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회식이 있었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1차는 족발집이었다. 족발이 서민음식을 벗어난 지는 오래되었지만, 회식으로 먹을 땐 족발만큼 만만한 게 없다. 팀장이 주최한 이 회식은 모든 팀원이 대상이 아니었다. 팀장이 나름 밀어주고 아끼는 인원들만 추려서 소규모로 진행된 비공식 회식이었다. 난 속으로 이 무리에 들어올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팀장은 이 회식 자리를 회사에선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 과연 얼마나 오래 이 비밀이 유지될지 의문이 들었다. 팀장이 직접 주최한 만큼 전체 회식비용을 부담할 테니 맘껏 먹으라고 말했다.
족발집에서 대략 인당 소주 2병 이상을 마시고는 모두 알딸딸한 상태로 2차로 향했다. 2차 장소도 회식 때 자주 가던 호프집 중 한 곳이었다. 얼마나 장사가 잘됐는지 바로 옆 건물에 2호점을 차렸다. 우리는 새롭게 확장한 2호점으로 발 길을 돌렸다. 2호점이라고 해도 우린 2차에서 자주 먹는 메뉴를 똑같이 시켰고, 그다음은 술이 술을 먹기 시작했다. 2차 때부터는 팀장이 슬슬 눈이 풀리며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그래서 슬슬 마무리를 하고 집에 보내려는데, 팀장이 마지막으로 3차까지만 가자고 했다. 팀장 술버릇은자는 것이라 3차를 가도 어차피 잠들어 버릴 것이라 예상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노래방에서 한 잔 더 먹자고 입을 모았다. 뒤늦게 알았지만 사실 3차 장소를 정하던 순간부터 팀장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어쨌든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순간 팀장은 소파에 뻗어서 잠들어버렸다. 나머지 인원들도 술이 이미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라 노래를 부르다 말고 서로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노래방 시간은 계속 흘러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노래방 시간을 한 시간 더 추가하고도 빠르게 시간이 흘러 퇴실 시간이 되었다. 노래방을 나오고 나서 마지막으로 바깥 큰 나무 옆에 마련된 흡연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담소를 나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는데, 그 순간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어? 노래방에 핸드폰 놓고 왔나 보다! 난 핸드폰 찾아서 집에 바로 갈게. 팀장님 많이 취하셨으니까 잘 모셔다 드려."
한 후배에게 거의 쓰러지다시피 부축받고 있는 팀장은 정신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그 후배가 팀장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기에 택시를 같이 타서 모셔다 드리고 집에 간다고 했다. 노래방으로 재빨리 몸을 돌리던 나를 다른 후배가 불러 세웠다.
"과장님, 혹시 노래방에 핸드폰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저랑 같이 가보시죠! 핸드폰 찾은 다음에 각자 흩어지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해주는 센스 있는 후배가 고마워서 흔쾌히 그래주면 고맙겠다고 답했다. 후배와 나는 노래방으로 발길을 돌렸고, 팀장은 직원의 부축을 받아 택시를 함께 타고 집으로 향했다.
노래방 직원에게 핸드폰을 놓고 온 것 같다고 말했지만, 직원은 머무르신 방에서 나온 핸드폰은 없다고 했다. 이때부터 살짝 멘탈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술이 꽤나 취했는데 그 순간 정확한 사리분별이 되지 않았다. 같이 온 후배도 술이 취한 상태라 어쩔 줄 몰라하다가 1차와 2차로 갔던 가게도 가보자고 말했다.우린 허겁지겁 다시 되돌아가서 1차와 2차 때 앉았던 테이블 주위를 돌아보고 직원에게 핸드폰 나온 게 없는지 물어보았지만, 결국 우린 핸드폰을 찾지 못했다. 난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는데, 처음 있는 일이라 굉장히 당황했다. 핸드폰을 찾으러 돌아다닌 지 한 시간가량 흐르니 술도 차츰 깨고 있는 듯했다. 후배에게도 계속 같이 돌아다니며 찾아봐준 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서 이젠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시간도 늦었고 내일 출근도 해야 되니까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내가 내일 오후에 다시 와서 가게들 좀 다시 가봐야겠어. 혹시 청소하다가 나올지도 모르니깐..."
후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했고, 우린 이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핸드폰은 없었지만 다행히 가방에 지갑이 있어 택시비를 치를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가 넘어가 있었다. 나는 쥐 죽은 듯 들어와 불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눈이 떠졌다. 핸드폰 알람 없이도 습관적으로 몸이 깨어난 것이다. 숙취를 느낄 겨를도 없이 지각할까 봐 허겁지겁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핸드폰이 없으니 눈을 붙이고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 앉으니 숙취가 좀 몰려오는 듯했다. 다행히 회사에 딱 정시에 도착을 했고, 난 부랴부랴 핸드폰 위치추적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구글에 사내 PC로 로그인한 적이 없어 위치 추적은 불가능했다. 후배 전화를 빌려 전화를 해보아도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아내에게도 전화를 걸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아내의 말은 한숨과 함께였다.
