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버지가 기억하는 고향은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담배밭, 목화밭, 콩밭 매던 당신 어머니와 땔감 나무 한 짐 나르고 소여물을 끓이시던 당신 아버지를 두고 서울로 올라와 팍팍한 도시에 둥지를 틀고 살아내기 바빠서 추억할 거리 같은 건 있거나 없거나상관없는일가들이 그저 살아가는 곳, 그냥 살아지던 곳. 고향집에 새로 태어난 어린 동생이 가끔 들르는 당신 딸, 아들들과 함께 걸음마를 배우던 곳.
막내이모와 나는 동갑이다.
방학 때 내려가던 외가댁에서 막내이모는 더없이 편안한 말상대가 되어주었다. 산 밑 외딴집에 어둠이 내리면 등잔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올려 팔각성냥통을 능숙하게 다루며 등잔불을 켜 주고, 광에서 고구마와 무를 내다가 깎아서 먹게 해 주고, 한 백 미터쯤은 떨어진 곳에 사는 이웃집 사람들 이야기도 해 주고 그랬다.
'이드라 사람이 먹으라고 가져왔다'며 떡 한 덩이를 내어주던 날 나는 물었다.
"이모, 이드라가 뭐야?"
이모는 아주 쑥스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잉~ 저 옆에 있는 집!"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말은 '이드라'와 '그드라'였다.
외딴 마을에 띄엄띄엄 있는 이웃집 두 채 중 좀 가까운 집은 '이드라', 좀 먼 집은 '그드라'.
어린 마음에 무척 재미있는 단어였는데 그 마을에 더 많은 집이 들어서고 마을 길이 다져지면서 흐지부지 사용하지 않는 말이 되더니 지금은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이 되어있다.
"아버지, 어릴 때 시골에 놀러 가면 이웃집을 '이드라', '그드라'라고 하던데 그거 그 마을에서 쓰던 말이 맞아요?"
하고 아버지께 여쭈었다.
"응, 그랬지. '이드라 집', '그드라 집'이라고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런 말을 썼어."
부모님의 고향 주변을 차로 지나다 보면 어디나차가 드나들기에 불편함이 없이 잘 다져진 길이 마을과 마을 사이로 나있다.
기억도 묻어두고 추억도 묻어두고 바쁘고 사납게 살아온 시간들의 고단함도 이제는 하나 둘 묻어가고 계시는 부모님의 고요하고 한적한 시간들을 나는 가끔씩 내 기억을 들추어가며 들여다보려고 하지만 어쩐지 그건 이제 쓰지 않게 되어버린 마을의 방언처럼 굳이 떠올려보아도 흔적 없이 멈추어 사라지는 것이 되곤 한다. 천천히 그저 지나는 시간과 다름없이, 흘러가는 구름과 다름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도록놓아두는 것이 익숙해지는 일이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