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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Jun 10. 2023

이제는 우리가 이별할 때

고양이들 밥을 그만 주기로 한다.

보름 전부터 샴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마당을 점령했다.

매력적인 눈 색깔을 가진 족보 있는 이 품종묘가 유기되지는 않았을 것이니 나는 이 고양이가  집냥이일 거라고 믿고 있다.

이 샴고양이는 아침 일찍 나타나서 문 앞에서 야옹거리며 참견을 하다가 해 질 무렵이면 밖에서 또다시 야옹 인사를 하고 사라지곤 했다.

아침 출근, 저녁 퇴근하는 루틴을 가진 이 아이가 안 보이는 동안에만 치즈, 턱시도, 고등어테비 길냥이들이 산속에 숨어있다 조용히 나타나서 몸을 바짝 낮춘 채 밥을 먹고 사라졌다.


밑으로 난 길로 몰래몰래 드나드는 아이들과는 달리 샴고양이 이 아이는 온 동네를 뽐내듯 돌아다니며 참견을 했다.


살구나무 밑에 있는 사초를 질겅질겅 씹어먹으며 몸을 낮추고 숨어있다가 잡초를 뽑고 있는 내 팔을 덥석 잡아당겨서 화들짝 놀라게 하기도 하고 옆집 화단을 돌아다니다 눈이 마주치면 커다래진 눈으로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와서  꼬리를 높이 세우고는 내 종아리에 몸을 비비며 장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바닥만 한 텃밭에 심은 작물 옆에, 작은 잔디 뜰에 배변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 조금씩 성가시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 아이를 보면서 내가 알게 된 것 하나는 나는 이렇게 사람과 친해지려고 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것은 그 아이들이 딱히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고 또 거의  다녀 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과 함께.


내가 놓아둔 사료를 비둘기와 산새들이 먹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도 그래서 같은 마음이었다. 고양이사료를 새들이 먹으면 안 되는 게 있는지 검색해 보면서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빈 그릇에 사료를 채워두곤 했었다.


오늘 오후 집 밖 나갔을 때 마당에 누워있던 노란 치즈냥이 한 마리가 나를  피해 후다닥 도망을 나갔다. 곧바로 앞 집 정원에서 고양이 혼나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가던 고양이가 가꾸던 화초를 망쳐놓은 것 같았다. 어쩐지 앞집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잠시 서성이는 중에... 앞집 정원에서 내 집 마당으로 도망쳐오는 아이는... 방금 전 도망간 치즈냥이가  아니었다.  샴고양이였다.


샴고양이는 무슨 일로 자신이 야단을 맞았는지 다 알고 있는 듯 풀이 죽어서 내 눈도 쳐다보지 않으며  마당에 엎드려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 얼른 샴고양이에게 말했다. 


"제 밥 그만 줄 거야. 친구들에게 전해줘...."


한바탕 야단을 맞고 시무룩해있던 그 아이는 여전히 바닥에 엎드린채 위로 대신 밥그릇을 치우는 나를 세밀하게  바라보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변명하지 않을게.

밥은 이제 더 이상 놓아두지 않아.

여름, 이 계절은 내가 주던 밥을 거두어도 좋을 때니까.


작별인사 같 건 없는 이별이 더 좋을 거야, 이런 이별은.

얼굴 마주쳐도 아는 척하지 말고 처음부터 모르는 사이였던 것처럼 그렇게 지나가...


내 마음이 더 귀찮아지기 전에

너희들이 더 미움받기 전에


작별인사 같은 것 없이 너희들은

너희들의 자연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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