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어쩌다 손가락을 다쳐서 피가 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시다. 피가 나면 아프지요? 아픈 걸 느끼는 건 손가락인 걸까요? 그게 아니라는 건 다들 아실 테니 바로 설명 들어갑시다. 자, 내 손가락이 칼에 베었어요. 생명이 위험해 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거예요. 우리 몸은 재빠르게 두뇌와 연결을 시작합니다. '나, 손가락에 피가 나, 어째야 하지?' 하면서 두뇌에 보고를 하면 두뇌는 재빠르게 비상경보를 발령합니다. '아파! 아파! 펄쩍펄쩍 뛰고 비명을 지르라고. 아픈 걸 모르고 넘어가면 죽을 염려가 아주 크지. 얼른 치료해! 어서 치료를 하라고! 괜찮아질 때까지 내가 계속 아프다는 신호를 보낼 거야. 어서 치료해. 다 나을 때까지 조심해.' 두뇌가 그렇게 온몸으로 연결된 신경의 말단으로 전기 신호를 보내죠. 시냅스를 통해서 모든 정보를 순식간에 주고받는 거예요. 자, 내 몸의 세포세포들이 모든 감각신경을 총동원해서 중추신경과 말단신경 간에 감각 정보를 동시에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전달하는 그 모든 감각 정보의 처리 시간은 0.1초도 걸리지 않아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제가 방금 시냅스라고 했죠? 뉴런이라는 신경세포의 부분 중 자극을 세포 밖으로 전도시키는 돌기인 축삭의 끝부분과 신경전달물질이 오가는 다음 뉴런 사이의 틈을 시냅스라고 합니다. 신경과 신경 사이, 신경과 근육 사이, 신경과 분비세포 사이에 존재하면서 우리 몸에 일어나는 자극이나 흥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죠. 모든 감각세포마다 시냅스가 연결되어서 순식간에 처리가 필요한 감각정보를 전달하는 거예요. 맞닿은 시냅스 돌기 간에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하는 전기자극을 전달하는 기전으로 알려져 있지요. 온몸의, 모든 세포의 뉴런마다 실시간으로 내 몸을 관통하는 전기자극을 전달시켜서 내가 온전히 감각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건 아주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에요. 내 몸의 감각기관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두뇌와 연결되어 있다면 내가 손가락을 다쳤을 때 나의 두뇌가 오로지 손가락과 연결된 통로만으로 감각을 받아들이고 적절한 조치를 전달하고 함께 힘을 합해야 하는 다른 세포단위의 신경계를 연결하는 각각의 통로를 통해서 필요한 대응을 하도록 지령을 내려야 한다면 훨씬 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감각처리 과정에서도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더 많죠. 각각의 세포단위마다 동일한 감각정보를 전달받아서 각각의 위치에서 필요한 각각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아주 능동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미국의 뇌 과학자인 조지프 르두 박사는 '자아는 곧 시냅스'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답니다.
상담 대학원의 수업시간에 한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개인의 영역을 확대해가다 보면 사회적 집단 안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대화도 저절로 시냅스가 연결되듯 흐르게 되는 것이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대와 나는... 그대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연한 대화가 불가능했다.
대화의 마지막을 늘 성내듯 소리 지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나의 음성을 내 귀로 들을 때마다 항상 나는 백 년 동안 한 집안의 사람들이 쌓아 온 '대화를 이어가는 스타일'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이 집안사람들의 그것은 "느리고 불완전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너 때문에 생긴 불상사"라는 답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모든 대화의 목표이며 목적은 아닐까 싶어졌다. 나를 만나기 이전부터 준비되어 온, 모든 시작과 모든 끝에 있는 나로 인해 틀어진, 앞으로도 영원히 틀어지게 될 이유로 준비되고 사용되는, 과거형과 현재형과 미래형의 말이었다.
'너 때문에'
시어머니와의 대화가 그런 식이었다.
신혼 때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아들 내외 집에 며칠 다니러 오신 시어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던 날이었다. 나는 서둘러 퇴근을 하고 저녁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기 시작했다.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다섯 시까지 혼자 집에 계시다 퇴근해 돌아온 며느리가 반가왔던 그분, 시어머니 사빈 씨가 내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밥을 벌써 하니?"
