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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Jun 30. 2023

'이드라'와 '그드라'. 외딴 시골 마을 방언의 기억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

콩밭 는 아낙네의 흠뻑 젖는 베적삼,


그 노래를 처음 들으시던 순간의 엄마와 아버지가 가끔 생각난다


'내가 살던 곳인데... 칠갑산 노래가 다 나오는구나...'


아버지의 음성에 담긴 것은 반가움이나 자랑스러움이나 그리움 같은 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의아함이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기억하는 고향아마 그랬던 것 같다.  담배밭, 목화밭, 콩밭 던 당신 어머니와 땔감 나무 한 짐 나르고 소여물을 끓이시던 당신 아버지를 두고 서울로 올라와 팍팍한 도시에 둥지를 틀고 살아내기 바빠서 추억할 거리 같은 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일가들이 그저 살아가는 곳, 그냥 살아지던 곳. 고향집에  새로 태어난 어린 동생이 가끔 들르는 당신 딸, 아들들과 함께 걸음마를 배우던 곳.


막내이모와 나는 동갑이다.


방학 때 내려가던 외가댁에서 막내이모는 더없이 편안한 말상대가 되어주었다. 산 밑 외딴집에 어둠이 내리면 등잔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올려 팔각성냥통을 능숙하게 다루며 등잔불을 켜 주고, 광에서 고구마와 무를 내다가 깎아서 먹게 해 주고, 한 백 미터쯤은 떨어진  곳에 사는 이웃집 사람들 이야기도 해 주고 그랬다.


'이드라 사람이 먹으라고 가져왔다'며 떡 한 덩이를 내어주던 날 나는 물었다.

"이모, 이드라가 뭐야?"

이모는 아주 쑥스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잉~ 저 옆에 있는 집!"


그렇게 야기하면서 알게  말은 '이드라'와 '그드라'였다.

외딴 마을에 띄엄띄엄 있는 이웃집 두 채 중 좀 가까운 집은 '이드라', 좀 먼 집은 '그드라'.

어린 마음에 무척 재미있는 단어였는데 그 마을에 더 많은 집이 들어서고 마을 길이 다져지면서 흐지부지 사용하지 않는 말이 되더니 지금은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이 되어있다.


"아버지, 어릴 때 시골에 놀러 가면 이웃집을 '이드라', '그드라'라고 하던데 그거 그 마을에서 쓰던 말이 맞아요?"

하고 아버지께 여쭈었다.

"응, 그랬지. '이드라 집', '그드라 집'이라고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런 말을 썼어."



부모님의 고향 주변을 차로 지나다 보면 어디나 차가 드나들기에 불편함이 없이 잘 다져진 길이 마을과 마을 사이로 나있다.


기억도 묻어두고 추억도 묻어두고  바쁘고 사납게 살아온 시간들의 고단함도 이제는 하나 둘 묻어가고 계시는 부모님의 고요하고 한적한 시간들을 나는 가끔씩 내 기억을 들추어가며 들여다보려고 하지만 어쩐지 그건 이제 쓰지 않게 되어버린 마을의 방언처럼 굳이 떠올려보아도 흔적 없이 멈추어 사라지는 이 되곤 한다. 천천히 그저 지나는 시간과  다름없이, 흘러가는 구름과 다름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이 익숙해지는 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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