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난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일을 좋아했었다. 그러다 보니 학창 시절 정답이 확실하게 있는 수학이란 과목이 마음에 들었었다. 문제를 풀어가다 보면 확실한 숫자로 답이 나오는 것은 나에게 희열을 안겨주었다. 국어와 같은 과목처럼 말이 이리저리 꼬이고, 문장 속 단어 하나로 정답이 바뀌어 버리는 것을 찾아내는 일은 내 적성에 맞지는 않았던 듯싶다. 대부분 이렇게 적성에 맞춰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게 되고, 난 당연하게도 이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고 한 결정이었지만, 공부를 특출 나게 잘했던 것은 아니어서 의대를 진학할 생각은 못했다. 나와 같은 대부분의 이과 학생들은 자연스레 공대로 빠지게 된다. 물론 자연대라고 해서 학문적으로 수학, 화학, 생물학을 깊게 배우는 과정이 있긴 한데, 그때 당시에 취업을 걱정해야 했던 사람들은 자연대를 좀 꺼려했었다.
운이 좋게 내 성적보다 나은 대학의 공대에 진학했다. 공대에 가서 과를 선택하고 나니까 이제 정말 정답과의 싸움이었다. 수많은 공식으로 무장하여 A4 한 페이지를 숫자와 기호로 가득 채우게 되면, 답은 결국 0 또는 1이었다. 적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을 공들여 문제 풀이를 했는데, 저런 식으로 답이 나와버리면 틀렸을 때 맥이 쫙 빠져버린다. 그래도 답이 확실하니까 그 뚜렷한 목표만을 쳐다보며 달려가는 게 재미있을 때도 있었다. 이렇게 대학교까지는 정답이 확실하게 있는 문제를 접하는 경우가 많았고, 모든 문제엔 정답이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다가 취업을 하는 동시에 큰 벽에 부딪친다.왜냐하면 공학적 지식으로 해결할 만한 정답에 가까운 업무만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정해진 답이 없다는 생각에 혼란을 느꼈지만, 원래 사람이 하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 자체가 정답이 없다. 학창 시절 지속적으로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을 요구받은 모범생들, 특히 나와 같은 공대생일수록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보다 늦게 알게 되는 듯하다. 나만의 틀에 갇혀서 인생의 정답을 찾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내 주변 사람 중 여러 글을 읽거나 커뮤니티 활동을 꽤 한 공대생이라면, 이르게 현실을 파악하고는 다양한 길에서 본인만의 길을 잘 찾아내는 것 같았다. 인생에 정답 같은 건 없으니까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러 번 시도하고 실패해 보면서 점차 스스로의 인생을 깨닫고 있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내가 원하는 길을 찾는 데 있어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독서가 매우 중요한 행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글쓰기 또한 나를 찾기 위한 쓸모 있는 행위 중 하나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으니 따라서 글쓰기에도 정답이 없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인생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온 삶에서 형성된 생각과 견해들을 글로 풀어내는 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도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괜히 글을 써서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오해하거나, 욕을 하면 어쩌지?'라는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보다 글을 써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판단 하에 나는 결국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내 생각을 정리한 글에 반박하는 의견이 있거나 악플이 달린다면, 내 글이 정답이 아니니까 당연하게 따라올 수밖에 없는 반응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반대로 내가 읽고 있는 글도 정답이 아니라는 비판 의식을 갖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글쓰기를 도전하는 게 조금은 더 쉬워지는 듯하다.
일단 부담 없이, 막무가내로 글쓰기를 시작해 보자. 이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본인 인생을 가두고 있던 틀이 깨져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일단 내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시도가 가장 중요하고, 이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글을 수정해보기도 하고, 남들이 쓴 다른 글도 읽어보며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면 내가 쓴 글이 그저 다양한 생각 중에 하나일 뿐이고, 언제든지, 얼마든지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연습장 같은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 테다. 지웠다가 다시 쓸 수 있다는 마음가짐만으로도 글을 쓸 용기가 생긴다. 글이라는 게 그때 당시의 내 상황, 심리상태, 주변에서 들은 정보, 읽고 있는 책 등 글을 쓰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인자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내가 예전에 쓴 글이라도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스스로도 꽤 많다. 아마 이 글도 몇 달 지나서 읽으면 새로운 생각들로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당장 권위 있는 책을 내는 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꾸준히 습작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인생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특히나 살아온 삶동안 정답만을 찾아다니던 모범적인 공대 엔지니어에겐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의견일 뿐 정답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