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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Sep 19. 2023

인정욕구가 샘솟는 4살 아이

"필요하지만 너무 과다하지 않았으면..."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3대 욕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식욕, 성욕, 수면욕이다. 그러나 요새 아이를 키우면서 인정욕구 또한 인간에게 중요한 욕구 중에 하나라고 여겨진다. 인정욕구는 말 그대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다. 사회적으로 관계 지향적인 경우에 이 욕구가 샘솟는 듯한데 너무나 큰 인정욕구는 결국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남들에게 휘둘리는 수동적인 삶에 매몰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이제 4살이 되었고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조금 덜 그랬으면 좋겠는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과정이겠거니 하고 지켜보고 있다. 오늘은 4살 아이의 인정 욕구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일상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가 전날 색연필로 색칠한 것들과 종이접기 한 것들을 어린이집 가방에 넣기 시작한다. 그걸 왜 들고 가냐고 물어보면, 반 아이들한테 하나씩 나눠줄 거라고 말한다. 본인이 만든 작품을 애들이 보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하지만 가방 싸는 걸 말릴 수는 없다. 그러다 이제 자기는 어린이집에 토끼 인형을 안 들고 간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다 커서 토끼 인형 안 들고 가는데, 왜 정민이는 들고 와?"


정민이는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이다. 이 친구가 어린이집에 인형을 들고 오는 것을 본 모양이다. 그래놓고선 자기는 다 켰다고 인형 안 들고 가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는 다른 친구들에게 선심을 쓰며 잘 어울리고 싶으면서도, 친구들이 본인보다 잘 못하는 게 있으면 그걸 꼭 짚고 넘어가며 내게 말한다.


"얘는 왜 못하지? 는 할 수 있는데!"



  어린이집 하원을 하고 근처 놀이터에 가면 같은 어린이집 아이들이나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있다. 아이는 본인보다 언니, 오빠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따라 하기 시작한다. 겁이 많아서 아직 그네를 혼자 타지는 못하지만, 나머지 것들은 제법 잘 따라 한다. 특히 놀이터에서 가장 높게 솟아있는 미끄럼틀을 이제 탈 수 있게 되었는데, 나에게 자기가 타는 것을 보라며 연신 큰 미끄럼틀만 한동안 탔었다. 처음엔 내가 과도하게 리액션을 해주었다.


"우와, 우리 똥이 이제 제일 큰 미끄럼틀도 잘 타네."


그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탔다. 그러다 내가 리액션이 지쳐서 별 말이 없으면, 아이는 또래나 본인보다 어린아이들을 데려와 같이 타자고 하면서 본인이 하는 걸 지켜보게 한다. 본인처럼 잘 타는 아이들에겐 아무 말도 못 하고, 무서워서 못 타는 아이가 있으면 놀리듯 미끄럼틀을 내려오며 말한다.


"이거 하나도 안 무서운데, 잘 봐!"



  집에서는 외동이기 때문에 인형에게 자신의 인정욕구를 해결하기도 한다. 특히나 가장 애착이 있는 토끼인형을 나보고 들라고 하고 반응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최근 아이는 키가 커져서 전등불을 켜고 끄는 스위치까지 손이 닿는데, 스위치를 켰다 끄면서 토끼 인형에게 말한다.


"토끼야! 이거 봐라~ 나 손 닿는다. 너도 해봐!"


그럼 내가 토끼 인형으로 빙의해서 답한다.


"난 키 작아서 못하는데, 좋겠다 키 커서..."


그럼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너도 야채랑 고기 많이 먹으면, 나처럼 클 수 있어!"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 아이가 맵지 않은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또한 토끼 인형에게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거의 집에서 놀이의 반은 아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토끼 인형에게 보여주고, 너도 해보라며 부추기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잘 못하는 토끼 인형의 역할을 맡아 아이와 함께 놀아준다.



  요새 아이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아빠, 이것 봐! 나 이것도 할 수 있어!"

"왜 아기는 이거 못해? 난 할 수 있는데!"


본인이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자랑스럽고, 이를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는 모양이다. 나도 어릴 때 그랬었나? 그나마 기억나는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때 상장을 들고 엄마에게 가서 상 받았다고 자랑하던 게 떠오른다. 엄마가 상을 보며 칭찬해 주면, 그게 왜 그렇게 좋았던지. 어릴 때뿐만 아니라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 선임이나 동료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쓴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인정에 대한 욕구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듯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친구 관계, 부부관계, 직장 동료 관계 등 사회화를 잘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정 욕구가 관계의 질적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인정해주지 않는 관계는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될 뿐이니 말이다. 아이의 인정 욕구를 받아주는 일은 부모의 역할이고, 너무나 큰 인정 욕구를 보이지 않도록 조절해 주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 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남들에게 내 소중한 아이의 삶이 잡아 먹힐 수도 있다. 인정 욕구가 필요하지만 너무 과다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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