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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Nov 03. 2023

퇴근 후의 놀이터 풍경(feat. 네 살 육아)

"행복한 하모니가 흘러나오는 공간"

  회사에서 교육 출장을 다녀오는 날은 운이 좋다면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도착한다. 다행히 교육 장소가 집 근처라 교육이 일찍 끝나기만 한다면, 교통 대란 없이 집에 일찍 올 수 있을 것이었다. 교육 마지막 시간에 시험이 있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일찍 끝마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이제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집에 도착하면 5시쯤 될 것 같은데?!'


어린이집에서 맘껏 놀고 있을 아이는 장모님께서 하원할 예정이었는데, 결혼 7년 차이지만 아직은 장모님께 직접 편하게 카톡을 보내는 게 어려워서 아내가 내 상황을 전해 주길 바랐다. 눈치 빠른 아내는 곧바로 장모님께 얘기해 놓겠다는 답을 보냈다.


  교육을 다녀온 날은 스트레스도 없고 몸도 편해서 체력적으로 여유가 좀 있다.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서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실컷 놀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있는 길에 4시 반쯤 핸드폰 알람이 왔다. 딸이 장모님과 함께 하원을 한 모양이었다. 분명 집에 바로 안 들어가고 어린이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것이므로, 나는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에 들어섰다.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11월이라는 날이 무색하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노랗고 빨간 낙엽이 주변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게 지금 날씨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건물 모퉁이를 돌아 놀이터가 보였다. 멀리서부터 수많은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엄마들의 하소연 소리, 할머니들의 잔소리, 이따금 아빠들의 헛기침 소리가 서로 뒤섞여 듣기 좋은 하모니를 만들어 내었다. 가만히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지만, 나도 그 음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자 마음먹었다.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고 계신 장모님께서 먼저 날 보시고는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빠 왔네!"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네를 타고 있는 발을 동동 구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빠다! 아빠!!"


매일 보는데도 이 시간에 갑작스레 아빠가 오니 무척이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래도 그네에 내려서 뛰어오지는 않았다. 그네가 달랑 두 개밖에 없어서 엉덩이를 떼는 순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아이들에게 곧바로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다.



  장모님께서는 나와 교대를 하고 후다닥 집으로 가셨다. 날 반가워하셨던 게 집에 빨리 가실 수 있기 때문인 게 분명했다. 아무리 이쁜 손녀딸이라도 평일 내내 등, 하원을 하면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틈틈이 일찍 퇴근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아직도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에게 눈을 돌려 본격적으로 놀아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똥이야, 숨바꼭질할래?"


아이는 재차 신난 듯 좋다고 대답했지만, 혼자만 하면 재미없으니 친구들과 함께 하겠다고 했다. 이제 드디어 친구들과 함께 놀 줄 알게 된 게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그제야 주변 아이들을 면면히 살펴볼 수 있었다.


"친구? 누구?"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본 친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우도 있었고 서준이도 있었다. 이 아이들은 할머니가 여전히 주변에서 서성이고 계셨다. 뒤늦게 알았지만 한 분은 하원을 도와주시는 분이셨다.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을 했다.


"아빠가 술래 할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아이들은 잽싸게 본인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작은 몸을 욱여넣었다. 누구는 미끄럼틀 속으로, 누구는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그 모습을 보고 계시던 할머니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


"이제 찾는다!"


이미 누가 어디에 숨었는지 파악하고 있는 나는 모른 척하며 찾아다녔다. 여기 있나 하며 허튼 곳을 쳐다보면 아이들의 킥킥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한 명을 찾아내면, 그 한 명은 아쉬워하며 다른 한 명이 어디 숨었는지를 내게 손가락으로 알려 주었다. 본인만 걸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 찾아내면 한 판이 끝난다. 아이들은 재밌으면 절대 한 판으로 끝내는 일이 없기 때문에 몇 번이고 똑같이 반복했다.



  놀이터 속에 있으니 왁자지껄 복잡해 보였던 게 나름대로 질서와 차례가 있고, 어느 정도 무리도 지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어린이집 식구들끼리 어울렸고, 같은 어린이집 안에서도 같은 반 식구들과 더욱 친하게 지내는 듯했다. 아빠와 엄마가 같이 있는 아이는 의기양양해서 놀이터를 휘젓고 있었고, 네 살 난 우리 딸보다 큰 대여섯 살의 언니, 오빠들은 엄마들이 의자에 앉아 무아지경의 담소를 나누고 있어도 알아서 아이들끼리 잘 놀았다. 이따금씩 필요할 때만 엄마를 찾아 나섰다. 오랜만에 본 아빠들끼리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유모차와 아기띠에서 놀고 있는 오빠를 쳐다보는 아주 어린 아기도 있었다.


  여섯 시가 넘어가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날씨는 따뜻했만 해를 오래 붙잡을 수는 없는 계절이었던 것이다. 퇴근하고 온 엄마, 아빠들은 할머니 또는 하원 도우미 분과 허겁지겁 교대를 하였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하나, 둘씩 인사를 하고는 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뒤늦게 엄마, 아빠가 온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과 놀이터에서 무얼 하고 놀았는지를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집에 들어가자고 말하는 할머니에게 떼를 쓰며 좀 더 놀 거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모차에 앉아 있는 아기에게 집에서 뭐 하고 놀지를 신나게 떠들며 함께 가는 아이도 있었다. 한때 왁자지껄했던 놀이터는 가로등 하나만이 불이 켜진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이따금 오는 중, 고등학생들의 쉼터로 탈바꿈되었다. 이켜보니 놀이터라는 공간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었다. 어릴 적 뛰어놀던 놀이터의 풍경처럼 아빠로서의 놀이터 풍경도 곧 한편의 추억으로 자리할 것이라 생각하니, 시간이 좀 더디게 흘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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