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로 한 두 주면 충분할 줄 알았지만 예상 못했던 일로 한 학기를 꽉 채워 근무를 하느라 5도 2촌이 아닌 5촌 2 도로 보낸 시간도 이젠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퇴근해 돌아와서 마당을 잠깐 둘러보며 고양이 밥을 주고 내일 아침까지 바깥에서 얼게 될 차의 앞창에 성애방지 커버를 씌우면서 시리워진 손과 발을 녹이기 위해 방으로 들어오고 나면 금세 어둠이 내려 딱히 바깥을 드나들 일도 없어지는 시골의 긴 긴 밤, 동이 트기까지 족히열두 시간을 보내야하는 아침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전부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평일에 한 번 내려오는 남편이 무척 심심해하는 듯해서 내려오지 말라고 말려보지만,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 그래서 무의미한 이동이지만 한 주에 한 번의 장거리 운전이 나름 재미있다는 말에 내 고집을 꺾는다.
차를 손보는 일, 은행 업무를 보는일, 치과 진료를 받는 일은 도시에서보다 이곳이 훨씬 더 여유롭고 만족스럽다. 맛있는 쌀과 고구마를 파는 가게까지 입력해 두고 나니 보물창고 하나를 가진 듯 풍요롭기까지 하다.
주말에 집으로 올라가 부모님, 아들과 딸,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의 밀도가 올라가게 되는 일도 장점이라면 장점일 테고 아파서 누워있던 어느 토요일 병문안을 위해 내려와 준 친구들과 작은 주방에서 끓여 먹는 식사도 새로운 느낌이었다.
어느 목요일 저녁 초등학교 동창 단톡방에 긴급 수혈이 가능한 사람을 찾는 한 친구의 요청글이 올라왔다.나이가 나이인지라 저마다의 이유로 헌혈이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찾고 있는 혈액형과 같은 혈액형인 나는 가까스로 헌혈이 가능한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혈소판 수혈은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 또는 남성만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행여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지정헌혈을 하겠다고 말하며 근처 헌혈의 집을 찾아보았다.
경기권이지만 가장 가까운 헌혈의 집은 원주에 있었으며 밤 여섯 시가 지난 마을은 도시의 깊은 밤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기에 다음날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헌혈의 집에 들러 지정헌혈이 가능할지 알아보겠다는 약속만 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질 않아
대학 마지막 학기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사연을 말했다. 아들은 다음날 마지막 시험을 마치면 헌혈을 하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듣는 내 마음이 한없이 훈훈해졌다. 다 컸구나, 잘 컸구나...
다음날 내가 퇴근하기도 전에 아들이 지정헌혈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연락을 해 왔다.
내 헌혈은 예상했던 이유로 거절되었다. 친구에게 아들의 헌혈과 내 헌혈 거절 소식 두 가지를 다 전했고 우리는 다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다음 날 점심 무렵 친구들의 단톡방이 소란스러워졌고 내 이름과 내 아들이 알림 칸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네댓 명의 사람들이 헌혈을 하겠다고 했으나 모두 거절되던 중 그날 아침 내 아들의 피가 환자에게 수혈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도착해서 수혈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들에게 그 소식을 전할 때 아들도 나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친구가 아들에게 상품권이라도 보내야겠다며 연락처를 달라 할 때 아들과 나는 같은 마음을 전했다.
수혈이 가능해서 고마운 건 우리 쪽이라고.
건강히 퇴원하시기만 기도드리겠다고.
일상은 여전히 다르지 않은 색깔로 반복되고 있다.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수혈받은 분의 그다음 안부를 묻지 않는다.
일상은 여전히 같은 빛깔로 반복될 것이다.
폭설이 내려 거북이처럼 운전하며 출퇴근하고 있는, 곧 에필로그의 시간을 마무리하게 될 학교의 운동장에 찍힌 발자국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