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Jul 04. 2024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의 기원>을 읽고...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문득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나 도대체 왜 살고 있는 거지?', '나란 존재는 세상에 왜 태어나게 되었을까?'라는 원초적인 의문 말이다. 그나마 내가 고민 고민해서 찾은 해답은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나는 역시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거였어!'


그렇게 행복을 좇는 삶을 이어가다 보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행복은 뭘까? 나는 무엇에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행복이 가득한 삶은 정말 풍요로운 삶일까?


  물론 나도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요즘처럼 무덥고 배고플 때 먹는 치킨에 맥주는 허기와 갈증을 한 번에 해결하며 내게 행복감을 안겨준다. 허물없이 만나는 십년지기의 친구들과 함께라면 더할 것이 없다. 또 다른 행복은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다. 아이가 있음으로 가족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고, 아이가 성장하는 걸 보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다. 회사에서 몇 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완수하였을 때 느끼는 희열도 내겐 행복이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몰두해서 이루는 성취감은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행복하다. 문제는 이러한 행복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행복의 반대면은 불행이고, 손바닥 뒤집듯 금방 변하는 게 이것들이다. 치킨에 맥주를 먹다가 속이 뒤집어지고 배탈이 난 경험, 가족 또는 친구와 사소한 것으로 싸우며 배신감을 느꼈던 날들, 회사에서 오랫동안 계획했던 일들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 좋아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금방 실증 나서 황당했던 날들은 모두 불행에 가깝다. 이처럼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지는 순간 행복과 불행으로 갈라진다. 그렇다면 그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이 결과와 상관없이 행복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행복의 기원>이라는 서적이 최근 10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저자인 서은국 교수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서 행복 전도사이다. 2014년에 처음 <행복의 기원>을 통해 행복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통찰한 이후, 꾸준히 행복에 대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는 행복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원초적 의문을 갖고 있던 나에게 그의 서적이 새롭게 개정되어 출간했다는 소식은 너무나 반가운 것이었다. 나는 빠르게 이 책을 집어 들고 행복을 탐구해 가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원하는 해답이 여기 있을 것인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의 첫 장을 펼쳤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라는 말은 정형화된 삶의 근본처럼 여겨져 왔다. 나도 물론 이러한 행복론을 믿고 지금껏 살아왔다. 책에서는 이러한 믿음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인 행복론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즉,  밥을 먹는 건 배를 채우기 위한 목적이듯이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반대로 얘기한다. 행복은 인간이 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은 오랜 옛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환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행복이란 감정 또한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하나의 생존 장치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행복이란 것을 엄청나게 큰 성과물로 여겨왔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이 오히려 내 삶을 행복하지 못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밥을 먹듯이 행복을 잔잔하게 느끼면 되는 것이었는데, 행복하려면 무언갈 이루고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행복이 별 게 아니라면, 우린 행복에 과도하게 목멜 필요가 없다. 절대적으로 행복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수록 오히려 불행에 빠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린 가지지 못한 것을 동경한다. 특히나 요즘 같이 SNS가 활성화된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핸드폰으로 누군가가 명품을 입고, 외제차를 몰고, 강남의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고 쉽게 볼 수 있다. 어느새 이런 사치품과 소유물을 동경하게 되어 삶의 성취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점차 내 손안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고 결국 행복과는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내 주변을 돌아보라. 생각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내 가족, 내 안식처, 내 옷, 내 식사, 내 친구, 내 동료, 내 일, 내 자리, 내 건강 등 이미 난 가진 게 많다. 이미 가진 것들과 어떠한 상호작용으로 함께 하느냐가 행복을 결정짓는다. 이미 내가 가진 것들로 내 주변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이로 인해 삶은 충분히 행복해질 것이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을 열심히 노력하여 성취하기보다는 좀 더 내 주변에 있는 작은 행복들을 찾아 삶을 채워 나가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커다란 기쁨 한 번 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즉,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가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과의 관계가 행복과도 연관이 깊다. 삶이 사람으로 가득하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행복에 가까운 환경이다. 물론 사람이란 게 행복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고, 부정적 감정들을 쏟아내게 하는 것도 사람이다. 따라서 사람과의 관계에선 행복과 불행이 공존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우린 유사성이 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이 사실 불행보단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관계를 맺게 되는 부모는 유전적으로 닮아 있다. 학창 시절 사귀는 친구들도 강제성이 없다면 기질적으로 유사한 아이들끼리 자연스레 모이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는 조금 다르다. 본인과 유사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경제적 이득이나 필요에 의해서 억지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관계가 있다. 목적성 관계는 그 목적이 사라질 때 자연스레 멀어진다. 그러나 사회에서도 가끔 유사성이 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을 만나다 보면 이상하게 학창 시절부터 만난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을 믿어라. 우리는 기본적으로 유사성이 큰 사람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본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주변에 사람이 많고 관계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을수록 생존적 행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우린 다양한 관계 속에서 '눈치'를 보며 살게 된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입장과 생각을 배려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러한 눈치는 사회적 관계 형성에 유리한 반응이고, 곧 생존에 직결된 행위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가치를 존중하는 눈치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행복하기 위해선 나의 가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너무 남 눈치만 보고 살지는 말라는 얘기다. 왜 남의 눈치는 보면서 나의 가치는 존중하지 않는가? 만약 내가 고기를 먹고 싶은데 상대방이 회를 먹고 싶어 한다면, 대등한 상황에서는 한 번씩 고를 수 있는 것이다. 1차를 회를 먹고 2차를 고기를 먹거나, 이번엔 회를 먹어도 다음엔 고기를 먹기로 약속을 받아내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는 행위다. 이 책에서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기 인생에 '갑'이 되어 살아보라고 권한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이다. 어쩌다 상대방의 가치와 내 가치가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조금 더 내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는 게 좋다는 의미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가치를 우선했다면, 꼭 소외된 내 가치에 대해선 별도로 보상을 해주도록 하자. 그것이 본인 삶에서 행복이 멀어지지 않게 막아줄 것이다.



  이 책에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는 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행복은 그저 여러 감정 중 하나일 뿐이고 살아가는 동안 행복한 감정만을 갖는 건 생존 본능 상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슬픔, 두려움, 공포심, 우울함, 당황스러움과 같이 행복도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같은 선 상에 있는 '인간의 반응'일 뿐이다. 오히려 행복만을 바라며 살면 그렇게 되지 못한 나를 자책하는 삶만 이어지고, 이는 오히려 불행과 가까워지는 삶이 될 것이다. 단지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이 가진 강점을 활용하며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이란 감정을 자주 내비칠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오늘만큼은 가까운 사람과 저녁 식사라도 함께 하는 게 어떨까? 천국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