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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Aug 19. 2023

우린 모두 이미 성우다.

늦깎이 성우 도전기(4)

  우리는 모두 태어났을 때부터 복식 호흡과 함께  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렁찬 울음으로 세상에 나왔음을 알린다. 분만실에 있는 부모님에게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태어남의 기쁨과 불안과 고통을 온몸에 담아 표현한다. 그럼 그들은 울음소리를 통해 이 아이가 얼마나 건강하게 태어났는지를 알아차린다. 이미 우린 태어남과 동시에 성우이다. 성우는 목소리로 연기하는 사람인데, 다시 말하자면 목소리를 통해 본인이 의도한 대로 세상에 어떠한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세상에 태어남을 뚜렷이 알렸다면, 그 즉시 우린 성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성우'라는 직업은 무엇일까. 의도한 감정과 표현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목소리로 온전한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사람이다. 이에 더해 좀 더 상업적으로 얘기하면 목소리를 돈을 받고 파는 사람이다.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그 목소리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프로의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라는 얘기다. 즉, 우리가 말하는 직업으로서의 성우는 '전문 성우'를 의미한다. 프로의 세계에서의 성우는 자신의 목소리가 수요자에 의해 잘 팔려야 하므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목소리를 듣기 좋게 한껏 꾸밀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장기적인 연습을 통해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마치 보디빌더가 유전적으로 이미 갖춰진 자신의 신체를 수년간의 근력 운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기 좋은 근육질의 몸의 형태로 변화시키는 과정과 같다.



  나는 이미 성우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회사에서 내 업무에 대해 모르는 이들에게 전문적인 설명을 할 수 있고, 회의를 통해 동료들과 회사에 이익이 되는 방향을 설득할 수 있다. 사적으로 친구들에게는 농담을 던지며 재미를 줄 수 있고, 가정에서는 아내에게 내가 생각하는 우리 가정의 미래를 묘사하며 든든한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아이에게는 사랑의 마음을 듬뿍 담은 목소리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아직까지 전문 성우의 영역까지는 갈 수 없겠지만, 성우로서 내 목소리를 보기 좋게 다듬어 내 주변사람들에게 내 의도를 명확히 표현하고자 한다. 내 주변사람들이 나의 감정과 표현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정체성을 내가 의도한 바와 연결하면, 나는 그 목표를 향해 뛸 수 있다. 자기 계발서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역행자>라는 책에서는 경제적 자유를 위한 역행자 7단계 모델을 제시했는데, 그중 두 번째 단계가 바로 '정체성 만들기'이다.  관련된 동기 부여 책 읽기, 환경 설정하기, 같은 목표를 지닌 모임에 참여하는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강제적으로 원하는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즉, 나는 성우라는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이미 성우다'라는 강제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우와 관련된 책을 읽었고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으며, 강제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마이크를 사서 내 목소리를 검증받을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마지막으로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과 성우 수업을 받고 있고, 오픈 채팅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제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은 성우라는 방향에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성우라는 정체성을 가지면 자동적으로 좀 더 내 고유의 목소리를 듣기 좋게 꾸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만 친구와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내 표현과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떤 이가 잘 다듬어진 내 목소리를 돈 주고 사고 싶어 한다면, 그때부턴 정말 '전문 성우'의 길로 갈 수 있을 테다. 물론 전문 성우의 길도 성우 협회에 등록된 공채 출신인지 아닌지에 따라 또 구분되긴 하지만, 지금은 일단 넓은 범위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모든 성우를 전문 성우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어쨌든 이렇게 내 목소리를 사랑해 주고 돈까지 지불하며 듣는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나 또한 최근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목소리 콘텐츠를 만들며 몇 가지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목소리가 되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 구독자는 18명에, 20개 정도 되는 콘텐츠의 전체 조회수는 1,300회를 겨우 돌파한 수준이다. 아직 부족한 실력에도 내 목소리에 관심을 갖고 찾아주신 이들과 심지어 구독까지 해주신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는 전하고 싶다. 앞으로 더욱 성장하여 잘 다듬어진 목소리를 갖추도록 노력할 테니,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유튜브 채널 : 조은소리



  앞서 얘기했듯 우린 모두 이미 성우다.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대다수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하는 것에서 조금 서툴 뿐이다. 하지만 이는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마치 타고난 체형에서 어떻게 코디하여 많은 이들에게 보기 좋게 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쇼핑을 하며 여러 가지 다양한 옷을 고르며 눈에 익히고, 몇 개를 골라 탈의실에서 입어 보며 시행착오를 겪는다. 내가 고른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지인들에게 내 코디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지나가는 모르는 이들의 눈길을 얼마나 끌 수 있었는지 판단해 본다. 그러다 보면 내 체형에 딱 맞는 코디를 찾아낼 수 있는데, 그것이 나에게 맞는 옷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 성우이지만, 전문 성우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도와 노력 그리고 다수의 피드백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나는 이미 성우다'라는 정체성만 뚜렷이 갖추고 있다면 자동적으로 따라올 수 있는 것들이니, 직업으로서 성우의 꿈을 갖고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성우지망생들이 조금은 편안한 마음을 갖고 준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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