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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꽃들이 남겨 준 열매를 수확했다.

장마 비 속에서 여름 꽃들이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by 미 지

이른 봄에 싹튼 감자 하나를 부직포 화분에 심었다. 초록초록 무성한 잎을 올리다 장마 소식과 함께 시들기 시작하기에 화분을 엎어 감자를 수확했다. 한 개 심은 화분에 감자가 열 개 넘게 나왔다.


살구도 영글었다. 이른 봄 냉해 때문인지 양분 없는 흙 때문인지 마흔 개 남짓의 조금 실망스러운 수확량이지만 어쨌거나 이건 그냥 거저 받는 수익이다.

향긋하고 색깔 고운데 맛까지 일품이서 살구청을 만들어 봄과 초여름의 기억까지 함께 병에 담아두었다.


늦은 봄 꽃대를 올렸던 허브 챠빌이 씨앗으로 영글어 떨어진 자리에 지천으로 새 싹을 틔우고 있다. 올여름과 가을 뒷마당 텃밭은 몽땅 다 차빌에게 내주려고 한다.


로즈메리나 라벤더향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청량한 향기의 히솝은 척박한 땅을 더 좋아했는가 보다. 웃거름을 준 뒤 사색이 되더니 비가 내려 씻겨진 땅 위에서 힘없이 말라죽어가고 있다. 서둘러 채종한 씨앗이 싹 터서 자라주길 기다려본다.


마을 총무님께서 챙겨주신 캠핑용 모기향 거치대는 밭일할 때 필수품이다.

봄 한 철을 보내고 시들어가는 고수 씨앗을 채종 했다. 고수 꽃과 막 영글기 시작한 초록색 씨앗의 풍미는 정말 훌륭했다. 내년엔 더 많이 키워볼 요량으로 꽃대마다 영글어있는 씨앗을 하나라도 잃을까 조심조심하며 모아두었다.


파슬리 꽃이 지며 씨앗이 막 영글 준비를 하고 있다. 영글도록 놓아 둘 몇 개의 꽃대 이외에 초롱초롱 매달린 어린 씨앗들을 모아 씻어서 냄비에 덖어 한 잔의 파슬리 꽃차를 우려내어보았다.


풋콩으로 만든 송편을 그리워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심은 콩 너댓줄기가 오이, 호박과 함께 무성하게 잎을 올려가는 뒷마당에서 영근 배추 씨앗을 수확하면서 이파리가 신선한 당근은 그냥 두어보려고 뽑지 않았다.


비가 오면 숨어있던 풀씨들이 싹을 틔운다. 하룻밤이면 깜짝 놀랄 만큼 키가 커버리는 풀들을 뽑으며 밭 멍 풀 멍 하는 한 여름의 낮엔 소낙비 한바탕 지나가 주는 게 세상 기쁜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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