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지만, 남과 사는 건 처음이라...

"퍼즐 맞추듯..."

by 똥이애비

부부란 무엇일까. 정말 아무런 감정 한 톨 들어가지 않고 얘기한다면, 법적인 혼인 관계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각자 최소 20년 정도를 따로 살아오다가 '사랑'이라는 아주 추상적인 감정에 의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은 기간 동안 관계를 이어오고, '결혼식'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사회적인 선언을 하면 부부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단순한 절차이지만, 이 속에서 인간적으로 굉장히 많은 희로애락이 존재한다. 즉, 폭발적인 감정의 교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그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일뿐인데도 엄청난 기대와 갈등과 욕구 등이 뒤섞여있다.


요즘 혼인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고, 결혼 연령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나이가 차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던 사회적 인식에서 이젠 결혼과 출산이 그저 개인의 선택일 뿐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도 엄청나게 까다로워졌고, 이로 인한 남녀 갈등도 극에 달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내가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셀프 소개팅'이라는 개념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댓글로 글쓴이의 조건을 평가한다. 조건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개인적인 쪽지를 보내 만남까지도 이어간다.


일단 그 조건에 포함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키와 몸무게, 학벌, 자산, 부모님의 노후 대비 여부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개인적인 성격과 성향, MBTI, 취미도 포함되지만 사람들에게 그리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듯하다. 처음 만날 때조차 이러한 조건을 들이밀고, 상대방의 조건을 따지다 보니 서로 완벽하게 매칭되는 조건의 만남을 갖기가 사실상 하늘에 별 따기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만났을 때 실패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기에 시간과 비용 면에서 아주 효율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공공연하게 밝힐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에겐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저 열등감만 가진 채 연애 시장을 떠나 혼자서 조용히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내가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가보면 나 또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키는 174센티에 몸무게는 75킬로였고, 중견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모아놓은 자산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은 아직 일은 하고 계셨는데 IMF의 여파로 인해 평생 사업 빚을 갚아오셨다. 빚은 전부 청산했지만, 결국 본인들의 자산을 일구지 못하셨다. 나는 외모가 그리 훌륭한 것도 아니었고, 옷이나 브랜드에도 별 관심도 없었다. 이러한 허접한 조건 속에서도 난 연애를 하긴 했었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결혼까지도 이어왔다. 아내의 조건은 키 170에 51킬로였고, 사회 초년생이라 모아놓은 재산은 없었지만 공무원이라는 탄탄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 이혼가정이고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것은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우리가 조건만 따져 놓고 만남을 가졌다면, 누가 더 조건이 좋은 지 따져가며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매번 갈등이 일어났을 것이다. 만약 조건만 따지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우린 과연 결혼까지 이어갈 수 있었을까.



결혼 생활이 7년 차가 넘어가니 주변에서 이혼한 커플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또한 커뮤니티에서도 이혼 글이 넘쳐나고, 부부들의 고민 글이 리얼하게 올라온다. 사실 나도 아내와 함께 살면서 이혼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아이가 있는 최근에도 그렇다. 부부가 함께 몇 년간 살아가다 보면 이혼 생각이 없는 부부가 과연 얼마나 될까. 결국 이혼까지 가게 되는 커플은 더 이상 참고 살지 못할 크리티컬 한 개인적 사유가 있겠고, 그래도 부부의 끈을 놓지 못한 경우는 참을 만큼은 견딜 수 있는 것이리라. 나와 아내도 지금껏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으니 참고 살만한 것이겠지.


아내와 나는 상당히 다르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고 아내는 올빼미 인간이라, 깨어있는 시간 자체부터 다르다. 주말이면 나는 보통 11시쯤 잠들어서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일어나고, 아내는 새벽 2시에 잠들어서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일어난다. 당연히 주말 아침 아이의 식사 당번은 내가 되었고, 밤잠은 아내가 재우게 되었다. 나는 이부자리와 집 안이 어질러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아내는 화장실이 깨끗해야 기분이 좋다. 그래서 내가 방 청소를 하고 아내는 화장실 청소 당번이 되었다. 단순하고 생각이 그리 깊지 못하지만, 아내는 감정이 풍부하고 생각이 많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차가운 결정은 내가 하고 따뜻한 결정은 아내가 한다.


부부는 태생이 남이다. 찰나의 사랑이라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의해 연결되었고, 갈라서지 않는 한 평생을 책임과 의무로 인해 살아간다. 물론 부부가 평생 동안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의 평범한 부부라면 '사랑'이라는 단순한 단어보단 '애정' 또는 '애증'이라는 다소 뒤섞인 단어에 가깝게 살아간다. 앞서 아내와 나의 차이점을 얘기했지만,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남이었기 때문에 각자의 '다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 퍼즐 맞추듯이 같은 그림을 향해 각자의 위치에 어떻게 자리하느냐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사회적 제도 하에 남과 함께 살아가는 건 처음이다 보니까 낯설고 어렵다. 처음부터 딱 맞춰진 퍼즐은 없다. 50 피쓰냐, 100 피쓰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더 복잡할수록 하나씩 맞추어 가다 보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을 때의 희열과 보람은 더 클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는 진정 한 쌍의 부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내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이런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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