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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May 21. 2022

예감이 예언이 되던 날


심리상담이 학교 현장과 사회 전반에 보편적으로 자리잡기 전, 정신과 진료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일상의 치료로 받아들여지기 전의 어떤 시기에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의 지능과 학업, 정서 영역을 살펴보기 위해서 트레이닝을 받은 특수교사들이 심리검사를 직접 했던  짧은 기간이 있었다.

나 또한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면서 심리검사 도구 몇 가지를 다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중립적인 표정과 억양을 유지하며 피검사자가 관찰받고 있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구조화된 환경에서 학생의 반응과 과정을 체크하여 분석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한 명의 학생과 조용한 공간에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표준화된 절차에 따른 검사활동을 마친 뒤에 표준화된 절차에 따른 분석을 하다 보면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두 시간 반 정도까지 학생이 보여준 반응이 정확하게 자신이 지금까지 지내온 삶과 긴밀한 가족의 이야기를 해 주고 있음을 알게 되곤 했다. 때론 신기하고 활기차기도 했고 때론 우울하고 피곤해져서 검사를 하고 난 뒤 한두 시간은 엎드려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어떤 경우든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맑고 투명해서 본 것과 들은 것과 알게 된 것을 스스로의 행동에 그대로 투영시켜 왜곡되지 않은 형태로 보여주었다.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는 그래서 전부 다 주변 어른들의 영향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교실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과 햇살을 받아들이며 등교하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던 6월의 어느 날. 며칠 동안의 무더위로 한껏 습해진 바람 속에 비가 들어있었다. 손가락과 양 볼과 등에 눅눅한 땀방울이 맺히려 하고 있던 순간에 그 시기로부터 한두 해 전 다른 학교에서 겪었던 작은 실랑이가 떠올랐다. 그날도 약간의 불쾌감이 느껴지는 이런 날씨, 이런 습도였는데... 그날 한 아이와 그 아이의 보호자는 평소와 다를 것 거의 없던 등굣길의 어떤 풍경에 심하게 분노를 해서 아침 1,2교시 두 시간 수업을 멈추어야 하는 일이 생겼었는데....

어쩐지 지금 이 순간 그때와 같은 일이 생기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훅 하고 뇌리에 들어와 가슴속에 무겁게 자리 잡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 날씨와 그런 습도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되는 어떤 성향의 사람들과 겪게 될 조금 다른 일상이 일어난 그날, 서툰 심리검사 트레이닝을 해 왔던 나의 무의식이 미처 자료화하지 못한 상태로 단순 저장해 두었던 일을 몇 해 전의 일과 같은 톤으로 겪으면서 나는 조용히 이제 학교를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천천히 마음을 먹기 시작하게 되었다.

예감이 예언이 된다면, 나는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일상을 내가 겪어온 비슷한 일들과 범주화를 하게 될 것이기에.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의 가장 단순 명료한 기준에 사건을 빗대어 표준화해 버리는 오류를 반복하게 될 것이었기에.


그리하여 예감이 예언이 되던 사건이 생겼던 그날 내가 학교를 그만 두기로 마음먹은 날이 되었다.

예언은 확신이 되고, 확신은 그 순간을 출발선 삼아 나아가게 될 내 세계의 단면을 가장 작게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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