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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May 11. 2022

어떻게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지 벌써 일 년이 되어가고 있다.


더없이 화창하고 어여쁜 봄날이었다.

동생 댁이 엄마를 모시고 외부 병원 진료차 외출을 신청한 날을 손꼽아 기다려 서프라이즈 파티를 하듯 예고 없이 찾아가 동행을 청했다.

봄의 절정을 막 지나가고 있는 남한산성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잘 가꾸어진 뜰을 거닐고 싶었다.


엄마는 이제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어하셨기에 계단이 많은 전통 건물의 운치 있는 뜨락을 거니는 일이 더이상은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엄마도 우리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셋은 새소리와 꽃내음과 봄바람이 함께하는 방에서 식사를 했다.

엄마는 한껏 환한 웃음으로 어릴 적 이야기와 당신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와 이제 영락없이 중년을 넘기는 당신 자식들의 이야기를 하셨다.


"남한산성으로 친구들과 많이 놀러 왔었는데, 여기가 그 남한산성 맞냐? 하나도 몰라보겠구나. 니 아버지가 나 놀러 다니는 건 언제든지 오케이 해 주셨잖니. 많이 놀러 다녔어 내가~"


친가와 외가가 한 마을에 있어서 외할아버지도 친할아버지도 자주 함께 했었다는 어릴 적 이야기와, 마을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 중에 행방불명되셨다는 당신 아버지 이야기와 형제들 이야기를 하시는 엄마의 얼굴이 여전히 환했다.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며 어쩌다 이렇게 나이 들었냐 묻던 엄마가 동생 댁을 보며 말했다.


"난, 얘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얘가 그 어려운 아프리카까지 가서 해외봉사를 했잖아. 아프리카에서 돌아와서 나한테 왔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집안에 들어와서는 가방을 휙 내려놓더니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엉엉 우는 거야. 세상에 그렇게 불쌍한 아이들을 그냥 두고 와서 어쩌냐고 대성통곡을 하는 거야. 애들이 빼짝 말라서 먹을 것 찾느라 입만 벌리고 있다고, 불쌍해 죽겠다며 어찌나 우는지 내 가슴이 다 녹아내렸다"


동생 댁이 내 얼굴을 보며 그게 정말인지 커다랗게 뜬 눈으로 물었다.


"아니, 아니, 난 안 울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시기로 마음먹으셨는가 봐"


그렇게 말하다가 가슴이 아려졌다.


엄마는, 살림살이 손이 크셨던 엄마는 이웃에 밥 굶는 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 쌀독에서 쌀을 한 되씩 퍼서 가져다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게 몸에 배었나 보다.

혼자 지내시면서 아들 딸들이 엄마가 필요하다는 라면이며 커피며 과자를 몇 박스씩 가져다 드리면 그날 저녁 마을회관에 그 물건들이 다 풀렸다고 했다.

시골 인심이니까 엄마가 물건을 마을회관에 풀어놓아도 마을분들이 엄마가 필요한 것들을 다시 채워주기도 하곤 했지만, 엄마의 '의심'과 '베푸는 일' 사이의 간격은 그닥  않서 마을분들과의 불화가 자주 반복되곤 했었다.


'아프리카가 어떻더냐?' 물으시는 엄마에게 내가 한 말은, '내가 간 곳은 전쟁지역도 아니고 TV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굶어 죽을 만큼 불쌍한 아이들은 없었어.' 였다. 그럼에도 엄마는 엄마의 딸이 그 먼 아프리카까지 가서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나 한다는 그 어렵고 장한 일을 하고 왔다고 믿고 싶으셨나 보다. 그렇게 믿어버리기로 마음먹으신 엄마에게는 그 믿음이 '사실'이 되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실'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고 계셨나 보다.


그 자리에서 '엄마,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엄마의 행복한 상상 속에 내가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기억은 죄다 잊으시는 분이 5년 전 내가 아프리카를 다녀온 일을 그렇게 훈훈하게 기억해주신다면 그로써 된 것이리라.

식사를 마치고 나서 엄마는 또다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셨다.

엄마는 병원에서 잘 지낼 테니 너희들은 엄마 걱정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돈 아끼지 말고 맛난 것 먹고 좋은 곳 다니라는 당부를 거듭하셨다.


돌아온 다음부터 엄마와의 전화통화는 '너희들에게 해 준 것도 없는데 병원비 부담 줘서 미안하다'는 말의 반복이 되고 있다.


"해 준 게 너무 많아, 엄마! 엄마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잘 살 수 있었겠어? 다 엄마한테 보고 배운 거잖아. 엄마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아프리카에 가서 그 고생을 할 생각을 했겠어? 다 엄마한테 보고 배운 거잖아. 고마워요, 엄마!"


엄마는...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1년이 되어가는 엄마는... 이제 병원생활에 더 많이 적응하시기로 작정을 단단히 하고 계신 듯싶은 엄마는..

 "네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그보다 고마운 일은 없지..."

하시며 왈칵 울음소리를 내시다가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으시고는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고맙다,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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