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보고서를 쓰다 보면, 데이터를 정리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무언가를 설계하고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데 있어서 수많은 결정이 필요하고, 그 결정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보고서가 작성되는 것이다. 나의 보고서 형식 자체는 대부분의 결정권자와 유관부서 직원들을 위해 두괄식으로 간결하면서도 정보를 전달하기 용이한 상태로 가공하여 제공되고 있다. 이 보고서를 통해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식의 글쓰기는 결국 정보 전달 위주가 될 뿐인데, 회사 보고서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에서도 이러한 정보 전달이 상당히 고도화되어 있다.
우리가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 과거에는 뉴스와 신문처럼 대형 회사들이 가공한 내용을 한 방향으로만 단순히 전달받았지만, 요즘은 정보 제공의 주체가 개인화되었고 양방향으로 소통하면서 제공된 정보가 철저히 검증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어떠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너무나 쉽게 검색을 통해 다양한 경로로 획득할 수 있다. 관련된 뉴스기사를 볼 수도 있고, 생생한 사용자의 후기도 읽을 수 있으며, 친절한 영상으로 더욱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정보 전달의 고도화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점을 주고 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상당히 많다. 정말 사실처럼 쓰여 허구를 분별하기가 어렵고, 이로 인해 갑론을박하는 댓글들로 내가 맞다는 식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의심이 싹터서 비판이 아닌 무분별한 비난의 반응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또한 주변에 정보가 너무나 넘쳐서 쉽게 다가오지 않으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최근 문해력이 논란이 된 이유도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정보 소비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면 영상으로 눈과 귀를 동시에 자극하는 것이 유리하고, 글은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수반되므로 상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다수가 보는 글을 쓰는 경우엔 상당히 정보 제공에만 치중된 글쓰기가 되어버린다. 나 또한 글을 쓸 때 사람들에게 어떠한 정보를 주어야 하는지부터 고민한 적이 많다. 사실 정보는 어디서나 획득할 수 있기에 나만의 방식으로 2차, 3차로 재탕(?)하여 재가공할 뿐인 것이다. 실제로 완전히 새로운 정보를 창조하여 글을 쓰는 경우는 이렇게 단편적인 글쓰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동안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는데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이미 있는 정보를 가공하여 전달하는 제공자 입장에서는 정보를 획득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최대한 맞추어야 가공된 정보가 가치를 발휘한다. 그러다 보니 정보는 더욱 쉬우면서도 자극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갈등이 오는 상황이다. 치열한 정보 전달의 경쟁 속에 뛰어들어 나만의 방식으로 가공한 정보를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 아니면 정보 전달에 치중하기보다는 나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전자는 확실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에 어느 정도의 반응이 보장되어 꾸준하게 글 쓰는 힘이 되어줄 것이고, 후자는 독자의 반응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정보 전달의 조급함을 벗어나 나만의 스토리가 형성될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내가 쓴 글들을 쭉 살펴보았다. 독자들에게 많은 반응이 온 글이 결코 정보 전달 위주의 글만이 아니라는 사실과 결국 남들에게 보이는 글은 정보 전달과 나만의 이야기가 융합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정보 전달에만 조급하여 정보만 죽 늘어놓기보다는 내 체험과 경험과 생각들로 이야기의 흐름을 채우고, 그 사이사이로 속속들이 정보를 녹여내는 것이나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서로 윈윈 하는 글쓰기가 될 것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쉬이 풀어쓸 수 있고, 그리 전문적이지 않아도 되어서 부담이 적다. 독자들은 이야기에 공감하며 정보 전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글의 매력에 빠져들 수도 있다.
정보 전달의 조급함을 버리는 일,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글을 장기적으로 써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긴다. 그런 글들이 하나의 주제로 묶이면 비로소 나만의 책이 될 것이다.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정보 전달이 될 수 있는 그런 책 말이다. 정보 전달이란 것에는 단순히 새로운 소식뿐만이 아니라, 역사와 철학과 교훈이 담겨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를 단순히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되뇌며 누군가를 세뇌시키는 일은 나와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