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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Jul 19. 2023

DAY-3, 경로를 이탈해도 좋아!

화창한 날씨로 시작한 셋째날.

다행히 전날보다 하늘이 맑고 예뻤다. 

마음에 드는 숙소에서 일어나 만난 첫 풍경이 이리도 아름답다니!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이 우리가 전날 먹은 흑돼지구이집. 정말 가깝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철장에 있는 강아지는 우리가 창문을 내다보거나 숙소를 드나들 때마다 무섭게 짖어댔는데 마지막날 알보고니 가까이 와서 만져달라는 이야기였다. 바로 앞 밭에는 동글동글 귤이 달려있었는데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아 아쉽다.


내가 좀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을 때, 친구가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한동안 잠잠해졌다.

알고보니 숙소에 마련된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고 있던 친구가 여기서 반신욕은 꼭 하고 가야한다며 나를 일으켰다.


반신반의하며 따뜻한 물에 입욕제를 풀고 들어가서 기대 누우니 친구의 말에 백 번 동의하게 되었다.

물 색감도, 욕조 안이랑은 다르게 뽀송뽀송 예쁜 룸도 그리고 바로 옆에 크게 나 있는 통창의 풍경도 좋았다.

반신욕을 하며 본 창 밖 풍경이 정말 이뻤는데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니, 어쩔 수 없이 다음에 또 가야겠다!



그리고 욕조에서 시간을 보내며 읽은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제주도와 어울리는 제목과 그림체를 가진 동화책이었다.

어른이 읽기 좋은 동화책이였는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내 존재에 관한 내용과 꽤 거친 그림체가 잘 어울렸다. 


반신욕을 끝내고 나와서 우리는 전날 먹다 남은 군고구마와 귤을 먹고 잠깐 업무를 보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우리에게 아직 남은 숙제, 갈치구이!

아주 긴 냄비에 큰 갈치가 들어있고 여러가지 해물도 있는 찜이 너무 먹고싶었는데 숙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갈치요리 전문점이 있었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기분 좋게 반신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슬슬 귤밭을 지나서 갈치를 먹으러 가는 오전 일정.. 하루의 시작이 좋다!


사실 숙소에서 가까운 식당에 간 거라 과연 잘 찾아온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음식이 나오자마자 제대로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보면 납득이 되었다. 가자미 구이도 뼈까지 씹어먹을 수 있게 구워주셨다.

갈치, 문어, 전복, 새우, 관자... 원없이 해물을 먹는 와중에 꼭 우리 가족들도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갈 카페로는 전날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본 귤밭이 있는 카페!

살살 걸어가니 멀리서부터 주황주황한 귤받이 눈에 들어왔다.

귤 따기 체험을 하려면 따로 비용을 내야 했는데, 귤밭이 그리 크지 않고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어 그냥 경치 좋은 우리창 옆에 자리를 잡고 않았다.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는데 내가 꼭 오설록을 가보고 싶다고 해서 카페 2차를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오설록까지도 택시로는 5~7분 정도였지만 걸어가면 40분이였다.

버스를 기다려볼까도 했지만 비가 오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택시를 불렀다.


오설록하면 유명한 녹차밭!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시들어있고 무엇보다 벌레가 너무 많이 꼬였다. 

입구쪽에 있는 카페 공간은 주문 웨이팅이 너무 길고 시끄러웠다. 웨이팅을 기다려서 주문을 한다 해도 앉을 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 올라온 곳인데 여기가 꼭 와봐야 하는 스팟이였다.

왠일로 위쪽에 있는 카페 공간은 조용하고 자리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그 자리도 없어질까, 얼른 녹차밭뷰를 찍고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도 한창 오후 시간대였다.

그래서 말들과 마주칠 수 있는 오름이 있다길래 오늘도 오름에 가보기로 했다.


당연히 택시를 타고 오름으로 가는데 신기하게도 우리 숙소를 지나서 갔다. 그리고 택시 기사님이 제주도 토박이시라, 길도 잘 아시고 소개도 많이 해주셨다.

그런데 오름으로 가는 길이 점점 이상해졌다. 거친 숲과 물 웅덩이를 지나서 깊은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생각보다 외진 곳에 오름이 있어서 당황하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기사님이 나올 때는 어떻게 나올 거냐 물어보는 순간 그냥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여기까지 택시가 올 리가 없다.

길도 너무 위험해서 겁에 질려서 기사님께 아까 본 우리 숙소로 돌아가 달라고 했다.

기사님도 이 상황이 너무 웃겼는지 한참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말이 있는 곳에 잠깐 내려주시면서 구경하고 다시 타라고 하셨다.

* 가지는 못했지만 ㅎㅎ


아무튼,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우리는 녹초가 되어 침대에 누웠다.

택시에서 너무 무서워서 진을 뺐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하루를 숙소에서 마무리하자고 해도 좋다 할 상태였지만 어제 카페 찾는데 도움을 줬던 친구의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제주도까지 와서 저녁이 되기도 전에 침대에 누워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이곳 저곳 추천을 해줬다.

나는 사실 숙소에 있고 싶었지만 친구의 끈질긴 설득 끝에 다시 밖으로 나섰다.


추천받은 곳은 사계해변.

바다는 어제도 갔고 적잖이 실망했던 터라 또 바다를 보러가나 싶었지만, 내가 틀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가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신기한 지형으로 둘러쌓인 사계해변


지금까지 바다를 많이 봤다고 생각했던 게 무색할 만큼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다른 풍경이 보였다.

지쳐서 숙소에서 여행을 마무리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우리는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주 번화한 바닷가는 아니라서 어떤 식당을 들어가야 할 지 고민되었다.

주변을 맴돌다가 겨우 들어간 횟집에 들어갔다.

당연히 가격은 나갔지만 제주도에서 마지막 저녁이니 회는 먹고 돌아가야 하지 않나.

둘이서 다 먹기 힘들 정도로 회가 한가득 나왔다. 

여기에 전복회, 멍게, 해삼까지. 우리는 먹는 데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나온 해산물을 다 먹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메뉴에 포함되어있던 매운탕을 시켰고 사장님은 매운탕과 함께 생선구이까지 내어주셨다.

앞으로 한 달 정도는 해산물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늘은 점심, 저녁에 해산물을 원없이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돌아가려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택시가 안 잡히는 것! 

친구와 내가 모두 카카오 택시 어플로 택시를 잡아봤지만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

사계해변도 외진 곳에 있을 뿐더러 우리 숙소는 더 외진 곳이기 때문에 숙소까지 들어가 줄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결국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사장님께서 아는 택시기사님께 연락을 해주셨는데, 우리 숙소가 있는 저지면까지 들어가려면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추가요금을 내도 숙소에는 가야하니, 우리는 알겠다고 한 뒤 택시를 기다리는데, 조금 후에 카카오 택시가 잡혔다!

우리는 얼른 사장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죄송하다고 한 뒤 가게를 나섰다.

시내가 아닌 제주도는 정말 깜깜하고 조용했다.


예상치 못한 일들 투성이에 하루가 길었던 우리는 숙소에 돌아와서 거의 쓰러지듯 누웠다.

내일이면 이 숙소를 떠난다는 사실에 괜히 일어나서 숙소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오늘 즐거웠던 제주도를 기억하고

내일 마지막으로 볼 제주도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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