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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an 17. 2023

공무원의 편견을 깨다

"한 가정의 가족이자 사명감 있는 사회 구성원일 뿐"

  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어떠한 편견 같은 것들이 있었다. 대학교 3학년이 막 지나는 시점에 졸업하고 자기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공무원이 되겠다는 친구에게 나는 의문이 생겼었다.


"비싼 대학 등록금 다 내놓고 전공 배웠는데, 취업해서 써먹어 보는 게 좋지 않아?"


토목공학과였던 그 친구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때라 전공을 살려 취업을 준비하는 것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더 빠를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타지 생활에 지쳐서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친구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지금껏 쌓아온 전공 지식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나의 젊은 시절의 패기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어쩔 수 없는 대안 중에 하나라고 여겼다. 그만큼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볍게 보았다. 결국 그 친구는 1년 수험생활을 하고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다.


  나는 군대를 전투경찰로 다녀왔다. 경상도 지역 경찰서 112 타격대에 소속되어 군 생활을 보냈다. 경찰서에 있다 보니 경찰공무원들의 업무상을 속속들이 가까이서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일경 때 행정직으로 배정받아 사무실에서 경사 한 분과 경위 한 분과 함께 1년 이상을 일했었다. 15년 이상이나 되시는 분들을 모시고 일하다 보니 답답한 일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간단한 컴퓨터 문서 작업도 잘 못해서 나에게 부탁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분들을 보며 이렇게 일해도 월급을 따박 따박 받아가는 것에 나도 전역하고 경찰공무원 준비를 해야겠다는 유혹이 꽤 컸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비싼 등록금 내고 전공 공부한 게 아까워서 써먹을 수 있는 곳에 취업하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회사를 다녀보고 정 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경찰공무원 준비해서 철밥통으로 눌러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전경으로 전역하면 경찰공무원 시험에서 가산점도 있어서 유리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도전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 순경이 된 내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근직 중에서도 전, 의경을 관리하는 일은 너무나 편한 업무 중 하나였고, 나는 그들의 일의 아주 작은 구석만 보고 전체를 판단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사기업에 11년째 목이 메어있다.


  나는 공무원이라고 하면 회사에서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없거나, 오래도록 안정적으로 편하게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살짝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들은 정보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러다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민간 기업은 능력이 모자라거나, 조금만 나이가 차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파리 목숨처럼 회사에서 팽 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가 그만두지 않으면 정년까지도 다닐 수 있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에 올랐다. 회사 선배들을 보더라도 선생님이나 공무원들과 결혼한 사람들이 더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서 은연중에 배우자로서 공무원은 꽤 괜찮은 직업인 것 같다는 생각의 전환을 갖게 되었다.


  한창 연애사업에서 방황을 하던 중 같이 놀던 친구 한 녀석이 자기 대학교 친구 중에 여자 동기가 있는데 그 동기의 친구들과 3:3으로 미팅을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러고는 나머지 두 명의 여자는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방황이 길어지며 노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나는 공무원이 나온다는 말에 솔깃해서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뭔가 공무원 여자친구가 생기면, 결혼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김칫국을 냄비 째 마시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두 명의 공무원 중 한 명과 연애를 하게 되었고, 1년 반을 사귄 끝에 지금의 아내가 되어서 7년째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 아내와 살아가다 보니, 내가 지금껏 갖고 있던 공원의 환상과 편견들이 깨지는 순간을 많이 겪는다. 저 편하고 안정적이라는 환상부터 사라졌다. 퇴근시간이 생각보다 불규칙하고, 주말에 지원 업무로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게다가 퇴근시간이 지나도 윗사람이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퇴근시간에 윗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메일로 보내놓거나 다음날 아침에 보고하면 될 텐데 굳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게 엄청나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공무원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일만 한다는 편견도 깨졌다. 물론 맡은 업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답이 없는 사회적 제도 개편과 공공의 구성원들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굉장히 어려운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속한 민간기업처럼 확실한 목표인 회사가 돈을 버는 일에 모두가 몰입하고 있다면, 공무원은 이런 확실한 목표보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조율해 가며 더욱 발전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의 목표로 일한다기 보단 각자가 필요한 곳에서 조금씩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 있기에 일하는 티가 잘 나지 않는 듯하다. 어쨌든 난 공무원이 하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공무원은 승진에 욕심이 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아내조차도 승진이 누락되었을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분하고 억울한 심정이라고 나에게 토로했다. 공무원은 호봉에 따라 거의 받는 월급과 수당이 정해져 있고, 잘 나가는 사기업처럼 성과급이 빵빵 터지며 억대 연봉을 바라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본인의 연봉이 얼마인지에 관해 목메지 않는다. 그래서 공무원은 더욱 승진에 몰입하는 듯하다. 사기업도 물론 승진하면 연봉도 오르고 좋겠지만, 한편엔 승진을 빨리하면 빨리 잘리는 건 아닌가 걱정도 생긴다. 하지만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빠른 승진을 이뤄도 잘릴 걱정이 없고, 권력도 크게 높아진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승진에 많은 몰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누적되어 온 공무원이란 직업의 편견을 깨는 일은 어렵지 않다. 스쳐가는 경험과 소문으로 듣는 정보만으로 어떠한 것에 너무나 견고한 벽을 쌓아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금만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면 우린 스스로 쌓은 벽 너머의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본인만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자연스레 쌓여 있을 테다. 나는 아내를 통해 이것들을 깰 수 있었지만, 여러분도 주변에 있는 공무원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조금은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다. 그럼 그들도 단지 한 가정의 가족이라는 것과 그들만의 진정한 직업의 사명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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