가성비에 철저하다. 여행을 갈 때도 항공권 최저가를 척척 찾아내는가 하면, 렌트가가 싼 곳도 쉽게 알아낸다. 양이 푸짐하면서 가격이 싼 맛집 찾는 것을 즐기고, 커피도 천 원짜리 저가 커피만 마신다. 스스로 돈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아주 작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하다. 반대로 나는 이런 가성비를 찾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고 여긴다. 최저가를 찾는 일은 너무나 귀찮고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관념도 박혀 있어 가격이 싸면 의심부터 하고 주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니 내 돈이 빠져나가는 구멍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포기의 영역
앞서 말한 이유들로 나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사회에 진출한 이들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졌다는 상대적인 패배 의식이 존재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을 때 학자금 대출 2천만 원이 통장에 마이너스로 찍혀 있었다. 누구는 월급을 모아서 사회 초년생부터 재테크를 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대출금 갚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결혼을 할 때도 양가 부모님들의 지원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겨우 전세 대출을 받아 구한 신혼집은 1.5룸의 빌라였다. 아무리 맞벌이를 해서 돈을 벌어도, 이미 탄탄하고 안정된 환경을 갖춘 주변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에 허탈함을 느꼈다. 특히나 최근 집값이 치솟을 때는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기질적으로 환경적으로 경제적 관념이 뛰어난 것도 아니어서 열심히 남들을 따라잡으려 경제와 투자 공부에 전념해도 항상 모자라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나에게 경제는 될 대로 돼라 식의 포기의 영역이 되어버려서, 이럴 바에 우리 가정의 전반적인 경제는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그냥 돈이라도 열심히 벌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내도 딱히 경제적으로 뛰어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보단 나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고 있다.
내가 남들보다 경제적이지 못한 것에 대한 이유이자 변명을 앞서 주절주절 써봤지만, 결국 그 이유는 나 스스로에게 있다. 부모에게 경제적 관념을 물려받진 못했지만, 그럴수록 빠르고 기민하게 미리 경제 공부를 했어야 했다. 대학교 초반에 다른 동기들에게 경제관념의 차이를 느끼고 이때부터 동기들을 따라 하고자 스스로 좀 더 노력했다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선천적이고 기질적으로 계산이 느리고 물질적으로 취약하다면, 귀찮더라도 좀 더 가성비를 따져보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경제에 능숙한 지인들에게 달라붙어 배우려고 노력했다면, 지금 나는 내 명의로 된 집에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패배의식으로 인해 스스로 경제적 성장을 포기하기 전에 남들을 따라잡으려 애쓰지 말고, 남들이 나와 비슷한 처지일 때 무엇을 했는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이미 저 멀리 가버린 마라톤 선수를 쳐다보지 말고, 아내와 이인삼각으로 달리며 하나씩 내딛는 발에 정성을 다했다면, 보다 좋은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 있지는 않았을까? 결국 내가 경제적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만 남게 되었다. 그래도 변명을 쭉 정리해 보니 경제적으로 나아갈 방향이 나오긴 한 듯해서 경제 공동체인 아내에게 이 희소식을 빨리 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