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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 횡단 연구 보고서

by 미 지

지방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부부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근처에 사시는 시아버지께서 매일같이 오셔서 아들을 돌보아주셨다고 했다. 처음에는 큰 아들을.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작은 아들을.

매일 아침 열 시에 오셨다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가 잠이 들면 가셨다고 했다. 아이를 옆에 앉혀두고 당신이 재미있어하는 TV를 보았다.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자 오후 두 시쯤 아이가 하원하는 시간에 오셔서 밤 열 시가 되면 가셨다고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매일 사주었는데 아이는 할아버지가 사 주시는 햄버거를 항상 맛있게 먹지만 가끔 먹기 싫다고 말을 하면 이해를 못 하셨다고 했다.

"너, 이거 잘 먹는 거잖아. 좋아하잖아. 자, 어서 먹어라."

그러면 작은아들은 힘들게 그 햄버거를 먹다가 토하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거기까지가 아이의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나는 궁금했던 몇 가지 질문을 하다가 아이의 형 역시 경도 지적 장애가 있어서 특수학급에서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공과를 다니다가 재미없어해서 지금은 그냥 집에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아이가 학교 생활을 하던 중 보인 낯선 반응들에 대한 의문이 많이 해소되었다.


특수학급에 올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는 아이였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감춰두었던 어리광이 나오는 날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그날따라 유난히 배고파하는 6학년 남자아이 두 명에게 과자 한 봉지씩을 주었다.


아이는 봉지 윗부분을 자르기 위해 가위를 찾아왔다. 그러다가 다른 아이가 과자 봉지 가운데를 양쪽으로 잡고는 봉지 위쪽 밀봉선을 쭈욱 잡아당겨 여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는 거냐'라고 물었다.

나는 과자 봉지의 밀봉선 가운데 부분에 약간의 틈이 보일 정도로 잡아당긴 후 아이에게 끝까지 열어보라고 하며 건넸다. 힘 조절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잡아당기던 과자 봉지는 끝까지 열리지 못한 상태로 터져버리면서 안에 들어있던 과자 몇 개가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아이는 화 난 눈으로 떨어진 과자를 쳐다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줘서 그러잖아요."


"네가 처음 해 보는 거라 익숙하지 않아서 생긴 일인데, 그런 건 아무 일도 아니니까 떨어진 과자를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아직 많이 남은 봉지 속 과자를 먹으면 되지 않을까?"


흩어진 과자를 줍기 위해 엉거주춤 쭈그려 앉은 아이가 다시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이걸 하나씩 어떻게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려요?"


나는 책 한 권을 아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지금은 이 책을 한번 이용해 보자. 이렇게 이렇게 손으로 과자를 쓸어 모아서 책 위에 올려. 그리고 쓰레기통으로 가져가서 쏟아 버리면 돼"


책 위로 주섬주섬 과자 부스러기를 담은 아이가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이거, 책이 이렇게 구부러지는데 어떻게 쓰레기통으로 가져가요?"


그렇게 책이 구부러지는 모양을 내게 보여주다가 모아 담은 과자 부스러기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는 또다시 부들부들 떨었다.


"선생님이 잘 못 가르쳐줘서 이러잖아요!"

"자, 과자 쓰레기가 쏟아지면, 다시 모아서 담으면 돼. 이렇게 모아서, 올린 다음에... 자, 이제 책을 잘 들고 가서 쓰레기통에 버려봐!"


아이는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책을 아슬아슬하게 손으로 붙들어 지탱하면서 몇 걸음을 걸어가서는 드디어 쓰레기통에 과자 쓰레기를 쏟아 넣었다. 그리고 또다시 부들부들 떨었다.


"여기, 또 흘렸잖아요!"


"쓰레기통에 제대로 안 들어가고 옆으로 몇 개 떨어진 건 손으로 집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지. 이렇게~ 그리고 저거, 저 작은 건 그냥 두면 되고. 그런 것까지 담아서 버리려고 하면 화가 나거든. 자 이제 자리에 앉아서 많이 남아있는 과자를 먹는 건 어떨까?"


비로소 마음이 놓인 듯 아이는 자리에 앉아서 과자 봉지를 드디어 끝까지 열고 과자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그것 봐. 과자 몇 개 흘린 거, 아무 일도 아니야. 청소기도 빗자루도 필요 없이 그냥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리에 앉아서 하던 일 하면 끝! 그런 일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지?"


