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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Feb 15. 2023

공장은 내 놀이터

1993년 어느 날

   나는 어릴 적 미술 유치원을 다녔다. 부모님이 특별히 내가 미술에 소질이 있어 보여 미술 유치원을 보낸 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미술 유치원은 정말 미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도 아니었다. 그저 다른 유치원처럼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정도의 활동을 좀 더 했을 뿐이었다. 부모님이 날 그 유치원으로 보낸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의 일터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는 내가 더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하셨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이모가 살고 있어 한 살 터울인 사촌 형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이모도 일터로 나가셨고, 7살이 된 나는 처치 곤란이었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재훈아, 엄마 일하는 데 근처에 미술 유치원이 있대. 우리 거기 다니자.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엄마 일하는 곳으로 곧장 오는 거야. 알았지?"


나는 미술 유치원이라는 소리만 듣고 들떠했었고, 뒷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엄마를 바라보며 흔쾌히 답했다.


"응, 알았어!"


그렇게 난 미술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미술을 특별히 잘하게  건 아니었다. 왼손잡이인 나를 선생님이나 아빠가 오른손잡이로 키우려고 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열심히 무언갈 그리고 썼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삐뚤빼뚤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왼손잡이를 물려준 엄마는 나를 다독이며 미안해했다. 그런 엄마가 싫어서 난 더 열심히 오른손을 쓰려고 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난 뒤 어김없이 난 엄마의 일터로 곧장 향했다. 유치원이 2층에 있었고 1층으로 내려오면 바로 엄마 일터가 보였다. 나는 그리로 총총 걸으며 내 집 드나들 듯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엄마가 일하는 곳은 제지 공장이었다. 큰 아빠가 엄마에게 소개해 준 이 공장은 큰 아빠 아는 지인이 사장님이라고 했다. 큰 아빠도 제지 일을 하셨는데 그러면서 알게 된 사람인 듯했다. 그래서 내가 막 드나들어도 사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귀여워해 주셨다. 이 공장은 아주 소규모로 운영되었고, 종이를 떼 와서 파일철의 형태로 접고, 구멍을 뚫고, 종이를 고정하는 쇠로 된 클립 같은 것들을 붙여서 완성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가끔은 너무 심심할 때 나도 엄마 손을 거들어 종이를 접고, 모서리가 닳지 않도록 쇠로 된 기억자 패드를 끼우며 놀았다. 직원은 엄마를 포함하여 6명 정도 있었는데, 이 모든 일을 분업화해서 하고 계셨다. 다들 엄마보다는 스무 살 정도 많아 보여서 나는 아줌마와 할머니 중에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고민했었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웃으시며 그냥 아줌마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제지 공장의 인기스타였다. 엄마가 일이 끝나는 6시까지 난 이곳에 머무르며 아줌마들과 거리낌 없이 지냈다. 또한 공장 뒷마당에 폐지가 쌓여 있었는데 거기서 혼자 뒹구르며 놀았고,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근처 문방구에서 오락이 하고 싶어서 나는 일하고 있는 엄마를 졸랐다.


"엄마, 100원만!"


두, 세 번 정도 나에게 100원짜리를 건네주시던 엄마는 이제 돈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시무룩해했는데, 그걸 지켜보던 한 아줌마가 재롱 부리면 100원을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줌마들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고, 재주도 넘었다. 그렇게 받은 100원으로 문방구로 달려가 오락을 했다. 넣자마자 금방 게임이 끝나버려서 나는 힘들게 얻은 돈이 아깝다고 느껴졌 화가 나 오락기를 발로 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여자애가 내 뒤에서 웃어댔다. 누군가 싶어 자세히 뜯어보니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여자애였다. 나는 유치원이 끝난 지 꽤 지난 시간임에 혼자 근처에서 뭘 하는 건지 궁금했다.


"어?, 너 여기서 뭐 해?"


그 여자애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답했다.


"뭐 하긴, 혼자 놀면서 엄마 아빠 기다리고 있지!"


나는 그 애가 나와 같은 처지라 생각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재차 물었다.


"아, 그래? 엄마 아빠 어디 있는데?"


그 애는 우리가 함께 다니는 유치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엄마 아빠가 원장님이야. 정리하고 곧 나오신다고 했어. 넌 왜 집에 안 가고 여기 있어?"


잠시나마 그 애가 나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던 게 부끄러웠지나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거짓 변명을 해대기 시작했다.


"? 나는... 집에 있다가 오락하고 싶어서 잠깐 나온 건데?"


여자 아이는 고개 끄덕이고는 뭔가를 더 물어보려 하다가 엄마, 아빠가 나오는 걸 보고 나에게 인사한 후 유치원 쪽으로 신나게 달려갔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화목한 가족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한동안 쳐다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떨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엄마가 있는 공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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