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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an 23. 2023

나는 이혼하기 싫어요

"뜨뜨 미지근하게 쭉 가봅시다!"

  아내와 결혼한 지 7년 차가 되었다. 이제 신혼이라 부르기엔 어색한 부부 사이가 되었지만, 정부의 신혼부부 특별분양에서 인정하는 신혼부부는 7년 이내라고 하니 딱 마지막 연차의 신혼부부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 부부는 7년간 살아오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나름대로 도 많이 들었다. 사실 낯 부끄러운 사랑보다는 따뜻한 정으로 살아가고 있고, 요즘엔 육아 동반자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주변 얘기를 들어봐도 대한민국 현실 부부는 보통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건 요즘 이혼율이 거의 절반에 가깝다고 하는데, 내 주변 회사 동료나 친구들 중에서 이혼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혼을 고민하던 사람들은 몇몇 있었지만, 누구나 그렇듯 심하게 싸우고 나서 생긴 열병 같은 거라 여겼다. 왜냐하면 나도 아내와 심하게 싸우고 나면 실제로 이혼까지도 고민하고 상상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혼에 대한 생각만 할 뿐이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아내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했고, 아버지 밑에서 1년 정도 있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서 성인까지 쭉 함께 살았다고 했다. 아내는 아버지와는 연을 끊고 지금까지 살고 있기 때문에 난 장인어른이 없고, 장모님만 계신다. 이보다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긴 했지만, 아내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정신적 스트레스는 내가 감히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치열하게 싸우셨지만, 이혼 서류에 도장까지 찍지는 못하셨다. 지금은 이제 서로 둘 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더욱 오순도순 잘 살고 계신 듯하다. 어쨌든 아내는 이혼에 대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떠한 기준 같은 것이 있었다. 매번 나에게 주입시키는 얘기는 이렇다.


"우리가 이혼하게 되는 사유는 딱 세 가지가 있을 거야. 첫 째는 폭력, 둘 째는 바람 그리고 셋 째는 도박이야. 이 세 가지만 지킨다면 우린 이혼하지 않고 평생 잘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나는 아내의 이런 이혼에 대한 확고한 지론을 듣고는 납득할 만한 얘기라고 여겼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겨 아내에게 물어봤다.


"근데 이혼 사유로 가장 많이 나오는 게 성격 차이라고 하던데...? 성격이 안 맞으면 이혼할 수 있는 거 아냐?"


아내는 별 대수롭지 않은 질문인 듯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다.


"우리 둘 중에 누가 정말 또라이가 아닌 이상 성격은 그냥 맞춰 가는 거라고 생각해. 성격 맞아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1년 이상을 연애하고 서로 좋아서 결혼까지 결심했으면 그 정도는 서로 참고 살아야지."


아내의 단호한 말에 나는 또라이인지 아닌지 살짝 고민을 했지만, 아내가 지금까지 내 곁에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아닐 확률이 높다는 생각을 했다. 반대로 내가 아내를 또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없었다. 그럼 대략 결론이 나왔다. 우리 둘 중 하나가 폭력, 바람, 도박을 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이혼하지 않고 쭉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내 주변엔 잘 없지만 요즘에 이혼이 유행인 듯하다. 난 한 번도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방송에서도 '결혼지옥'이나 '우리 이혼했어요'와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현실 부부의 갈등과 이혼을 다루고 있고, 브런치에서도 이혼을 다루고 있는 에세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 이혼을 고민했었거나 지금도 고민이지만, 그냥저냥  참고 살아가고 있는 부부들의 갈망을 대신 풀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앞서 얘기했듯 나도 이런 고민을 안 한 게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지만, 시간을 들여서 볼 정도로 이혼에 대한 갈망이 심한 건 아니어서 방송이나 에세이를 챙겨보진 않았다. 우려스러운 건 안 그래도 높은 이혼율이 유행하는 미디어들로 인해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각만 하고 있던 사람들이 방송을 보거나 글을 읽고선 마음속 한 구석에 담아 놓았던 이혼을 끄집어내어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아내에겐 비밀이지만, 나도 이혼해서 글을 쓴다면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를 잠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난 결국 실천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안다. 왜냐면 지금 난 아내와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말했듯 폭력, 바람, 도박을 할 생각도 없고,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갑자기 또라이가 될 일도 없으니, 우리는 쭉 이렇게 뜨뜨 미지근하게 살아가야 하겠다. 게다가 우리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네 살 딸이 있으니 더욱 그렇다. 아내도 우리 아이에게까지 자신의 아픔을 전해주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뜨뜨 미지근한 관계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뜨거워서 데거나 너무 차가워서 소름이 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안정적이고 평온한 가족 관계 속에서 우리 아이의 정서가 긍정적으로 자리 잡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부부 관계도 더욱 단단해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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