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 지 Jun 27. 2022

미시령 옛길에서

  구름도 울고 간다는 운두령 고개를 지나면서 남편은 인제, 정선, 고성, 강릉에서 지낸 어린 시절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주인공 '이승복'의 이야기와 그 사연을 다룬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를 이야기했다. 38선 표식이 세워진 길을 보면서 개성과 고성이 서로 바뀐 휴전선 이야기도 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끝까지 오르다가 길이 멈추면 돌아 나오길 몇 차례 하면서 노루 한 마리와 오랫동안 눈인사를 하기도 했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켜는 동안 사라져 버렸다.

  계곡을 이동하던 중 한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작은 쉼터를 만났다.

  문 앞에 감자전, 감자떡, 옥수수를 판매한다고 쓰여 있었고 남편은 옥수수를 먹고 싶어 했다.

  가게에 들어가서 옥수수가 있는가 물었다. 두 분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한 아주머니가

 "옥수수는 없어요. 무슨 옥수수가 벌써 나오나?"  하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감자전은 되는가 다시 물었더니 그건 된다고 했다.

  "그럼 감자전 하나 해 주세요. 난 앞에 옥수수라고 써 놔서 되는 줄 알았지!" 나도 샐쭉하게 말하려다가 그냥 목소리에 힘만 빼고 할 말을 다 했다. 그리고 문 밖에 있는 남편을 부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들어와요, 감자전 먹고 가자! 옥수수는 안된대!"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청풍호반 근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할 때 그 마을 부녀회에서 만들어주던 감자전 이야기를 하면서 이젠 그렇게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상점은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여기는 남아있어서 반갑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 주방에서 감자전을 준비하던 아주머니가 얼른 우리를 향해서 당신들 소개를 했다.

  "우린 부녀회 소속이고 오늘이 당번이라 왔어요. 우리가 마을 부녀회에서 젤 젊어요 ㅎㅎ"

  남편도 무뚝뚝한 강원도 사람들 억양으로 말했다.

  "제가 어릴 때 살던 동네라고 해서 와 봤어요. 어릴 때 살았다는데 난 기억도 잘 안 나고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네요"

  "어디가 되었든 여길 떠났으면 잘 된 거지요. 안사람도 이쁘고. 난 연속극 배운 줄 알았어요. 장가도 잘 갔네요. 여긴 영 사람 살 데가 아니야. 요즘엔 남자들 장가도 못 가서 죄다 외국 여자들하고 결혼하고 있어요"

  "여자들이 시골로 시집 안 오려고 해서 큰일이네요 정말."

  남편이 그렇게 말할 때, 난 입을 다물었다.


감자전은 간혹 맛있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난 거의 추억으로 먹는 음식 중 하나다. 손이 아프게 숟가락으로 감자 껍질을 벗기고 손이 아프게 강판에 갈아서 몇 조각 안 나오는 전을 부쳐서 접시에 담아내어 놓으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정작 준비한 사람은 맛보기도 쉽지 않았던 음식이었다는 걸 내 손으로 아이들에게 만들어 먹이면서 알게 되었다.


  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면서 난 꾹 참고 있던 질문을 남편에게 했다.

  "여자들이 시골로 시집을 안 오려고 해서 큰일이라고 했잖아. 그 문제, 정말로 시골로 시집오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들 문제인 거야? 당신이라면, 우리 딸이 이곳 시골로 시집을 오겠다고 하면 기쁜 마음으로 찬성할 수 있어?"

  남편이 잠시 당황스러워하다가 말했다.

  "사회문제야. 여자들 문제 아니야. 내가 말실수 한 거 같아"


  그게 딸이 아빠와 대화하지 않으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결혼해서 애 낳는 게 충성이고 효도라며 훈계하는 어른들 이야기가 뉴스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십대인  길을 다니다 종종 나이 지긋한 '남자 어르신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불러 세워서는  반말로 길을 묻다가 훈계하는 일을 정말로 겪고 있다고 했다. 점잖게 길을 물으시는 어른들에게는 휴대폰 지도를 찾아가며 길을 알려드리지만 '야, 여기 주민센터 가는 길이 어디야?'하고 묻는 어른들에게는 '글쎄요, 저 여기 안 살아서 모르겠어요' 하고 멀찌기 떨어져 도망간다고 하기에 잘했다 해 주었며, 한편으로는 정말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을 다시 물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백인 백일색. (百人 百一色)

  백명의 사람이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모이면 그 사람들 간에 관계의 색깔이 하나 더해진다.

  부녀회 아주머니가 옥수수를 찾는 나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할 때, 나는 익숙한 도시 사람의 억양으로 '없는 것을 왜 판다고 문 앞에 써 놓았느냐' 물으려다가가 마음을 내려놓았다. 아주머니가 나에게 핀잔을 주려는 마음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테고, 내가 따져 물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그 공간의 색깔은 판이하게 달라졌으리라. 아마도 백인 백일색의 그 나머지 하나는 그 관계의 공간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의 색깔일 것이었다.

