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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Feb 03. 2023

개근상이 어쩌다 개근거지가 되었나?

"그래도 그때 그 추억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1994년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난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러고 나서 2학년을 다니던 중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때의 어린 난 이유를 몰라도 그러려니 넘어갔고, 어느 정도 커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국민학교의 의미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잔재로 일본 국왕의 국민이 다니는 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1995년 8월 광복 50주년을 맞아 국민학교를 초등학교 바꿔서 부르기로 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학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는 철저한 원칙이 있으셨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자라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방끈이 짧았다. 아버지는 3남 2녀의 막내셨고, 어머니는 1남 4녀의 막내셨다. 아마도 두 분 다 막내이다 보니 언니나 형을 따라 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은 큰데, 조부모님이 쉽게 보내주진 못하셨을 테다. 그 한이 남아있었을. 자식인 나에 엄격한 잣대로 학교는 지각도, 결석도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다행인 건 내가 학교 가는 걸 좋아했다는 것이다. 외동인 나는 친구들을 만나러 학교에 가는 걸 늘 기대했다. 수업도 나름 잘 따라서 선생님이 이뻐해 주셨다.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고, 체육대회나 소풍, 수련회 등 여러 가지 활동들로 난 항상 설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은 감기였는지 독감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몸이 너무 안 좋았다. 엄마에게 몸상태를 얘기하면 학교에 가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말할 것 같아서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좀 이상하다고 느끼셨는지 학교에 가서 몸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선생님께 말하고 조퇴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당시에 조퇴가 세 번이 모이면, 결석 한 번에 해당되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간 나는 친구들과 뛰어놀진 못하고, 주로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겨우 겨우 수업을 모두 끝내고 나서 마지막 선생님께 인사하는 시간에 나는 결국 자리에서 토를 하고 말았다. 참고 참다가 막판에 터져버린 것이다. 선생님은 당황하셨지만 바로 나를 집으로 보내셨다. 집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한 건지 아침에 일하러 간 엄마는 미리 집에 와 계셨다. 내 상태를 자세히 살피시고는 병원에 데려간 후 하루 종일 나를 돌보셨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아침에 난 어김없이 등교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졸업할 때까지 난 이런 식으로 조퇴 없이 무려 12년 동안 개근을 했고, 매 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개근상을 받았다. 나는 이 개근상을 학교 생활의 성실함의 지표로 믿고 자랑스레 여겨왔다. 그러다 최근 '개근거지'라는 용어를 듣게 되었다. 회사 선배가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데, 요즘엔 개근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는다고 말했다.


 "너, 현장학습도 한번 신청 안 하고 해외도 한 번도 안 나가봤다면서? 완전 개근거지네!"


이 말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어떻게 저런 말을 쓸 수 있었을까? 아마도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를 무분별하게 습득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어쨌든 난 개근상이 개근거지가 되어버린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요즘엔 개근하면 상장이라도 주는지도 모르겠다.



  성실함과 모범의 대명사인 개근상의 이미지가 추락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현장학습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학교 수업 참여가 유연해진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적인 분위기 인식 자체도 꼭 학교에 가야만 배움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공교육의 권위가 무너지고 사교육 시장은 더욱 부흥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시대적 변화가 개근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다. 그렇다고 개근을 꼭 혐오의 표현인 거지라는 단어를 덧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개근의 이미지가 바닥을 쳤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거지라는 표현은 결국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빈부격차의 갈등을 조장하고, 상대적으로 자본 여력이 없는 이들을 싸잡아 조롱하는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조어 '개근거지'라는 용어가 무분별하게 초등학교까지 유입되면서,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부모의 자산 격차를 인식시켜 서열을 가르고 누군가는 좌절을 맛보게 하였다. 이런 인식이 팽배해진다면, 아마도 개근을 한 학생과 그의 부모는 씁쓸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될 테다. 성실함의 표본이던 개근도 결국 돈의 힘에 굴복된 지금 상황이 12년 개근을 자랑스러워 한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다. 점점 더 돈이 전부가 되는 세상에 살면서 나는 결국 돈을 좇고, 또 그것을 인정하고야 마는 자신에게 애써 과거를 추억하며 위로를 건넬 뿐이다.

그래도 당연하듯 매일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떠들며 놀던 그때 그 시절이 내 삶에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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