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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Aug 08. 2023

중견기업은 애매하다

"그럴수록 인생의 확실한 포지션 구축이 필요하다."

  중견기업을 십여 년 간 다니다 보니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위치한 중견기업은 규모와 실적 면에서 대기업에는 못 미치나 중소기업보다는 우수한 기업을 뜻하며, 자산규모 5천억 이상에서 5조 원 미만의 기업이 속한다. 하지만 실제로 다녀보면 자산규모만 말할 것은 아니다. 회사 분위기, 복지, 연봉, 프로세스 등 다양한 것들이 모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중간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이 중견기업을 다니는 직장인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중간에 끼어서 이도저도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십여 년간 중견기업의 연구원으로 근무한 내 회사 생활의 경험을 기반으로 왜 중견기업이 애매한지 얘기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신입사원이 되면, 친척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취업과 관련된 얘기들을 많이 나누게 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 취업했는지,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 복지는 어떻고 회사 분위기는 어떠한지 물어본다. 보통 주변에 대기업에 들어간 대학 동기들을 보면 회사 이름만 딱 말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삼성, 현대, SK, LG 등 얘기만 해도 모두가 알고 있고 인정하는 회사들 말이다. 이 회사를 다닌다는 타이틀 만으로도 '취업준비 정말 열심히 했고 결국 성공했구나!'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중견기업을 다니면 회사 이름을 말할 때부터 애매하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중소기업이면 그냥 회사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중견기업을 얘기하면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른다. 우리 회사의 경우는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들은 대부분 알지만, 젊은 세대는 전공을 하지 않는 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회사명을 말한 뒤 상대방의 반응을 살핀다. 대충 알고 있는 듯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처음 듣는 듯한 표정이면 바로 덧붙여 뭐 하는 회사인지 설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이 조금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회사의 네임밸류가 거기까지 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회사 내에서도 중견기업이라는 포지션은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회사 제도나 프로세스가 대기업을 억지로 따라서 만든 티가 역력하다. 뭐만 하면 삼성과 LG를 따라서 만드는데 그를 운영하는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데도 겨우 겨우 구색을 갖춘다. 마치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는 형국이다. 얼기설기 만들어진 제도와 프로세스는 결국 흐지부지 끝나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터지면서 수정하여 단단해지기도 하는데, 그 과정 동안 직원들은 헷갈리고 또 헷갈린다. 그래도 중소기업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있었는데 사라지는 게 심리적으로 더 크리티컬 한 타격을 입는다. 게다가 주어진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회사 프로세스를 만들면서 일을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업무 부하는 더욱 높아진다.


  실제로 중견기업에 속해 있는 직장인들은 이상한 패배감이 들 때가 있다. 동기들 중 경력을 쌓아 대기업을 가게 되면 겉으로는 축하를 해 줘도, 속으로 '나는 중견기업에서만 머무를 사람인가'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대기업 이직에 번번이 실패하며 한계를 느끼고, 그렇다고 중소기업으로 다운그레이드해서 갈 수는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연차가 이직도 못할 만큼 더욱 쌓이게 되고 슬슬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 되면, 그동안 관계를 잘 맺어 놓은 중소 협력사에 자리가 있는지 미리 알아보기도 한다. 규모나 복지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최소한의 임금 보전을 하며 직장인의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도 대기업 은퇴자들이 자리를 차지하면 손쉽게 밀리게 마련이다. 중소기업이면 차라리 넓게 많은 것을 배우고 비슷한 업종으로 사업장을 차리거나 확장할 수 있겠으나, 중견기업은 대기업만큼은 아니더라도 업무 분장이 세부적으로 쪼개져 있기 때문에 나와서 회사를 차릴 만큼의 능력을 갖추렵다.


  중견기업을 다니며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하기도 한다. 정부 정책 상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는 열약한 환경으로 인해 여러 가지 복지제도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몇 년 전 아파트 청약 붐이 일었을 때 중소기업 재직자 특별 분양이 있는가 하면, 중소기업의 연봉 정도 선 안에서 가구 별 연소득 제한이 걸려 있어 연봉이 애매하게 걸치면 신혼부부나 생애최초 분양에 지원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내 주변 지인은 중소기업에 다니지만 부모의 재산이 많아 여유롭게 생활하는데도 이러한 특별분양에 쉽게 당첨되어 나에게 허탈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도 중견기업에 다니면, 여러 가지 정부가 운영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워진다. 차라리 대기업만큼의 연봉이나 복지를 받고 있으면 할 말이 없겠으나, 애매한 정도로는 정말 이도저도 안 되는 현실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애매한 상태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애매하게 인생을 끝내게 된다. 중견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몸값이 가장 비싼 시점에 대기업 이직을 노릴 수도 있을 것이고, 중견기업에 다니며 여러 다른 활동을 통해 부수입을 얻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사업으로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여러 번 대기업 경력직 문을 두드렸지만 실패하여, 후자의 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한계는 정말 중견기업까지인가 고민할 때가 많았다. 특히나, 나보다 학벌이나 능력이 떨어지는데도 대기업에 덜컥 붙는 동료들을 보고, 내 상황과 비교하며 좌절한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더욱 의지를 불태워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스스로를 채찍질하였다. 중견기업에 다니면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해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전배 신청이 있다. 나 같은 경우도 두 번의 전배신청을 통해 현재 세 번째 팀에 앉아 있는데, 이럴 경우 생각보다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며 중견기업에 오랜 기간 머무르고 있으면서도 중소기업만큼 다양한 커리어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껏 해온 업무들이 시너지를 발휘하며 나만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할 수도 있다. 전문성은 조금 떨어질 수 있어도 중견기업 이상으로 가게 되면 사실상 쉽게 교체될 수 있는 게 직원들이다. 더 넓은 범위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 회사에서 관리직을 맡거나, 나만의 사업을 영위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본다. 따라서 중견기업을 다니는 직장인은 딱 직장인으로서의 신분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애매할 수 있으니, 다니는 동안 인생의 확실한 포지션 구축을 위한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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