  남편과 두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들으면서 내 마음의 색깔은 또 달라져갔다.

  무척 힘든 직장생활을 무척 오랜 기간을 했으니 이제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쉬겠다고 선언한 나는

'이곳을 떠나기만 했어도 잘 된 거지요'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다가 이해가 되기도 하다가 하면서 좀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색깔인지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저 이 적막하고 변할 것 없는 산골짜기 마을에서 오륙십 년은 훌쩍 넘기는 세월을 잘 견뎌 내 오신 두 분이 그야말로 승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였다면 그 지루함을 손톱 한 끝만큼도 견뎌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남편은 작년 여름부터 군 복무 초반을 보냈던 부대를 찾아보고 싶어 했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제 버스터미널과 필례 약수터 부근 어디쯤이었다는 기억, 선임의 술 심부름을 하느라 왕복 여덟 시간 길을 걸어 마을 상점에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여러 차례 차를 돌려가며 산 계곡을 돌았다. 젊디 젊은 혈기왕성한 이십대 초반의 남자아이들이 산골짜기에 모여 앉아 새벽에 군장을 메고 열서너 시간을 걷고 또 걷다가 해가 지는 곳 어디든 캠프를 꾸려 동이 트기를 기다리는 고된 일상의 무의미한 반복. 그 시간을 견뎌내려면 여덟 시간이든 열 시간이든 몰래 나가 사 온 술 한 병이 그야말로 천국의 맛이었겠다고, 고생 많았다고, 잘 견뎌 냈다고 말하면서 '여자들의 문제'라는 말에 대해 남편에게 따져 물었던 몇 분 전 나의 말을 살며시 덮으며 길을 달렸다.


 계곡과 마을길 사이로 난 길을 몇 개 더 돌다가, 드디어 기억과 일치하는 연대 숫자와 부대 숫자를 만났고, 닫힌 초소의 철문 앞까지 올라가서 부대를 살펴보는 중 경비를 서던 젊은 군인이 달려 나와 방문 목적을 물었다. 짧게 몇 마디 말을 나누며 젊은 군인에게 옛이야기를 하려던 남편이 말을 서둘러 멈추고, 바쁜데 불쑥 나타나 곤란하게 해서 미안하다 말하며 차를 돌렸다.


  미시령도 대관령처럼 터널 몇 개를 뚫어 새 길을 냈다. 쌩쌩 달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물론 편했지만 우린 꼬불꼬불 몇 개 고개를 돌아 오르내리는 미시령 옛길을 달리는 것이 더 좋았다.

미시령 옛길
미시파령(彌時坡嶺) : 인제(麟蹄)와 속초(束草) 사이에 있는 고개 이름으로, 이를 줄여서 미시령(彌時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시의 뜻 : 호시는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천지 사방을 경륜할 큰 뜻을 말한다. 옛날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서 사방에 쏘는 시늉을 하며 장차 이처럼 웅비(雄飛)할 것을 기대했던 풍습이 있었다. 《禮記 內則》

한(漢) 나라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로 부임할 때 공래산(邛郲山)의 구절판(九折阪)을 넘으면서 산길이 너무 험한 것을 보고는 “어버이에게 받은 이 몸을 가지고 어찌 이 험로(險路)를 자주 왕래해서야 되겠는가.” 하고 얼마 뒤에 병을 핑계 대고 사직하여 장안으로 수레를 돌렸는데, 뒤에 왕존(王尊)이 익주 자사로 부임할 때에는 구절판에서 마부를 꾸짖으며 “말을 힘차게 몰아라. 왕양은 효자지만 왕존은 충신이다.”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王尊傳》    (자료 출처 :  다음  iron0404님의 블로그)


  속초 송지호 해변 옆 오호항에 스누피처럼 서 있는 암석 바위가 있다. 바위의 머리 위에 서 있는 소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암석 위에 돌조각들을 잘 올리다 보면 약한 자성이 느껴지는 부위에 돌이 붙는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기원이 돌조각들과 함께 붙어있거나 쌓여있을 것이다. 바람과 파도와 다른 방문객에 의해 떨어지고 쓰러지고 하겠지만 돌 탑을 쌓고 바위에 돌조각을 붙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한 때를 보냈다.

  위태위태 해 보이는 서낭 바위도 언젠가는 세월의 무게를 놓아버리는 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세월 이야기를 해서 무엇을 할까? 몇 백 년 전 시인이 지나간 길, 몇십 년 전 우리가 지나온 길, 며칠 전의 사진을 펼쳐보면서 추억을 다듬는 일이 그저 좋기만 한 지금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심하게 아이들을 대하려고 애써보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