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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an 31. 2023

난 반장 하기 싫어!

1996년, 초등학교 3학년 이야기

  나는 오늘 학교에 가기 싫었다. 평소 같으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친구들과 삼삼오오 수다를 떨며 등교를 했을 테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정말로 가기 싫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반장선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난 초등학교 2학년 3반의 반장이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난 친구들이 웃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이 웃으면, 내 마음도 덩달아 편하고 행복해졌다. 일부러 망가지고, 농담도 하고, 장난감으로 구연동화를 해주면 아이들은 까르르하며 목을 넘겨 웃어댔다. 이런 나의 선천적인 특성 때문일까 2학년부터 학교에 완벽하게 적응한 나는 반 친구들과 두루 잘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 반장 후보를 추천하는 날에도, 반장 선거를 하는 날에도 내 의지와는 별개로 어느 순간 반장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반장이 되니 기분은 좋았다. 본격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웃기고 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게 준 권한으로 아이들을 지휘하는 권력의 맛도 살짝 느낄 수 있었다.


반장이 된 날, 하교 후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는 곧장 집으로 왔었다. 통은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뛰어놀다가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왠지 그날엔 집에 일찍 오고 싶었다. 오후 2시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어두컴컴했다. 반지하 끝 방은 아무리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그 찬란한 빛이 당도하지 못하는 깊이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주인 가족은 1층과 2층 사이에 살고 있었는데, 현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스무 개가 넘는 듯했다. 나는 그 현관문까지 올라갈 일은 없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다섯 개 정도 있었는데, 바로 앞쪽 반지하 방은 나와 동갑인 여자애가 살고 있었다. 그 방을 지나서 안쪽 끝 방이 우리 집이었다. 둠 속에서 열쇠를 넣을 구멍을 겨우 찾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조그마한 부엌 겸 거실이 있었고, 들어와서 오른쪽으로 내 방이 작게 있었다. 딱 고시원처럼 1인용 침대와 컴퓨터 책상만 들어갈 수 있는 정도였고, 정면으로는 쇠창살이 쳐진 창문이 크게 있었다. 현관문을 마주 보고 화장실이 작게 있었고, 그 오른쪽으로 안방이 있었다. 안방은 내 방의 두 배쯤 되었는데 침대가 없어서 더 널찍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안방에서 주로 상을 펴고 앉아 식사를 했다.



  그날 저녁 6시 무렵 엄마가 들어왔고, TV를 보고 있다가 엄마에게 곧장 달려가서 당당하게 반장이 된 걸 자랑했다.


"엄마, 나 오늘 반장 됐어!"


엄마는 저녁을 차리면서도 약간 놀라는 눈치였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웃어주시며 답했다.


"우리 아들, 대견하네!"


나는 기분이 좋아어떻게 선출되었는지, 얼마의 표를 얻었는지, 친구들이 얼마나 축해해 주었는지를 구구절절 쏟아내었다. 엄마가 차려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 떠벌렸다. 엄마는 흐뭇하게 웃어주시면서 반찬을 내 숟가락에 올려줬다. 나는 그걸 또 입 속으로 아무렇게나 욱여넣으면서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날 저녁은 뭘 먹었는지 기억조차 없지만 너무나 달콤했었다.


  반장이 된 다음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반 친구들은 자연스레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반장으로서 하는 장난감 역할극은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까르르 웃었지만, 내 기분은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았다. 선생님이 오시고 수업을 진행하던 중에 갑자기 엄마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셨다. 양손 가득 무언갈 들고 계셨다. 나는 엄마가 일은 안 가시고 왜 학교에 오셨는지 의아해할 때쯤 엄마 양손에 들린 게 햄버거라는 걸 눈치챘다. 집에서도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햄버거를 반 학생 수만큼 사 온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던 듯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번에 반장이 된 우리 재훈이 어머니께서 간식을 사 오셨어요! 모두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하도록 해요."


"잘 먹겠습니다!"


나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공장으로 일하러 가던 엄마가 일은 어쩌고 학교에 온 것인지, 무슨 돈으로 한 번에 이렇게 많은 햄버거와 콜라를 산 건지도 궁금했지만, 바로 뒤돌아서서 종종걸음으로 학교를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차마 붙잡을 순 없었다.



  반장이라 불리는 게 익숙해질 때쯤 학교에서 단체로 63 빌딩 견학을 간다고 했다. 며칠 전 선생님은 반장인 나만 방과 후에 따로 불러서 조심스레 말하셨다.


"혹시 어머니께 우리 63 빌딩 견학 갈 때 함께 가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선생님께 알려줄래?"


나는 엄마가 공장 일을 쉬는 게 어렵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주저했지만, 엄마에게 얘기해 보겠다고 둘러댔다. 그날 저녁 엄마에게 가정통신문을 드리며, 63 빌딩 견학 얘기를 꺼냈다.


"엄마, 학교에서 63 빌딩 견학 가는데... 올 수 있어? 다른 반 반장 엄마들은 다 참석한대..."


가정통신문을 한동안 뚫어져라 보시던 엄마는 고개를 들고는 얇은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고 말하셨다.


"응, 아마 가능할 거야. 엄마가 시간 내볼게."


엄마 대답을 듣고 순간 안심을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63 빌딩 견학 당일에 나는 결국 엄마와 함께였다. 엄마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견학 내내 우리 반 애들을 챙기느라 나에게 눈길을 많이 주진 못했다. 엄마가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난 다음부터 반장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1년 후, 3학년 1학기 반장 선거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래서 난 오늘 학교에 가기 싫은 것이다. 친구들은 전날 어김없이 날 반장 후보로 추천했고 내 이름이 반장 후보 명단에 올랐다. 엄마에게 반장 후보에 오른 걸 조심스레 얘기했을 때, 엄마는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으셨던 것 같다. 나 또한 작년처럼 기뻐하지 않았다. 투표를 하기 전 반장 후보의 연설이 있었고, 난 아이들 앞에서 표정을 숨긴 채 말했다.

  

"난 반장하기 싫으니까... 나 뽑지 마."


아이들은 내가 나왔을 때 기대와 웃음을 보이고 곳곳에서 환호성도 들렸지만, 이내 내 표정을 따라 하듯 시무룩해했다. 나는 다시 표정을 숨기고 자리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앉았다. 결국 나는 반장에 당선되지 못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지만 한편으론 후련했다. 이렇게 내 학창 시절에서 반장이란 것은 없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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