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7살이고, 중견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11년째 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30살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해서 현재 4살이 된 딸과 함께 소소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최근에 이런 나에게 새롭게 도전할 꿈이 생겼다. 바로 '성우'라는 꿈이다. 누군가는 그 나이에 무슨 성우냐며, 정신 못 차렸다며,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가정에나 충실하라며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도전도 해보지 않고 현실의 벽에 부딪쳐 쉽게 포기해 버리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인생의 후회를 남기는 것은 과거의 나로 족하다. 요즘 수십 권의 자기 계발서를 읽고 깨달은 바이기도 하다. 오히려 난 지금이라도 이렇게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꿈과 열정이 다시금 생겼다는 사실이 기쁘고 행복하다.
중학생 시절에 2차 성징이 오면서 변성기가 같이 왔다. 이때부터 까랑까랑한 어린이 목소리가 사라지고, 굵은 목소리가 갈라지며 나왔다. 이런 목소리로 "엄마!"라고 불렀을 때, 엄마는 목소리가 징그러워졌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내 목소리는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엄마는 내 목소리가 멋있어졌다며 좋아하셨다. 하지만 난 한창 고등학생 때 노래방에 다니면서 내 목소리가 조금 싫어졌다. 그때 유행이던 야다, 플라워, 얀 등 락발라드 가수들의 노래가 상당히 고음역대라 내 목소리론 도저히 따라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는 노래 잘하는 것이 고음이 안정적으로 잘 올라가는 게 전부인 줄 알고 있었다.
남중 남고를 졸업한 끝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공대이긴 하지만 이때부터는 여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어느 정도 있었다. 동아리 활동도 했었고 공대생들의 로망인 여대와의 미팅도 간간이 들어왔었다. 남중, 남고를 다닐 땐 몰랐는데 여학생들과의 첫 만남 자리에선 항상 듣는 말이 있었다.
"야, 너 목소리 좋다!"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얼마나 외적으로 칭찬할 게 없으면 목소리로 칭찬을 할까 싶었는데, 이 경험이 계속 누적되다 보니 '정말 내 목소리가 괜찮은 건가?' 하는 헛된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만화 캐릭터를 따라 하며 아이들을 웃기는 것을 즐거워했던 추억이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꾸러기 수비대'라는 만화에서 '마초'라는 캐릭터의 "아, 나의 청춘이여~!"라는 대사를 비슷하게 따라 했고, 아이들은 아주 즐거워했다. 그리고 내 별명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마초가 되었다. 나는 이 꾸러기 수비대라는 만화로 인해 아직도 12 간지의 순서를 이 만화의 주제곡을 부르며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나와 비슷한 중저음의 굵은 목소리를 가진 담임 선생님과 생활했었는데, 쉬는 시간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하며반 아이들을 놀리는 재미에 한동안 빠져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출입하시는 앞 문을 빠르게 드르륵 열며 "모두 자리에 앉아라!"라고 외치면, 애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게 너무 웃겼다. 그래서 내가 깔깔 웃어대면 애들이 때리려고 달려들어서 복도로 다시 도망치곤 했다. 학부모님을 모시고 참여 수업을 했을 때도 애들이 나와서 담임선생님 목소리를 따라 해 보라고 부추겨서 부모님들 앞에서 선생님 특유의 말투들을 따라 하며 웃기기도 했다.
노래방에서 고음을 내기는 힘들었지만 나의 목소리와 관련된 좋은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사실 좀 더 이른 나이인 대학생 때 나의 목소리로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이로 인해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성우를 도전해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생업의 현실에 부딪쳐 그 꿈을 막상 펼쳐보지는 못했다. 그러다 이제 와서야 마음속 깊이 접어두었던 꿈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 계기는 사실 경제적인 접근에서부터였다. 직장인만으로는 도저히 경제적 자유는커녕 내 집 마련 자체도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고정적인 월급 외에 또 다른 부수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부업이 잘 되면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라 여차하면 새로운 직업도 가져볼 수 있을 터였다. 그때부터 '내가 회사 일 외에 잘하는 게 뭐지?'라는 고민을 했었다. 회사생활 11년 차쯤 되니까 회사 일 말곤 잘하는 게 없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취미로 헬스를 7년 간 꾸준히 해왔지만, 현재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전문 자격증도 없었고 그런 몸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최근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주말에 아내가 딸과 어린이집 친구 그리고 친구의 엄마와 함께 키즈카페에서 놀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횡재가 있나 싶어서 손수 키즈카페까지 픽업을 해주었다. 실컷 놀다 오라는 의미였다. 이런 내 노력에 감동했는지 아내는 딸의 친구 집에서 더 놀기로 했으니, 키즈카페에서 우리들을 친구네 집까지 픽업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내 차로 딸의 친구와 친구 엄마까지 태우고 이동하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는데, 처음 본 딸의 친구 엄마가 나에게 "정말 목소리 좋으시네요!"라고 칭찬을 해 준 것이다. 이젠 하두 들어서 사실 별 감흥은 없었지만, 이때 당시 부업을 생각하고 있던 때라 나는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 며칠 동안 '목소리로 돈 버는 법'과 '성우'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보았다. 막연하게 성우가 되고 싶다는 꿈만 갖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목소리로 돈 버는 법을 검색하니 온라인 재능 플랫폼을 이용하여 월 100만 원부터 월 700만 원까지 벌었다는 콘텐츠가 눈에 띄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나도 전문가로 등록해야지!'
하지만 역시 현실의 벽은 높았다. 온라인 재능 플랫폼에 등록하려면 기본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필요했고, 성우 인증과 스튜디오 녹음이 가능해야 했다. 지금의 나는 접근도 못하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로 광고영상을 하나 만들다가 미완성본으로 남긴 채 우선은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 미완성본은 여기에라도 한 번 올려본다.(사진은 내가 아니고 두산 광고 모델이다.)
이대로 성우의 꿈을 포기할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가슴속에만 간직해 온 꿈을 다시금 펼치기 시작했는데, 칼을 꺼냈으면 무는 못 썰어도 사과라도 깎아야 한다. 이제부터 나의 '늦깎이 성우 도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다음 글에선 성우라는 직업에 대해 내가 알아본 것부터 다시금 나의 도전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그 도전이 언제 끝날지는 나도 모르겠다. 시도하고 도전하고 꿈꾸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