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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May 28. 2022

엄마의 러브레터


엄마에게 닿고 싶었다.


눈을 뜨면 밭에 나가 풀을 뽑고 꽃과 나무를 심고 오래도록 들여다보면서  땅과 풀과 나무들 속에서 엄마가 했을 생각들을 만나고 싶었다.

날은 밭에서 일어나다가 의도하지 않게 힘없이 굽혀지는 무릎과 허리 통증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밭일을 하다가 어지럼증으로 쓰러져 잠시 기절하셨을 때 옆에 따라다니던 누렁이가 꼭 붙어 앉아 엄마가 일어날 때까지 핥아주었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이런 일상을 보내면서 도대체 엄마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 뭐야?  

남편과 자식들과 함께 사는 일도 마다하시면서 엄마가 찾고 싶었던 것들이 도대체 뭐야?


물어도 대답을 하지 못하시는 엄마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찾아보고 싶었다.


지난번 남한산성에서 엄마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현듯 엄마의 고향엘 다녀오고 싶어졌다. 엄마가 말하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고 싶고, 느끼고 싶어서였다.


산속으로 산속으로 달려가는 것  먼 길을 던 날.

엄마가 살던 마을은 산촌이었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긴 강과 넓은 평야가 나왔다.


전쟁이 끝나고 엄마에게 상속되었던 땅은 오래전 엄마가 직접 양도를 하셨다는 일가의 다른 형제분께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고 했다.  엄마 본적지의 주소지 명패에 적힌 그 이름이었다.


드러난 사실들과 알려진 사연대로라면 땅을 받은 엄마와 또다시 그 땅을 양도받으신 일가의 어르신도 고개를 흔들고 잊어버리고 싶으실  사실과 사실들이 뒤엉켜 있을 터였다.     


그늘진 골짜기마다 비밀을 담고 있을 마을길을 거닐다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에게 내가 보고 온 엄마의 고향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까 생각하며 며칠을 지내다 도서관에서 엄마의 사연과 같은 이야기들이 담긴 책을 찾아 읽었다.


한국 전쟁의 성격은 매우 복합적이다. 국지전과 국제전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면서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양상도 보인다. 그리고 전선의 이동 형태를 보면 전형적인 '톱질 전쟁'의 모습을 보여 준다. 톱질 전쟁이란, 톱날을 왔다 갔다 하듯이 전선이 밀고 밀리면서 점령과 수복을 반복하는 전쟁 형태를 말한다. 한국 전쟁의 전선은 상대방 세력의 거의 최말단까지 서로 오가는 양상을 보였다. 한반도의 좁은 지형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매우 극단적인 톱질 형태다. 이렇게 전선이 이동하게 되면 전후방의 개념이 사라지고 결국 많은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
한국 전쟁 중 ①한국군 퇴각 ②인민군 점령 ③한국군 수복을 거친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사하고 일관되게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
......
  (오마이뉴스, 2022.4.10. 박기철)


엄마는 '전쟁 같은'이 아니라 '진짜 전쟁'을 살아내셨다.  요이라면 아동보호시설에서 심리치료와 상담을 몇 년은 해야 하는 사연을 안고도 그 시절의 어른들이 그러하셨듯이 아무 일 아니라는 것처럼 살아내셨다. 아마도 아버지의 도박과 폭력에도 지지 않고 기어이 이겨내실 수 있는 힘도 거기에 들어있었을 터였다.


아버지의 사연 또한 기막히고 달리 길이 없었다는 것을 서로가 이미 알고 있었을 부모님과 그 시절 같은 연배의 모든 어르신들은 어리거나 젊었던 시절 겪은 전쟁의 상흔이 몸과 마음에 떨쳐낼 수도 없 흔적으로 남아버린  상처의 분석과 치료라는 현대의 심리 배경의 절차 같은 것은 있기도 훨씬 전에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내느라 모질게도 고생들을 하셨어야했다는 이야기를 이제야 열린 귀로 듣게 된다.


조용히 기억을 덮으시며 엄마는 주술처럼 말씀하고 계신다.

"공산당은 안돼!"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그게 남편은 우익에 잃으시고 아버지를 좌익에 잃으신 나의 외할머니의 이야기였고

군경에 아들을 잃고 풍비박산된 가문에 대한 슬픔 속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억과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쌀을 대주고 전쟁중에는 인민군과 군인들에게 쌀을 대주고 마침내는 집안일을 하 머슴 손에 끝내  험하게 돌아가시고 말았다던 외할아버지의 기억을 비밀처럼 담고 당신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살아내신 내 엄마의 이야기였다.


톱질 전쟁이라는 6.25의 민간인 희생 사연은 단순하게 '진영'과 '주의'의 싸움만으로 정리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캄보디아의 제노사이드를 떠올리게 할 만큼 단순한 무지와 이권에 둘러싸여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악과 악'의 대립. 행복할 줄 모르는 인간 본성의 싸움이었다.


엄마는 엄마의 운명 속에 전쟁을 끼워 넣어 원망하지 않았다. 단지 엄마의 가정사가 자식들의 발목을 잡을까 그것만 걱정하시며 강하게 버텨내셨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도 되지 못했고 빼앗긴 땅을 되찾아 무너진 가문을 일으키는 토지의 주인공 서희도 될 수 없었던데다가 순교자로 추대되어 그나마 초라한 죽음에 대해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는 종교 구성원의 일원도 되지 못한 가족을 둔 엄마였지만  '행복하라'고, '건강하라'고, '만족하라'고 치매인이 되어서도 가슴에 새겨져 흩어지지 않을 말씀을 매일매일 들려주시고 계신다.


그것이 엄마가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을 미처 알지 못해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만 했던 아버지에게, 잘해 주고 싶었지만 좀처럼 방법을 몰라 방황하게 했던 자식들에게 엄마만의 방법으로 보내주시는 러브레터임을 이젠 알아간다.


한 개인의 역사 속에도 톱질 전쟁이 반복되어서, 날은 베푼 것이 뿌듯해지고 어 날은 내 것을 빼앗아가는 이웃이 경멸스러워지고 또 어느 날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힘들었어' 라거나 '슬펐어' 아니면 '우울해'라는 한 단어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수많은 어두운 사연들을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서술로 뭉뚱그려서 '전쟁 같은' 삶을 하소연하는 나이 든 딸에게 '진짜 전쟁'을 겪은 늙은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매일매일 러브레터를 보내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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