"네? 밥 지금 하지 말까요? 밥 말고 다른 거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내가 언제 밥 하지 말라 했니? 참 이상하구나 너는."
그렇게 말씀하시곤 다시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시다가 잠시 뒤 퇴근을 해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당신의 아들, 내 남편을 보며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 쟤가 말이다 글쎄, 내가 밥을 하지 말라고 했다며 막 뭐라고 하지 뭐냐!."
그런 식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분과 나의 대화 가운데에서 내가 놓쳐버린 것이 있을 것만 같아서 아무 말을 못 하고 서 있기만 했었다. 번역기를 돌려보자면 아들 내외가 출근하고 없는 빈 집에서 딱히 갈 곳도 없는 낯선 바깥으로의 혼자 나들이는 엄두를 내지 못한 채로 집안에서 tv만 보던 무료한 낮시간이 지나고 퇴근해 돌아온 며느리가 반가워서 익숙한 질문형의 말로 대화를 나누어보려고 했을 뿐, 그 말에 어떤 뜻이 담긴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당신의 질문에 무슨 의도가 들어있는 것처럼 받아들인 것에 대한 불편감이기는 했다. 진즉부터 자주 이런 대화가 반복이 되곤 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런 식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면에 대해 낯선 번역기를 돌려보고는 했었다.
드디어 그런 반복이 내 집에서 또다시 생겼던 그날 나는 드디어 남편과 시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물었다.
"어머니! 제가 언제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하시는 거죠?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그건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잖아요!"
시어머니는 내가 당돌하게 말대꾸를 했다며 노여워하셨고, 다음날 너무나 신경을 썼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며 병원에 가셨고,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순식간에 그분, 시어머니 사빈 씨가 '나 때문에' 고혈압 환자가 되고야 말았다는 것이 남편 집안의 정설이 되었다.
설거지를 하다 싱크대와 연결된 정수기 호스가 분리된 어느 오후였다. 남편에게 수도 연결을 부탁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이미 알고 있던 (이거, 안돼. 물 잠가 봐. 가만있어보자. 드라이버를 가져와 봐. 드라이버 어딨지? 야, 드라이버를 가져오면 어떡하냐. 몽키를 가져와야지. 몽키 어딨지? 야, 이거 몽키가 왜 이래? 왜 안 조여져? 이게 아닌가? 철물점엘 가야 하나? 야, 몽키 안 망가졌다잖아.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창피를 당했는지 아나? 등등 손가락 하나 정도를 까딱이면서 그는 비슷비슷한 단어를 나열해 가며 빈정거리고는 했다.) 나는 남편을 부르지도 않은 채로 수도꼭지와 호스를 연결하다가 벌어진 틈새의 간격을 조절하기 위해 과도를 들이밀었다. 집안 일과 공구 사용이 익숙하지 않기로는 남편과 다를 바 없던 나였기에 순간적으로 과도에 손가락을 심하게 베어버렸다. 생각보다 깊은 상처여서 얼른 옆에 있던 키친 타월을 꺼내 손가락을 둘둘 말고 지압을 했지만 순식간에 키친 타월 여러 장이 피로 흥건해지고 있었다. 소독약을 찾으러 주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도 피가 흥건해 조금씩 바닥에 핏자국이 떨어지는 내 손가락을 보며 남편이 병원에 가자고 일어섰다. 거즈로 손가락을 감싸고 다른 손으로 조금만 힘을 빼면 피가 흥건해지는 손가락을 꽉꽉 잡아 쥐고 주차장에 내려가서 남편의 차를 탔다.
남편은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가만히 운전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보았다.
손가락을 움켜 쥔 나는 힐끗 남편을 보았다. 뭐지?
그는 가만히 운전석에 앉아서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나는 또 남편을 보다가 물었다.
"왜? 왜 출발 안 해?"
"히팅 해야지...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말야, 차는 오랫동안 세워 둔 다음에는 꼭 2분 동안 공회전을 해서 엔진 예열을 시켜줘야만 해."