"그런데 우리 엄마는 과자 흘리면 막 야단친다고요. 한 번도 괜찮다고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고요"


"응, 그거 야단치는 게 맞아. 엄마 말처럼 안 흘리게 조심했어야지. 그런데 네가 학교에 와서 다른 사람들을 보고 배우는 것 중에는 이런 것도 있는 거야. 아, 과자 봉지를 그렇게 여는 방법도 있구나! 과자를 흘렸는데도 화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구나! 바닥에 떨어진 과자 쓰레기를 종이 위에 대충 모아서 버리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것 말야. 그렇게 평소에는 해 보지 않았던 걸 보고 배우는 것도 우리가 학교에 오는 이유 중에 하나야. 아무튼 오늘, 아주 잘했어!"


아이는 천천히 화나지 않은 눈으로 돌아왔다.



'굿 닥터'라는 드라마가 화제가 되던 때의 일도 있었다.

3학년 아이의 생소한 모습 속에서 드라마 속 자폐 의사의 모습을 겹쳐 보기 시작한 같은 반 아이들이 아이에게 천사 또래가 되어주겠다며 모여들었다. 뒤로 돌아 앉아 교차된 양손으로 피아노를 능숙하게 칠 줄 아는, '타쿠아즈 블루'를 '터쿼어즈 블루'로 세련되게 고쳐서 발음하는 아이는 때로는 신비롭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열 살짜리 또래아이들이 열 살짜리 고기능 자폐아이의 행동 패턴을 성숙하게 받아들여 줄 리가 없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으니 곧 외톨이가 되고 만 아이는 그때 막 선물로 받은 스마트폰에 가상의 번호 하나를 입력해서 영혼의 친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틈 날 때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영혼의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고 했다. 몇 날을 그 영혼의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날, 아이 엄마가 초췌한 얼굴로 나타나서 말했다.

"선생님, 어제 경찰서 갔다 왔어요. 아이가요...."


불행하게도 아이가 무작정 입력해서 저장해 둔 전화번호의 주인공은 30대 미혼의 여성이었다고 했다.


'안녕, 내 영혼의 친구. 난 너를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냈어. 나에겐 너밖에 없어.'

'안녕, 내 영혼의 친구. 오늘은 조금 행복했어. 우리 같이 만나자'

'안녕, 내 영혼의 친구. 오늘 너는 어떻게 지냈어? 나에게 네 소식을 알려 줘'


시도 때도 없이 이런 문자가 들어온다면 누구라도 핸드폰을 경찰서에 들고 가서 신고를 하고도 남을 내용이었다.


경찰서에 불려 간 아이 엄마와 아이 아빠는 상대 여성에게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빌고 또 빌면서 용서를 구했다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있었고, 영문을 모른 채로 경찰관이 하는 말에 대답을 하면서 상대 여성에게 사과를 했고, 전화번호를 지웠고, 다시는 문자를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몇 번이나 하고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꿈꾸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속에서, 꿈꾸는 사람으로 한 때를 산다.

내가 나의 첫 대상인 나의 양육자 -대부분은 부모- 를 통해 형성된 세계관을 확대시켜 나가기 직전까지, 나를 안정되게 지켜준 부모의 세계가 전부였던 시기에 나의 형상대로 나의 이상을 형성시킨다.

대부분 어린 시기에 형성되는 이 세계관은 나의 기질과 형상을 닮은 채로 사회로 나가 천천히 익숙하지 않은 대상들을 만나 깎이거나 덧붙여지면서 자라게 된다.

익숙하지 않은 대상들의 언어와 행동을 익히는 일. 그것이 비로소 나와, 나를 만든 나의 부모의 세계에서 벗어나 비로소 사회적 객체로서의 나를 빚기 시작하는 일이 된다.

그리하여 드디어 꿈꾸는 시기를 벗어나 어른이 된다.


그러나 내가 나의 사회적 언어를 배우는 과정 중 천천히 알게 된 것은 꿈꾸는 시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직업인으로서 만나게 되는 여러 유형의 아이들 중 유독 아스퍼거 자폐에 시선이 멈추게 되는 것은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는 나의 개구리 왕자, 나의 남편으로 인해서였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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