"에휴... 술 먹고 잘한다 잘해. 하두 안 들어와서 어제 똥이가 아빠 잃어버렸다고 울다가 잠들었어!"
나는 멋쩍은 듯 말을 돌렸다.
"이따 오후에 퇴근하고 식당에 다시 가볼 거야... 핸드폰이 꺼져있는 거 보니까 왠지 청소하다가 나왔을 것 같아."
전화를 끊고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잃어버린 핸드폰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 술이 취하긴 했는데 핸드폰 잃어버릴 정도로 정신을 놓은 건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디 간 거지?'
'분명 테이블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서 외투에 넣어놨는데, 외투를 노래방 소파에 벗어놨을 때 소파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 갔나?'
"아, 어차피 핸드폰 산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이참에 핸드폰 바꿔버릴까 봐... 근데 기존 폰에 있는 번호랑 사진이랑 기록들이 너무 아까운데..."
그렇게 하루 종일 핸드폰 생각과 대화만 나누다가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슬슬 짐을 싸고 어제 갔던 가게들을 순차적으로 가볼 요량으로 업무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후배가 본인 핸드폰을 들며 나를 불렀다.
"과장님, 형수님 전화 왔어요!"
난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후배 핸드폰으로 전화까지 했나 싶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건네받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무슨 일이야?"
아내는 다급하면서도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퇴근하면서 혹시나 해서 당신 폰으로 전화해 봤더니 전화를 받는 거야! 그래서 난 당신인 줄 알고 핸드폰 찾은 거냐고 물었지. 근데 다른 사람이더라고! 자기가 핸드폰 주웠는데 꺼져있길래 충전시켜서 켜놨대. 근데 비밀번호도 걸려있고 아무도 연락이 안 와서 가지고만 있었대. 빨리 당신 폰으로 전화해 봐!"
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아내에게 알겠다고 답하고는 빠르게 사내 전화로 내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역시나 아내가 말했 듯 누군가 내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혹시 제 핸드폰 주우신 분인가요?"
전화기 넘어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제가 출근하던 길에 나무 밑에 풀숲에 떨어져 있는 걸 주웠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회사 가는 길 중간에 있더라고요. 핸드폰 켜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비밀이 풀렸다. 3차까지 모두 끝나고 나서도 나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지막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며 마무리를 하던 장소에서 풀 숲에 서 있다가 핸드폰을 떨군 것이었다. 그래서 떨어진 소리가 나지 않았고, 나 또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내 핸드폰을 발견해 주고 보관까지 해주신 미지의 남성분이 너무나 감사했다.
"정말 감사드려요! 그게 왜 거기 떨어져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어디세요? 제가 바로 찾으러 가도 될까요?"
그분은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고 실제로 내가 어제 회식을 하느라 돌아다닌 동선을 거쳐야 그 회사에 당도할 수 있었다. 나는 감사의 의미로 회사 1층에서 커피 쿠폰 2만 원권을 샀다. 핸드폰을 받으면서 전달해 줄 요량이었다. 퇴근 시간이었지만 어차피 야근할 거라 천천히 오시라는 그분의 배려가 더욱 고마웠다. 그럼에도 나는 서둘러 그분이 계신 회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핸드폰을 너무나 오래 맡긴 것에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분 회사 앞에 도착하여 다시 내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출발할 때 야근하는 후배의 핸드폰을 잠깐 빌렸던 것이다. 그분은 1층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나를 보고는 손을 흔드셨다. 나는 그분이 있는 쪽으로 허겁지겁 뛰어갔고, 그분 주변의 하얀 담배연기가 마치 그분 등에서 날개처럼 뻗어나가는 듯했다. 그분이 핸드폰을 안쪽 회사 점퍼에서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을 땐 나는 천사의 모습을 보았다. 나도 준비한 선물을 드렸지만 거절의 손사래를 치시길래 점퍼 바깥 주머니에 손수 넣어드렸다. 잠시였지만 그 주머니 속은 너무나 따스했고, 나는 그 순간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도 앞으로 진짜 착하게 살아야지!"
나는 다시 한번 그분께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하고 돌아섰다. 그분을 앞으로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느껴졌던 따뜻한 배려는 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을 들고 급히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내가 겪었던 상황과 느꼈던 다짐들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쏟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