그는 정확히 2분 동안 엔진을 공회전시키고 난 뒤 집 앞 900미터 거리에 있는 병원을 향해 출발을 했다.
응급실에서 아홉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으면서 나는 다친 손가락이 아니라 2분 동안 자동차 히팅을 하며 앉아있던 남편의 무감각한 눈빛에 자꾸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할 때는 거의 내 차를 이용하곤 했다. 새 차를 사면 일정 거리를 달릴 때까지 고속으로 쌩쌩 달려주면서 엔진을 길들여야 하는데 빨리 달리는 것에 겁을 먹는 여성 운전자에게 길들여진 차는 아무래도 연비가 더 나오게 된다는 것이 그 시절 자동차 업계의 정설이었다. 기계에 대해서는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던 남편은 나의 새 차를 길들여주겠다며 고속도로를 달리곤 했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과 함께 주말여행을 하던 날의 일이었다.
장거리 여행을 준비하고 나선 우리 가족이 휴게소에 들러서 잠깐 휴식과 요기를 한 뒤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로 이동을 하기 위해 휴게소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를 이동하려던 순간, 갑자기 차 뒤에서 '쿵' 소리가 크게 들렸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약간 휘청일 정도의 진동이 전해졌다. 당황하면서 차에서 내려 상황을 보니 뒤쪽에 주차를 하던 차주가 내려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앞에 차가 있는 걸 몰랐다며 웅얼웅얼하는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있었으며 혀가 꼬여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가까이 있던 주유소의 사무실 문이 다급하게 열리더니 누군가 달려 나왔고 그가 나에게 사과를 하는 동안 뒤차의 차주가 나를 향해 여전히 횡설수설한 중에도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대신 사과를 하면서 차주에게로 가서 사무실로 가 있으라고 소리를 쳤다. 차주는 비틀거리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고를 낸 차량의 운전자는 주유소의 사장이라고 사무실에서 나온 그 사람이 내게 말했다. 술을 한 잔 하고 차를 주차하겠다며 나가더니 사고를 냈다며 보험 회사에 연락을 하고 충분히 보상을 받으시라고도 말을 했다.
사고를 낸 당사자가 보험회사에 연락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사무실에서 나온 사람과 내가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서 사고 접수를 하고 증빙서류를 받고 서명을 받는 모든 과정에서 남편은 빠져있었다. 상황을 마무리하면서 뒤 범퍼가 찌그러진 차에 타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내 눈에 들어온 장면은 당황해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살펴보고 있는 어린 아들과 딸, 그리고 그 아이들 틈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차에 타서 나는 조금 많이 섭섭해서 남편에게 말했다.
"가해 차 운전자가 술에 취해서 나에게 욕을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한 순간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고 피해 있을 수가 있지?."
"네 차다. "
남편은 짧게 말하며 운전을 시작했다.
"당신이 운전하고 있었잖아!"
나는 소리를 질렀다.
"운전대에 앉아서 시동을 걸려고 하던 중이었으니 운전을 하고 있던 건 아니다."
그는 또 그렇게 말했다.
아이 둘이 뒷자리에 앉아서 우리 둘을 보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순간이 되면 그도 대화를 시도하려 애를 쓰기는 한다. 가족 간의 대화 주제는 심각하지 않은 사소한 상황에 대한 것으로 삼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그가 선택하는 대화의 여는 말은 언제나 어김없이 상대방의 일상 행동이나 상대방의 말에 대한 비난과 비평을 담은 3 형식의 의문문이다. 말하기 예절 교본에 나와있을지도 모르는 감탄사 곁들이기를 절대로 잊지 않는다.
“뭐야, 벌써 자는 거야? 야,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일찍 잠을 잘 수가 있지?”
“뭐야, 게임하는 거야? 야, 정말 대단하다. 눈도 안 피곤한가? 눈 참 대단하다.”
“뭐야, 벌써 밥 먹은 거야? 야,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일찍 밥을 먹을 수가 있지?”
그러나 정말로 중요하고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상황이 되면 그는 모든 감각의 창을 닫아버린 듯한 먹통 상태가 되어버린다.
단락된 시냅스.
더이상 연합의 활동을 멈추어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