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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Oct 29. 2023

"I am 신뢰"와 같은 직장생활 외래어 남용 현실

"더 이상의 추가적인 외래어 변형은 없길..."

  최근 아주 재밌는 유행어가 하나 탄생했다. 사실 이런 드라마 같은 소식은 별 관심이 없었지만, 워낙 주변에서 얘기가 많이 돌아서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일명 '전청조 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이 소식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새롭게 보되고 있다. 전청조의 인생은 모두 거짓이었는데, 재벌 3세도 아니고, 교포도 아니고, 심지어 남자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대중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남자가 아닌데도 여자와 결혼한 이력도 있고, 이번에도 전 펜싱 국가대표 선수와 임신을 하면서 결혼을 하기로 공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 속에서 미국 교포 출신이라던 전청조가 사업가와 대화를 나누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Ok... 그럼 Next time에 놀러 갈게요.
Wife한테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더니 ok 했어서 물어봤어요.
But your friend와 같이 있으면 I am 신뢰예요~


여기서 주목을 받은 문구는 'I am 신뢰예요~'라는 말이다. 한글로 번역해 보면 '나는 신뢰예요~'라는 것인데, 어법에 맞지 않는 이 표현이 미국 교포였다던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인 것이다. 최소한 trust라도 들어갔으면 좀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새로운 유행어가 탄생하며, 다방면에서 이번 유행어를 활용한 인터넷 밈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외래어 남용은 직장생활에서도 엄청나게 많다. 미국 교포 출신은 아니지만 외국계 회사에서 경력으로 입사하였거나, 해외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회사가 해외 지사를 설립하여 뻗어 나가고 있는 경우 해외 지사의 현지 사람들과 미팅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영어의 사용 빈도는 저절로 올라간다. 이렇듯 회사에서 다양하게 영어가 수용되면서, 한국어를 하더라도 영어가 중간중간 난입되는 대화가 꽤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 팀에는 외국계 회사에서 경력으로 입사한 팀장이 있고, 인도와 중국에서 온 현지 연구원이 파견 나와 있다. 나머지는 정통 한국인이지만, 영어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기에 영어의 사용 빈도가 저절로 올라가게 되는데, 우선 아침부터 '굿모닝(Good Moring)'으로 회사에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업무 시간 중에 팀장의 지시사항이 떨어지곤 하는데, 대략 이런 식이다.


"보내준 리포트(report) 봤으니까, 시스템(system)에 업로드(upload) 할 수 있도록 해요."
"그래서 컨클루전(conclusion)이 뭐예요? 데이터 릴라이어빌리티(data reliability)는 확인되었나요?"
"이 잡(job)은 김대리가 팔로업(follow up) 해주세요."


난 이미 익숙해져 있지만 아마도 이 팀에 신입사원이 들어온다면, 이러한 업무에 관련한 영어식 표현에 적응하느라 곤욕을 치를 것이다. 물론 우리 팀뿐만 아니라 유관 부서와 회의를 하더라도 영어식 표현은 중구난방으로 들려온다.


"이번 이슈(issue)에 대해서는 품질부서에서 오딧(audit) 진행해 주시고, 설계부서에 컨펌(confirm) 부탁드립니다."
"업체 컨택 포인트(contact point)를 알려주시면, 저희 팀에서 내부적으로 리뷰(review)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플라이어(supplier)에서 콘셉트(concept)를 프로포절(proposal)할 예정입니다."



  너무 과도한 외래어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이런 식의 외래어 표현은 회사에 이미 뿌리 깊게 내재화되어 있어 바꾸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한국어를 모르는 해외 파견 직원과 함께 회의를 하더라도 우리가 쓰는 외래어 표현으로 대강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단지 이번  'I am 신뢰'라는 유행어로 인해 더욱 불분명한 외래어가 회사에 확산되지 않았으면 한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표현이 우려스럽다는 뜻이다.


 "My company is 국제적이에요. 그래서 global 업체를 I am 직접 평가할 거예요~ 그러니  I am 도착하면 업체가 ready 할 수 있게 contact 해주세요!"


이건 도무지 외국인도 못 알아듣는 표현이지만,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외래어의 또 다른 변형이 유행처럼 번져 회사에 유입되는 경우엔 상상하지 못할 외계어가 순식간에 자리 잡을 것이므로, 이번 유행어가 그저 단순한 장난과 농담으로만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이 글도 또한 재미로만 웃고 넘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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