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에는 케밥

by 미 지

24시간 문을 여는 평점 4점대의 케밥집이 숙소 앞 대학가에 있다. 아침으로 그 궁금한 맛의 케밥을 먹으려고 새벽길 산책 삼아 올드타운 골목을 찾았다.

골목에 젊은 사람들 여럿이 서성이며 수다 떨며 장난을 하고 있었다.

슬럼가였다면 얼른 돌아서 가야 하는 분위기였지만 한 두 군데 상점에서 가게 청소를 하고 있었고 골목을 청소하는 차가 지나가고 있으니까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걸었다.

한 남자아이가 해맑게 '까꿍' 하면서 내 앞을 스쳐갈 때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맙소사! 엄청난 술냄새. 내 머리까지 아프게 하는 지독한 술냄새였다.

숙취에는 케밥이 제일이지... 아마도... 이 지역에선...

이 새벽에 케밥집 골목이 이렇게 소란한 이유였다.

술 취한 젊은 남녀 이십여 명이 가게 안에, 가게 밖에 와글거리며 서 있었다.

좋을 때지... 잘 챙겨 먹으러 왔으니 장하다... 오늘 하루는 고생 좀 하겠네...


난 조용히 발길을 돌려 광장 앞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 옆에 있는 가게 앞의 청동 할아버지 조각상 손에 꽃을 쥐어준 사람도 간밤에 술 파티하던 저 아이들 중 있겠지.

한적한 새벽 올드타운은 케밥집 골목 한 곳만 빼고는 고요에 잠겨있었다.


숙소 아파트 복도에 커다란 벽난로가 서 있다. 크라쿠프 대기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에 이젠 집 안에서 나무나 석탄을 때는 난방을 하면 벌금을 내야 한단다. 바닥난방이 아니라 벽난방을 하고 있는 이 아파트 복도에도 라디에이터가 작동되고 있다.


점심 산책을 나와서는 아파트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구글맵에 '좋아요' 추천을 해 달라며 적극적으로 권하는 직원이 예뻤다. 나는 번역기를 쓰지 않고 그냥 한글로 평을 올렸다. 필요한 사람이 번역기를 돌리는 거니까. 직원이 빈 그릇을 가져가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계산을 할 때 그 직원은 보이지 않았고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내 카드를 받아 결제를 하는 동안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반색을 하며 당신 아들이 한국여자와 결혼을 한다고, 10월에 한국에 올 예정이라고도 했다. 아마 내가 구글에 한글로 추천평을 올린 것을 보고 나와 이야기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을 그분의 이야기에 '축하한다'라고 말해주면서 난 그저 행복했다.

행복을 빌어요! 이젠 자녀들 결혼시키는 부모님들이 부러워요, 난...


길을 건너려고 서 있다 보면 지나가는 차 열대 중에서 여덟 대는 멈추어 선다. 내가 안 건너겠다고 사인을 하고 돌아 서 있으면 지나가지만, 내가 ' 너 먼저 가라'라고 손짓을 하면 절대로 안 움직인다. 트램조차도 서서 사람이 건너갈 때까지 안 움직인다.

그래서 그냥 길 건널 때는 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열 대 중 두대는 안 그러니까 너무 믿지는 않으며 길을 건넌다.


바벨성으로 걸어가는 길에 구글 맵에 '놀이터'라고 적힌 곳이 있다. 철제대문 안으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빈 놀이터에 들어가보았다. 삼각형 몇 개가 겹쳐 보이는 건 목재로 감싼 미끄럼틀이다. 바크를 듬뿍 깔아놓아서 폭신폭신한 바닥. 도르레에 달린 바스켓이 움직이는 모래놀이장. 이 멋진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논다.

공원 안에는 베어놓은 아름드리나무 하나를 쓰러진 모양대로 다듬어 전시해 놓은 곳이 있었다.

'산 새들이 노래한다 수풀 속에서... 우리들은 아름드리나무를 찍고 아가씨들은 풀을 베어라'

중고등학교 때 배운 유럽 민속음악 노래 가사에 나오는 그 나무. 지금은 전기톱으로 자른 자국이 확연한 아름드리나무가 누워있는데 색깔이며 가지의 모양이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눈에 띄었다. 나만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었던 듯, 가까이 다가가 한참 동안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공원에는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강아지들이 잔디밭으로 뛰어들어갔다가 한참을 뛰놀고 나오곤 한다. 잔디밭 군데군데 배설물이 흙과 낙엽과 한데 섞여 썩어가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산책하는 강아지 배설물에 관해서는 정해진 규정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산책을 할 때는 꼭 보도블록이 깔린 길로만 다니고 있다.


중앙역과 연결된 갤러리아 쇼핑센터에서 낯설면서도 낯익은 귀여운 장면을 보았다.

열 살 정도 된, 붉은 뺨에 흰 피부의 건강한 여자아이 하나가 한 손엔 ZARA, 한 손엔 H&M 쇼핑백을 들고(한쪽 팔은 아마도 같은 쪽 어깨 위를 향해 있었다) 한없이 자랑스러운 얼굴표정으로 패리스힐튼의 워킹을 하며 ZARA 매장을 나오고 있었다. 엄마가 지갑을 정리하며 서둘러 종종거리면서 아이 뒤를 따라 나오는데, 매장 밖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던 아빠와 오빠의 모습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동생이랑 나이차이가 거의 날 것 같지 않은 똑같은 붉은 뺨을 가진 오빠는 진지한 표정으로 동생의 쇼핑 목록을 물었고, 아빠는 세상 더 없는 흐뭇한 표정으로 딸바보 인증 미소를 날리고 있는데, 아! 세상에나...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허락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눌러야 했던 가족의 모습이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잘난 척 뻐기는 (자뻑) 워킹이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과장된 표현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자기감정을 감추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성장기에 마음껏 보여 줄 수 있는 표정이었구나 싶었다. 성숙한 사람들은 저절로 감추어 두게 되는 표정, 어린아이이기에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표정, 그러니 그 표정을 보는 아빠의 마음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기뻤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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