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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서우아빠 Aug 22. 2023

[100일 에세이 챌린지]70. 2대 1 데이트

2대 1 데이트인데 먹는 음식이 '짜장면'이라니 조금 아이러니한걸?

2박 3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며칠간 온 가족이 여독이 풀리지 않아 신음했다. 아가들은 어린이집을 가기 싫다고 떼를 썼으며 와이프는 밀린 집안일과 여행 가방에 넣어둔 물건들 정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였다. 2주 뒤에 있을 복직 서류 준비와 품위 유지(?)로 인한 걱정거리도 한가득 떠안은 듯하다. 와이프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일 필요한 것이 잠깐이라도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가들 하원 이후 저녁 먹이는 것까지 책임지겠노라고 하며 자발적으로 2대 1 데이트를 주선했다. 그러고 보니 2대 1로 식당에 가서 식사를 도맡아 한 경험은 처음이라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데리고 나갔다.

저녁을 먹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라 30분 정도 아가들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지난주만 해도 5~6시에도 푹푹 찌는 날씨 탓에 도저히 단지 안 놀이터를 이용할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어제부턴가 서서히 이 시간에 놀이터를 이용할 수는 있을 정도로 아주 미묘하게 날씨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2대 1 데이트를 신경 쓰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였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이 시간에 놀이터에서 놀 수는 있었다는 것. 미끄럼틀, 그네를 원 없이 태우는 동안에 내 머릿속은 바삐 회전하기 시작했다. 돈가스, 가락국수, 짜장면, 꼬마김밥, 볶음밥... 두 아가들의 니즈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메뉴가 무엇일지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난 짜장면을 택했고 아가들도 흔쾌히 찬성했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을지라도 아버지는 늘 오케이니까.

아가들과 늘 가는 짜장면집으로 이동하는 길은 실로 고행과도 같았다. 집 앞 200m가량 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도 곧 죽어도 안아서 데리고 가란다. 육아 4년 차라 나름 안고 다니는 데 베테랑이라고 자부하지만 둘을 안고 걷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군대에서 20kg 군장 메고 행군하는 길도 이것보다 힘들지 않았는데.

좀 뜬금없게도 갑자기 와이프랑 재미있게 보는 예능프로그램인 '나는 솔로'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솔로'는 6명의 남, 녀가 각자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해 자신을 어필하고 1주일가량 같이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내에서 남, 녀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여 데이트를 권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데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 중 하나가 '짜장면'이다. 물론 1대 1 데이트가 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2대 1 심지어 3대 1 데이트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하. 2대 1 데이트를 하는 마당에 '짜장면'을 먹다니.
 프로그램 취지와 다소 안 맞는 풍경인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식당. 고소한 짜장면 냄새보다도 에어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선 아가들을 안전한 등받이 쿠션 쪽 자리에 앉히고 메뉴를 고른다. 누군가는 고독하게 먹으며 현실을 직시하는 시간을 함께한 바로 그 짜장면을 고른다. 잠시나마 그들이 고독할 수 있음이 무척 부러웠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가들과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뭐라고. 


그렇게 등장한 유니짜장 2그릇. 어느 한 사람의 식사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첫째를 먹이는 와중에 둘째가 일어나 의자 위를 활보하기 시작하고 그런 둘째를 다시 앉히는 동안 첫째가 단무지를 원한다. 단무지를 한 입 먹이고 둘째가 갑자기 뱉어내는 면을 손바닥으로 주워 담는다. 알고 보니 면을 뱉는 것이 아니라 곱게 갈린 양파만 쏙 빼고 먹고 싶어서 뱉었던 것이다. 먹기 좋게 정성 들여 갈아 만든 게 유니짜장인데 그 정성 이상으로 양파만 쏙 빼내다니. '나는 솔로'에서 2:1 데이트의 호스트를 맡게 된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어느 장단, 어떤 박자에 맞춰서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쉬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폭풍 같던 저녁식사를 마친 후, 다시 두 아이를 안고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때마침 걸려 온 와이프의 전화. 이제 좀 컨디션이 회복되었단다. 그리고 고맙단다. 다행이다. 아빠로서 해야 할 미션을 어떻게든 해치운 것 같아 뿌듯했다. 짜장 범벅이 되어 까맣게 물든 둘째의 앞섶 같던 내 마음도 하얗게 표백되는 순간이었다. 아이고 어쨌든 오늘 저녁식사도 끝났으니 집에 가서 좀 있다 씻고 자면 되겠구나. 


아. 다음 주 '나는 솔로'는 꼭 본방 사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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