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혼을 결심하고부터는 곧바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27살에 취업한 나는 29살 결혼을 결심했을 당시 모아놓은 자산이 거의 없었다. 물론 부모님께 손 벌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대학교 학자금을 갚고 있는 와중이었고, 거의 다 갚았었지만 약 300만 원 정도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또한 회사에서의 잦은 출장으로 인해 800만 원짜리 중고차를 입사한 지 일 년이 지난 후 곧바로 구입했다. 결코 나는 자산을 모아놓을 여력이 없었다. 물론 여기서도 더 아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까지 일찍 결혼을 생각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그 당시 치열하게 돈을 모아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명품을 사거나 사치를 부리진 않았지만, 다른 입사 동기들처럼 먹고 즐기는 정도는 따라 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던 듯싶다. 워낙 공무원의 월급이 짜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에 돈을 열심히 모으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없으니 어머니와 살면서 생활비도 보태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녀도 나와 결혼을 결심했을 당시에 28살의 공무원 3년 차를 지나고 있었으나, 모아놓은 자산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무모하게 결혼을 결심한 것이었다. 우리 둘 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일단 1년만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최대한 많이 모아서 결혼식과 신혼집 비용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내가 서른 살, 아내가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최대한 긁어모아 돈을 합쳐보니, 약 5천만 원 정도의 금액이 나올 수 있었다. 결혼식과 신혼집 살림으로 1천만 원 정도 예산을 잡고, 남아있는 4천만 원에다가 저리로 회사 대출과 공무원 전세 지원 제도를 통해 1.5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추가적으로 은행에서 1억 정도를 더 대출받아 2.5억에 아내와 나의 회사 중간 지점에 빌라 투룸 전세로 신혼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4년을 살고, 아이를 낳아 더 넓은 평수와 장모님의 육아 도움을 위해 경기도로 나와 전셋집을 구했다. 신혼생활 동안 모은 돈과 추가적인 대출을 받아서 다행히 아파트 전세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내와 나의 직장 거리는 둘 다 멀어졌지만,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렇게 맞벌이를 하고 네 살 난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지금까지 양가 부모님의 경제적인 도움 없이 결혼 7년 차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렇게 구구절절 내 결혼 생활을 써 내려간 것은 커뮤니티 글 중에서 양가 부모님의 지원이 없어서 결혼을 망설이는 고민 글에 대한 내 경험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성자뿐만 아니라 대부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주변에서는 1~2억씩, 많게는 3~5억씩 부모님이 지원해 줘서 아파트 전세나 자가로 신혼을 시작하는데, 본인들은 사회초년생이고 부모님 지원이 없어서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지는 결혼 생활이 행복할지가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인 듯하다.
우선 부모님의 지원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부모님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 평수를 줄여 본인 결혼 자금을 마련해 주셨다거나, 노후 자금으로 모아놓은 돈을 건네주셨다면 감사하게 받더라도 본인의 결혼 생활동안 부모님의 간섭과 잔소리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부모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좀 더 양가 부모님의 간섭 없이 주체적인 결혼 생활이 가능하다. 우리 부부도 그동안 키워준 것과 우리 아이를 돌봐주시는 것에 대한 도리를 할 뿐이지, 결혼생활동안 경제적인 것에 대해 부모님의 간섭을 받아본 일은 없다.
양가 부모님의 지원도 결국 숫자로 나타나 남들과 비교하게 될 텐데, 결혼생활이 결코 경제적인 것에만 모든 행복이 쏠려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인지해야 한다. 회사를 선택할 때도 연봉만을 고려하지 않고 회사 분위기, 위치, 복지, 인간관계 등 전반적인 것을 보듯이 결혼생활도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시작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너무 경제적 여건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하자. 가진 것에 대한 남들과의 숫자 비교는 결국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내가 배우자와 얼마나 잘 맞는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가 있는지, 소소하게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가정생활을 함께 꾸려 갈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결혼생활에서 행복을 좌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니 어차피 부모님의 지원을 못 받을 상황이라면, 행복을 가져다주는 다른 요소에 결혼 생활을 집중해 보는 것이 좋겠다.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는 만큼 결혼생활에서 경제적으로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남들 해외여행 갈 때 국내여행 가야 하고, 남들 외식할 때 집에서 요리해서 먹어야 하고, 남들 외벌이 할 때 맞벌이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에 아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산을 불리고 소득을 높일 것인가 고민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으로 앞서 말한 것들에 대해 무리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경제적 지원이 없이도 이러한 것들이 감당 가능하고 함께 이겨 낼 수 있는 사랑스러운 배우자가 있다면, 고민 없이 인생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선택은 결국 결혼생활 동안 집과 자산을 늘려가는 재미를 함께 느끼고, 치열하고 거칠었던 과거를 추억으로 얘기할 수 있는 영혼의 동반자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