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와 계약하기
브런치로 인생 첫 책 출간하기(6)
그렇다. 분명 운이 따랐던 것은 확실하다. 유명인도 아니고,
책을 내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출판사 편집자가 먼저 제안을 해오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출간 기획까지 검토한 마당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출판사와 미팅을 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편집자님에게 기획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보낸 뒤에 회신 온 것이 출판사 대표님과 미팅 일정을 조율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가능한 날짜들을 몇 개 추려 제안했다. 그러고 나서 잡힌 날짜가 1월 둘째 주 평일이었다. 회사에선 동료들이 연초부터 무슨 일이 있길래 연차를 쓰는 건지 궁금해했지만, 일단은 대강 얼버무렸다.
"아이 어린이집에서 행사가 있어서요..."
연차를 쓴 당일. 어린이집에 아이를 일찍 보내고 서둘러 출판사로 향했다. 출판사와 첫 미팅인데 늦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경기도 파주에 있었는데, 파주에 출판 단지와 꽤 많은 인쇄소가 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다. 집에서 꽤 먼 거리였기 때문에 차를 타고 신나게 밟아야 했다. 일단 몸만 오라고 해서 가는데,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가도 되는 건지 떨떠름했지만 시간이 없기에 그냥 출발했다.
출판사 문 앞까지 도착한 뒤에야 편집자님께 전화를 했다. 다행히 시간을 딱 맞춰서 늦지는 않았다. 별도의 회의실로 안내를 받고는 편집자님께서 커피를 한 잔 주셨다. 서로 처음 보는 거라 어색하긴 했지만, 날 알아봐 준 편집자님이기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나보다 어린것 같긴 한데, 편집자답게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을 것 같은 그런 프로다운 분위기였다. 게다가 메일로 주고받았을 때보다 조용하고 얌전한 말투였다. 그래서 더 신뢰가 갔다. 편집자님은 직접 작성한 출간기획서와 내가 보내준 샘플 원고를 출력하여 세 부 준비해 놓았다.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자 나는 편집자님에게 지금까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하나 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제게 먼저 제안을 주게 되신 건가요?"
이 질문에는 다양한 의문이 내포되어 있다. 어떻게 내 글을 읽게 되었고, 어떤 글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내가 책을 내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 브런치의 수많은 작가지망생 중에 왜 하필 나였는지 등등. 대략 메일로는 출간 기획을 밝히며 의도는 충분히 알려줬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편집자님은 잠시 당황해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직장생활에 대한 책을 하나 기획하고 있었는데 마침 작가님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통쾌한 내용들이 많아서 기획 방향을 잡을 수 있었어요."
이미 기획의도를 메일로 읽어보았기 때문에 편집자님의 답변이 이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육성으로 직접 들으니 좀 더 나의 숨겨진 의문들이 풀리는 것 같았다. 곧이어 출판사 대표님이 회의실에 들어오셨다.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받았다. 나는 '회사 명함이라도 들고 왔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좀 더 성장해서 당당하게 작가로서의 명함을 하나 만들어 놓는 것도 좋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하게 되었다. 대표님은 간략히 편집자님의 브리핑을 들으시며, 앞에 놓인 기획서와 샘플 원고들을 들춰보셨다. 나는 숨죽이며 대표님의 반응과 고개 끄덕임을 마치 학창 시절 성적표를 아버지에게 보여주는 아이처럼 쳐다보았다. 편집자님의 브리핑이 끝나자 대표님은 웃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이신 것 같은데, 글을 잘 쓰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지만, 초보자에게 건네는 응원 정도라 여겼다. 대표님이 이어서 말씀하셨다.
"몇 년 전에 이런 류의 직장상식 책을 우리 출판사에서도 냈었는데, 꾸준히 잘 나가더라고요."
"아, 그런가요?"
"네, 저희가 나름 기획한 방식이 마음에 드시나요?"
"네, 제가 글을 쓰며 예상했던 그림과 얼추 전체 내용들이 어우러지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미리 계약서 양식을 작성해 놓았는데, 한 번 쭉 읽어보시고 궁금하신 내용 있으시면 질문해 주세요."
사실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썼지만 직장상식까지는 고려하진 않았는데, 이 관점으로 가도 무리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하게 곧바로 계약서를 받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책의 제목과 서명란은 공란이었지만, 계약 내용들은 꽉꽉 채워져 있어서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출판사 오기 전에 출판 계약에 대한 글들을 읽은 게 도움이 되었다. 가장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이 초판 발행부수와 인세였다. 나머지 저작권 관련 내용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마지막장을 살펴보고 있을 때쯤 편집자님이 말했다.
"오늘 꼭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천천히 읽어보신 후에 결정하셔도 돼요."
나는 이 말로 인해 결심했다. 그냥 이 자리에서 사인을 하기로. 게다가 1차 원고를 6월까지 출판사에 제출하기로 했다. 집에 가서 고민해 봤자 별 다른 의문이 들 것 같지도 않았고, 괜히 출판사의 변심이 두렵기도 했다. 옆에 놓인 펜을 들고 몇 번에 걸쳐 사인을 하였고, 출판사 대표님은 내 사인 옆에 도장을 연신 찍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도장을 갖고 왔을 텐데... 다음부턴 출판사와 미팅할 때 꼭 도장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행정적 절차가 끝나고, 대표님은 편집자님에게 준비된 책을 선물로 내게 주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인사를 나누고 회의실에서 나가셨다. 편집자님도 내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는 대표님을 따라 나가셨다. 잠시 혼자 덩그러니 회의실에 놓여 있으니, 좀 더 넓은 시야로 회의실의 풍경과 창문을 통해 비친 출판사 직원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내가 앉아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브런치에 글만 썼을 뿐인데, 여기에 내가 앉아있다니...'
이제야 감회가 새로웠다. 회사 회의실이 아니라 출판사 회의실에 앉아 있다는 것도 그랬고, 회사 협력업체 대표님 명함이 아니라 출판사 대표님 명함을 들고 있는 것도 그랬다. 한창 혼자 감상에 젖어있을 때쯤 편집자님이 다시 들어오셨다.
"여기 이 책 두 권 받으세요. 이번 기획과 유사한 책들이라 원고 쓰실 때 도움이 되실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작가님 원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작가님? 아,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난 출판사를 빠져나왔다. 집에 가는 길도 역시나 먼 거리였지만,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오히려 좀 벅차고 행복한 느낌마저 들었다. 6개월 만에 끝내야 하는 숙제를 들고 가는데도 말이다. 마지막 편집자님의 말이 귀에 한참을 맴돌았다. 드디어 나도 정식으로 계약한 출간(예정) 작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