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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Mar 07. 2023

엄마가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를 부르짖는 엄마

"IMF가 우리 집을 할퀴던 날"

  IMF가 터져서 나라가 위기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IMF가 뭔지 잘 알지 못했지만, 그 위력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집 근처에 아빠가 차린 사무실에 놀러 갔었다. 사무실이어 봤자 직원은 두 명뿐이었다. 어차피 학교가 끝나고 집에 있어도 혼자서 덩그러니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엄마가 다니시는 공장과 아빠 사무실을 왔다 갔다 했다. 사무실 한쪽 공간엔 창고가 있었는데 꽉 찬 박스들이 내 키보다 두 배정도는 더 크게 쌓여있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유리병이 있었고 어른들이 마시는 자양강장제라고 했다. 가끔씩 아빠가 박스들을 트럭으로 나르는 것을 보면서 그날은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 예상했고, 나는 그게 더 좋다고 생각했음에도 내색하진 않았다. 아빠는 어김없이 내게 말했다.


"아빠는 저기 멀리 거래처 다녀올 테니까 엄마랑 잘 지내고 있어."


그렇게 아빠는 한 번 트럭을 몰고 나가시면 2~3일 정도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시골에서 상경한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도 꾸역꾸역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계셨다. 하지만 IMF라는 나쁜 녀석은 결국 실낱같은 한 가정의 희망을 짓밟아 버렸다. 결국 1년 정도 운영하던 아빠 사업장은 빚만 남겨놓은 채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했다. 이때부터 아빠는 정상적인 날보다 술에 취해 있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당연히 아빠는 엄마와 다투는 날이 잦았다.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내 구석에서 이불 속에 들어가 베개를 귀에 감싸고 최대한 싸우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다가도 워낙 큰소리가 들려서 가끔씩 새어 들어왔는데, 그중 내 심장을 파고드는 엄마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엄마가 엄마를 울부짖고 있는 소리였다.



  엄마는 가끔 나에게 엄마 어렸을 적 얘기를 해주셨다. 이런저런 시골 얘기들이었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언니, 오빠들과 놀았던 얘기들이었다. 그리고 항상 배고팠었다고 얘기했었는데, 그러다가도 문득 엄마의 표정이 흐려지곤 했다. 엄마는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는 말씀하셨었다.


"재훈아, 엄마는 재훈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기억이 안 나... 엄마가 갓난아기였을 때 두 분 다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옆집 아주머니가 키워주셨어."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이 얘기를 들었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그렇게 일찍 돌아가신 건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더 물어보다가는 엄마가 너무나 슬퍼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1남 4녀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엄마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 두 분 모두 지병으로 돌아가셔서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와 오빠와 언니들이 돌봐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와 결혼도 일부러 일찍 해서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에 나를 낳아 키우셨다.



  그런 엄마가 기억나지도 않는 엄마를 부르짖을 정도로 슬퍼하고 있었다. 아빠와의 다툼은 이전에도 꽤 있었지만 이 정도로 엄마가 엄마를 찾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본능적으로 난 엄마가 많이 힘들고 서글프고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불속을 박차고 나와 아빠와 엄마가 다투고 있는 안방으로 달려가서 엄마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 할머니 기억도 안나잖아... 앞으로는 슬프면 나 불러..."


엄마는 울다가도 나를 보고는 살짝 놀랐지만, 이내 따뜻하게 날 감싸주고는 말하셨다.


"엄마가 미안해... 재훈아, 엄마가 미안해..."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셨고, 엄마와 나는 한동안 서로를 부등 껴안은 채 감정을 추슬렀다. IMF는 그렇게 내 마음속 깊숙이 상처를 내놓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머물렀다. 아주 긴 어두운 터널 같은 세월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짐작하지 못했다. 반지하의 어둡고 깊은 방 안에서 서로 부등 껴안고 울고 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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