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Sep 26. 2022

출근할래? 육아할래? 둘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K-부모이자 직장인들, 고생이 많습니다!"

  나는 세 살 딸아이를 두고 있는 10년 차 직장인이다. 회사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을 사는 중이다. 어차피 내가 자발적으로 사는 삶이기에 고난 속에서도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보았다. "너 같으면 동일한 시간에 출근해서 회사에서 일할래? 아니면 집에서 육아할래?" 나는 이 질문에 선뜻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상황을 굴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질문은 사실 회사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 중에 어느 게 더 큰가를 묻는 것이고, 그것은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므로 댓글에는 나름의 개인차로 인해 의견이 분분했다.


  아내가 1년 반 정도 육아 휴직을 하고 복직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아내가 처음 복직하던 날 했던 말이 있다. "드디어 해방이다! 회사에 커피 마시면서 콧바람 좀 쐬야지" 1년 반 동안 말도 안 통하는 신생아랑 하루 종일 집에서 씨름하고 있으니, 아마 도 닦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퇴근하고 교대했지만, 엄마로서의 심리적 압박은 같은 공간에만 있어도 자연스레 느껴지고 있었던 듯했다. 아마도 이때 "출근할래? 육아할래?"라고 물어봤다면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출근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고, 하원은 장모님께서 도맡아 하고 계신다. 아내는 복직한 지 8개월이 지나고, 본인도 10년 차 직장 생활을 하고 있기에 선임으로서 중요 업무가 슬슬 본인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최근 들어 야근이 잦아지고,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고 있는 듯했다. 시점에서 아내에게 '출근? or 육아?' 질문을 똑같이 해보았다. 아내는 스스럼없이 육아를 택했다.


  나는 어떨까? 나는 아이를 낳고서 26개월이 지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삶의 변화는 크게 없다. 나는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맘대로 할 수 없는 'K-아빠'이고, 회사에서 돈을 벌어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K-직장인'이기에 꾸준히 회사 생활과 퇴근 후 육아를 병행하였다. 요즘 들어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 말도 통하니까 한결 육아가 수월해지긴 했다. 나는 주로 퇴근 후 아이의 놀이를 담당한다. 보통은 '아빠 그네'나 '아빠 회전목마' 등 몸으로 놀아주는 편인데, 피곤한 날에는 그림 그리기와 찰흙 놀이, 블록 놀이를 자주 한다. 그렇게 9시 넘어서까지 놀아주고 이후로 목욕이나 수면은 아내에게 맡기고, 설거지와 청소 등 밀린 집안일을 한 뒤 나도 샤워를 하고 잠자리를 챙긴다. 그렇게 누우면 10시 반~11시쯤 되고, 개인적인 할 일이 있다면 12시쯤 눕게 된다.


  평일에 어쩌다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상을 해본 적이 있다. 8시에 아이를 깨운 뒤 아침을 간단히 챙기고,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한다. 씻기고, 머리 묶고, 짐 챙기고... 등등 하다보면 이미 9시가 훌쩍 넘어있다. 재빨리 유모차에 태워 5분 거리의 어린이집으로 출발하고, 선생님께 아이를 부탁드린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자유시간이긴 한데, 나는 재택근무니까 집에 돌아와 일을 시작하였다. 일을 하려다 보니 집이 아이 등원 준비로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었다. 일하다 말고 정리를 시작했다. 정리가 끝나자 11시가 넘어가는 시점이었고, 배가 슬슬 고파왔다. 일이 밀려있기에 점심은 그냥 빵 한 조각과 커피로 때우고 일을 마저 했다. 천천히 업무를 보면서 오후 시간엔 여유가 좀 있었다. 하지만 초조하게 시계를 살피며, 하원 시간인 4시가 조금만 천천히 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3시 50분. 아이의 간식을 챙겨 집을 나섰다. 분명 아이는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놀이터에서 나에게 노역을 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에 간식이라도 먹이고 놀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다행히 아내가 전날 준비해 놓은 갈치와 미역국이 있기에,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간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가시를 발라주는 것은 내 담당이었지만, 아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급해 손이 떨려왔다. 저녁을 먹이고 1시간 정도는 TV로 어린이 채널을 틀어준다. 그러고 나서는 평일에 내가 퇴근하고 와서 하는 루틴을 그대로 하면 아내가 집에 온다. 아내는 바로 아이의 육아를 교대하지는 않고 저녁을 꽤 오랜 시간 먹지만, 나는 그래도 아내가 같은 공간에 있음에 안심이 된다. 재택근무인데 회사 일은 어디 갔느냐고? 애보느라  뒷전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오후에 좀 하긴 했지만, 아이를 재우고 밀린 일을 좀 해야 했다. 그렇게 '재택근무+육아'를 체험하고 나니, 나는 '출근? or 육아?' 질문에 '출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직장인 10년 차고, 회사에서 업무는 이제 눈감고도 한다. 그만큼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다. 윗사람을 대할 줄 알고 후배들과 노닥거릴 줄 알기에 회사 생활을 나 스스로 컨트롤하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근무 시간 동안 시간을 잘게 쪼개 중요 업무부터 배분하며, 하나씩 처리해 나간다. 그렇게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성과를 누적시키고, 스스로에게 보람이라는 보상을 주며, 회사에서는 성과급이라는 보상을 제공한다. 스트레스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스트레스의 양을 내가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한 위치에 있다. 그러다 보니 육아보다는 회사가 내 상황에선 좀 더 편하다. 아무리 어린이집을 보낸다고 하여도, 등 하원 전쟁과 컨트롤 안 되는 아이, 집안일,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는 노력, 체력의 한계까지 목마 태우는 놀이 등 육아의 고단함과 스트레스가 지금의 나에겐 더 큰 것 같다. 아이가 4살이 지나고 5, 6살 정도가 되면 말도 잘 통하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져서 육아가 수월해진다고 하는데, 26개월이 막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래도 육아보다는 출근을 택하겠다.


  이렇게 "출근할래?, 육아할래?"의 질문에 나 스스로 답을 내려보았다. 생각보다는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은 업무 사정이 아니기도 하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부모마다 다 다르기에 이 질문의 답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속으로 알고 있다. 출근도 하고 육아도 병행해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런 이분법적인 질문들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재미와 해방감을 느낄 만큼 아이를 키우며 회사 생활을 하는 것에 상당한 고단함과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모든 'K-부모이자 직장인'을 응원하며, 고생이 정말 많다고 우리  스스로를 격려해주었으면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