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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May 14. 2021

브런치를 시작하며

한때 신붓감 1순위로 꼽히는 직업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엔 미용사와 같은 인식이었다. 팔자가 센 여자들이 하는 일.


어찌어찌하운 좋게 꿈꿀 수 없었던 대학 공부를 고, 특수교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당시에 처음 있었던 특수교사 임용시험을 거쳐 교사가 되었다.  제법 사명감도 있었고,  아이들의 필요를 찾아 지원하거나 어려워하는 공부를 가르치는 일, 적응이 어려운 원인이 되는 문제행동을 분석해 수정 지도하는 일 같은 것들이 적성에 맞는 듯싶었다.


좋은 직장을 가진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할 때, 이제부터 아들, 딸 낳고 내리내리 행복한 일만 남은 줄로만 알았다. 아니 아니, 비교적 굴곡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 그 시절의 여자들이 흔하게 겪는 시집살이라는 것 약간.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맹목적으로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구나 싶은 생각에 제법 긴 우울한 시기를 보내야 했던 것 정도만 제외하면.


 그 시절을 보내면서 생각이 깊어지게도 되었으니 마냥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을게다. 게다가 '내가 참고 견디었으니 너도 그렇게 해야지. 그게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전통인데 네가 그걸 깨는 발칙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으니 나를 폭넓게 만들어 준, 어찌 보면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많은 시간이기도 했을 게다.


두 달에 사나흘씩은 위염과 편두통으로 쓰러질 지경이 되었으나 아들과 딸, 그리고 대체인력이 없는 직장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십칠 년을 보내다가 교사 안식년을 신청했다.

무급으로 1년을 쉬면서  그중 두 달은 캄보디아 장애인 시설 봉사,  케냐 고아원과 학교 봉사활동을 했다.

그때 봉사활동 신청서에 '지금까지 월급을 받으며 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을 했으니, 더 나이 들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때가 오기 전에 온전히 자비량으로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해 보고 싶다'는 말을 넣었더랬다.


안식년을 보내고 2년의 직장생활을 더 하던 중 어느 학습지 회사의 동화 공모전 안내문을 보게 되었다. 곧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은터라서  30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혼자만의 이벤트로 동화를 써 보기로 했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한 이유와 같이 공모전 입상이 목표가 아니라 일기보다는 조금 책임감 있는 형식으로 한 시즌을 마무리해보고 싶어서,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 중 가장 방어할 것 없어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반려견의 이야기를 골랐다. 내가 지내온 시절 중 가장 담백하게 적어낼 수 있는 시기와 등장인물들을 설정해 나름의 울타리를 살짝살짝 넘나들며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며 가슴이 아렸다.

강아지 메롱이 때문만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가 없는 시간 빈집과 학원을 오가던 어린 아들과 딸의 시간이 큰 공허와 막막함과 공포와 외로움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바쁜 아침과 분주한 저녁, 아이들도 어린이집과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나와 다를 바 없이 추억거리 하나 다듬을 시간이 없는 유소년을 보내고 청년이 되어있었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곧 대견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정돈되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가 그렇다.

내가 나로서의 인생을 찾아가는 동안 함께 분주했던 내 주변의 사람들의 시점.

내가 놓쳐버린, 내가 알지 못하던 이야기들 속의 '나'를 찾는 소중함에 대하여 알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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