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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Jun 20. 2022

무심하게 아이들을 대하려고 애써보았다.

시간강사로 5일 살기

7-8년 전 예술영화관을 찾아다니다 보게 된 영화 중 하나인 "디태치먼트"


그 시기에 나는 너무도 가슴이 시려서 차라리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촉법소년으로 보호 관찰 중인 어린 초등학생 한 명.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으며 일상을 지내는 가운데 마음 한가운데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목사님이 가정 위탁을 하고 계셨고 학교에서도 엄마처럼 감싸주실 수 있는 넉넉하신 인품의 담임선생님 학급에 배정을 해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쓰고 있었다.

등교하면서부터 학교 일과를 마치기까지 아이는 학교 안 구석구석 마음 붙일 곳을 찾으러 다녔다. ADHD 성향의 아이는 하루 5,6교시의 수업시간 내내 교실의 자기 자리에 앉아서 학업에 집중하기를 매우 힘들어했으므로  담임선생님과 약속한 시간만 지나면 학교 이곳저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학교 안에만 있으면 괜찮다는 전제가 달린 허락이었기에 아이가 학교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동안 교내의 모든 구성원들이 보는 듯 안보는 듯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곤 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마음의 결핍감을 채울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어설프게 말이 통하는 또래의 우리 반 아이를 만나자마자 마음에 들어 했고 거리낌 없이 우리 교실에 들어와 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다가 일반학급에는 없는 컬러풀한 수업 교구재에 흥미를 보이면서 오랫동안 이 교실에 있어도 되는지 물었다.


담임선생님과 연락해서 아이가 우리 반에 오고 싶어 할 때 하루 한 시간 정도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첫 시간에 아이는 교실 창 앞에서 예쁘게 꽃대를 올리고 있던 카랑코에 화분을 실수로 깼다.

도자기 화분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는데 아이는 얼음장처럼 새하얀 얼굴로 자기가 깨뜨린 화분을 쳐다보았다. 난 큰 소리로 말했다.

 "00아, 안 다쳤어?"

그리고 여전히 얼음처럼 서 있는 아이 옆에 가서 부서진 화분 조각을 치우며 말했다.

"와! 너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다. 화분 같은 거 하나도 안 중요해. 그런 거 깨지는 건 아무 일도 아니야. 00이 너만 안 다치면 된 거지!"


그리고 3일이 지나지 않아서 위탁 목사님이  오셔서 아이가 우리 반에 오는 일은 중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권유를 하셨다. 우리 반 아이들이 그 아이로 인해 받게 될 상처가 그 이유였다.


지난 3일 동안 아이가 우리 반에 와서 보인 행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신에게도 나와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왜 몰랐겠는가.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과 위탁 목사님이 그 이유와 그 대처법에 대해서 왜 몰랐겠는가.


아이는 생전 처음 들어본 '너 안 다쳤으면 된 거야'라는 말에 위로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도전적으로, 나에게 얼마만큼의 잘못된 행동을 '괜찮다'라고 해 줄 수 있는지를 확인받아야겠다는 듯이 찾아왔을 것이었다.

열 살 아이가 그동안 쌓아 온 세상의 차가움을 위로받고 싶어 내게 찾아오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아이가 마음껏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상처받고 상처 주지 않으면서 마음껏 소동을 부릴 수 있는 공간과,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해소의 시간. 그것을 견뎌 내 줄 수 있는 사람들....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서 그 아이가 우리 반에 오는 일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차가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때 본 영화가 그것이었다. '디태치먼트'



차갑고 우울하고 막막한 실제 학교 현장의 이야기였는데 난 그 쇼킹하도록 차갑고 공허하고 암담한 이야기 전개에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주인공 헨리가 한 발 떨어져서 '힘듦'을 '읽어'주던 학생에게 서툴게 다가가는 결말과 달리 나는 어쩌면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더 유용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결심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다.



인근 학교에 시간강사 구인 공고가 3차까지 올라온 것을 보고 채용신청서를 제출했다. 3차 구인공고는 SOS 신호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므로 어쩐지 꽃과 나무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내 신선놀음이 약간 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 5일 동안의 짧은 간이기에 큰 부담 없이 아이들과 수업을 해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재활원에 방문해서 수업을 하는 순회수업을 주로 했다.

날씨는 화창하고 아직 덥지 않아서 잘 꾸며진 정원 교실을 산책하는 시간을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좁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휠체어를 밀면서 건물 밖으로 나가면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기쁜 웃음소리 행복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내가 해 왔던 일들과 내가 만나왔던 아이들을 보는 일.

지나온 시간들을 한순간 한순간씩 떠올려가며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는 시간가질 수 있었다.




등산을 하다 보면, 힘들게 헉헉거리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나를 보며 하산하는 분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가면 돼!'

처음엔 그 말이 정말이라고 믿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리고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어요.' 하는 말보다는 '얼마 안 남았어요'라는 말이 진심을 담은 응원의 말이라는 것을.


일주일의 짧은 시간강사를 마치고 다시 백수로 돌아온 나는 오늘도 열심히 시간을 달리는 현장의 후배 선생님들과, 애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학생'들에게 진심을 담 응원을 한다.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하루하루가 꼭 넘치는 보답으로 돌아오게 될 거예요!"


무심하게 지내다 보면 가끔 가까이 가는 마음길을 찾게 되는 날도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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