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성우 학원은 끊어 놨는데, 그전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연습하며 준비를 좀 해야 했다. 성우지망생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자신들이 더빙한 영상들이나 녹음한 음성 파일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나도 이들처럼 내 목소리를 녹음하여 직접 들어보면서 연습하면 좋을 듯싶었다. 핸드폰 어플 중 녹음기 어플을 다운로드하여서 내 목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안,, 안녕하세요. 똥이애비입니다."
처음 녹음기에 대고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다였다. 이것조차도 녹음하고 들어보니 굉장히 어색했다. 내가 말하면서 듣는 나의 음성과 녹음기를 통해 듣는 음성은 꽤나 괴리감이 있었다.굉장히 낯설었지만 나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하기로 했다. 내 목소리를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들려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핸드폰으로 녹음해서 들어보니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소리를 아무리 크게 내도 시원하게 뚫리지 못하고 막힌 소리로 나와서 핸드폰 녹음의 한계라 여겼다. 급하게 당근마켓을 열고, USB로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는 마이크 중고 매물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다행히도 집 근처에 매물이 세 개정도 있었는데, 그중에 적당한 가격으로 팔고 있는 미개봉 상품을 구매하게 되었다. 집 근처 영화관 앞에서 만나 거래를 하기로 해서 나가보니, 나보다 10살 정도 연배가 더 높으신 분이 서 계셨다. 미개봉 상품인지만 확인을 하고 계좌로 입금을 해주었는데, 그분이 나에게 물었다.
"코로나도 끝났는데 어디에 쓰시려고요? 사놓고 코로나 끝나서 전 쓰지도 못했거든요..."
나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리며, 오히려 반대로 그에게 물었다.
"아 그냥... 혹시 어디에 쓰시려던 거예요?"
"아, 화상회의에서 쓰려다가 코로나가 끝나버리는 바람에 출근을 하게 되어서요..."
나는 결국 내가 이 마이크를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나도 그저 회의 때 쓰려고 한다고 둘러댔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마이크 설치부터 했다. USB로 자동 인식되어 곧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제 마이크도 있으니 맘껏 녹음해 보았는데, 과거 아이의 성장 영상을 만드느라 이용했던 '프리미어 프로'라는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있어서 이를 활용하였다. 오디오 쪽은 잘 다룰 줄 몰라서 검색을 통해 익히고, 기본적인 것을 설정해 주니 내가 원하던 뻥 뚫린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워낙 목소리가 저음역대라 뚜렷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렇게 '프리미어 프로'로 기본적인 설정을 하고 목소리를 녹음하며 연습을 하다 보니, '연습하는 과정을 유튜브에 편집하여 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꾸준히 연습하는 데 있어 동기부여도 될 터였고, 운이 좋다면 수익도 생기고 댓글로 피드백도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또한 나중에 학원 수강을 듣고서 처음과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엇으로 연습해야 하나?'였다.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았더니 여러 책을 읽어주는 채널들과 책을 소개해주는 일명 '북튜버'의 영상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던 중 아무 책이나 막 읽으면 저작권 문제로 인해 유튜브 측에서 해당 채널에 경고를 주고, 최악엔 채널 운영이 강제로 중단될 수도 있다는 영상을 보았다. 나는 글도 쓰고 있기 때문에 책이 작가와 출판사의 소중한 저작물이라는 것을 안다. 어떠한 책을 읽고 싶으면 해당 출판사와 작가에게 미리 연락해서 동의를 구해야만, 내 목소리가 들어간 2차 저작물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처럼 신생 채널에서는 출판사에 먼저 연락해서 "출판된 이 책 좀 읽어도 되겠습니까?"라고 얘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듯했다. 유튜브 채널에 아무런 프로필과 구독자도 없는데, 무작정 책의 저작권 동의를 해줄 출판사나 작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난 일단 내가 쓴 글을 읽기로 했다. 일명 '내가 쓴 글 내가 읽기 프로젝트'이다. 먼저 유튜브 채널 아이디를 '똥이애비'에서 '조은소리'로 변경했다. 채널의 색깔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이 채널엔 내 목소리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해 볼 예정이다. 기존에 다섯 개 정도 올라가 있었던 딸의 육아 영상들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내가 쓴 <성우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라는 글을 선택하여 읽고 편집해 보았다. 낭독 주제에 맞게 저작권이 없는 무료 영상들을 넣었고, 썸네일도 만들어 보았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해 본 적이 있었기에, 간단한 영상 편집은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기존 구독자 몇십만 명 채널의 영상 퀄리티에는 발 끝에도 못 미치지만, 일단 내가 쓴 글을 읽은 내 목소리가 들어간 영상을 처음으로 만들어서 내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꼈고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며칠간 내가 쓴 글 중 읽을만한 것을 몇 개 골라, 낭독 연습도 하면서 영상을 만들어 업로드를 했다. 은근히 누군가 내가 올린 영상을 보고 들어주길 바랐지만, 조회수는 처참했다. 유튜브는 역시나 정글인 듯했다.
'뭐, 어차피 낭독 또는 내레이션 연습을 위해서 만든 채널이니까 나만 만족하면 되지...'라며 위안을 삼아 보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것보다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좀 슬프긴 했다. 빨리 실력을 쌓아서 남들이 계속 듣고 싶은 매력 있는 목소리로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일인 듯싶었다. 마음을 다지고, 처음 시작하는 초보 단계에선 누구나 찌질하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내가 닮고 싶은 목소리를 갖고 있는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며 따라 했다. 영어 공부 할 때 한 문장씩 듣고 따라 말하며 쉐도잉을 했었는데, 한국어를 이렇게 연습하니 뭔가 웃기기도 했다. 아내가 이런 나를 보며 말했다.
"누가 보면... 한국어 배우는 외국인인 줄 알겠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아내는 은근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별로 내켜하지는 않는 듯했다. 그럴 시간에 육아나 더 참여하고 집안일이나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내 눈치 보며 포기할 내가 아니다. 일단 해보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 해보려 한다. 그래야 거기서 또 새로운 것을 배우며 성장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