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집 앞마당을 드나드는 세 마리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려고 사료를 준비할 때 인터넷 쇼핑몰에서 비싸지 않은 것으로 골랐다.
작년과 재작년에 일 년 간격으로 하늘나라로 간 두 마리 강아지들과 16년을 지낼 때 입맛이 까다롭던 그 두 아이들은 마트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사료는 먹지 않았으므로 기호에 맞는 사료를 찾아 정착하기까지 몇 번의 테스트를 거치며 신경을 써야 했었다.
인터넷에서 싸게 산 사료를 길냥이들이 잘 먹을 거라는 자신은 없었지만 강아지 사료를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몇 번 바꾸어가면서 길고양이들 기호에 맞는 걸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사료를 내놓기 시작했다. 기우였다. 길냥이들의 먹성을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여서 두번째 사료로는 처음 구입할 때보다 더 싸고 양이 많은 것으로 바꾸었어도 내어두는 족족 빈 그릇을 남겨놓고 갔다. 비를 맞아서 퉁퉁 불은 사료도 깨끗하게 먹고 간 걸 볼 때는 조금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처음 세 마리로 알고 있었던 길냥이들의 개체수였다. 길냥이들에게서 볼 수 있다는 모든 색깔과 무늬들이 차례차례 나타나서 밥을 먹고 가고 있었다. 열 마리는 족히 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같이 어린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길냥이들은 보통 2-3년을 산다는 것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아이들 중 내년에도 볼 수 있는 아이들은 몇 마리 안된다는 뜻이었다.
두 주 전 새벽, 문 앞에서 시끄럽게 우는 고양이 소리에 잠을 깼다. 소리는 십여 분 뒤 사라졌다. 다음날 비슷한 새벽시간에 또다시 같은 소리가 들렸기에 나는 문을 열었고 도어록 기계음 소리에 화들짝 놀란 듯 고양이 두 마리는 소리 없이 도망간 뒤 다시 오지 않았다. 그 밤에 잠시 나는 고민을 했다. 길냥이 밥그릇을 치워야겠다고. 내가 담아두는 밥 한 그릇이 그 아이들의 야생 적응력을 오히려 빼앗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반 이상을 비워두는 내 집 앞이 길냥이들 쉼터가 된다면 마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암컷 고양이를 잡아다가 중성화 수술을 해서 다시 풀어주는 동물복지 프로그램 같은 것은 도시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밥을 주기 전부터 이 마을의 일부로 지내오던 아이들이었을 테니 내가 주는 밥이 이 아이들의 루틴이 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하루 정도 밥그릇을 치워보았다.
행색이 초라한 힘없는 아이 하나가 사료 그릇이 놓여있던 자리에 코를 대 보다가 조용히 돌아갔다.
너희들을 어쩌면 좋겠니.....
몇 분의 고민 끝에 밥은 다시 놓아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신 마주치면 호통치며 쫓아내려고... (할 수 있을까?)
어차피 내가 있는 날만 주는 거니까 여기는 빈 그릇인 날이 더 많을 테니까
너희들의 사냥 코스에는 불친절한 아줌마가 없을 때 가끔 성공하는 장소라고 입력해 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