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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서우아빠 Sep 08. 2023

[100일 에세이 챌린지] 86. 종이접기는 어려워

김영만 아저씨 직강을 들어도 난 아마 안될 거야.

오늘은 어쩐 일로 아가들이 할머니댁에 방문하고 싶단다. 장인 장모님께 연락을 드리니 햄버거 가게에서 간단한 스낵과 커피를 즐기신다고 하길래 아가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아가들은 오랜만에 마주한 할머니, 할아버지와 인사하며 반가워했고 우리 부부는 아가들과 함께 먹을 간단한 스낵을 주문했다. 햄버거는 아가들이 아직 먹기 불편하거니와 그리 선호하지 않는 음식이라 치즈스틱 1개씩 쥐어주기로 했다. 그동안 있었던 생활 속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 첫째가 할머니께 뭔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이렇게 말한다.


"아 맞다, 할머니. 여기 햄버거 가게 옆에 문가방 있어 문가방!!"

"문가방? 문가방이 뭐야?"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와이프가 장모님께 아가어를 번역해서 전달한다.


"문가방이 문방구라는 얘기야. 엄마. 햄버거 집 옆에 무인 문방구 집이 있는데 지우가 좋아해."

"아 그래. 그럼 지우야. 할머니, 할아버지랑 잠깐 문방구 가서 물건 구경 할까?"

"응!"


그렇게 장인장모님이 첫째와 문방구로 향했고 때마침 둘째가 잠들어 있었기에 우리 부부는 보너스 같은 고요한 티타임을 즐길 수 있었다. 10분여 정도 지났을까. 첫째가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해맑은 얼굴을 하며 우리 테이블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지우, 할머니 할아버지가 뭘 엄청 많이 사주셨네. 뭐 사주셨을까?"

"오! 말랑이하고 포켓몬 하고 알록달록 색종이!" 

"와, 지우 너무 좋겠다. 이거 말랑이랑 포켓몬은 여기서 갖고 놀기 힘들고 아빠랑 같이 색종이 한번 가지고 놀아보자."


그런데 아뿔싸. 종이 접기의 튜토리얼 급 레벨로 일컬어지는 '비행기 접기' 조차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 것 아닌가.

어렸을 때 색종이 접기를 많이 해보긴 했지만 늘 실패했다. 설명서를 읽어도 도저히 안 되는 것이 인생에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종이 접기였다. 분명 매뉴얼에서 안내해 준 대로 접으라는 부분은 접고, 뒤집으라고 하는 부분은 뒤집었는데 내 친구의 작품은 완성작이 되고, 내 작품은 이도저도 아닌 종잇장이 되곤 했다. 그 당시 TV 유치원 시리즈에서 김영만 아저씨가 매일 새로운 종이접기를 선보여주셨는데 나는 아마 그 앞에서 1:1 과외를 받았어도 종이접기를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수십 년 동안 종이 접기와 담을 쌓았더니 학교 현장에 나와서도 종이 접기는 선뜻 애들에게 권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도 세월이 좋아져 유튜브에 종이접기를 알려주는 영상이 많아졌기 망정이지, 나를 담임으로 만난 학생들은 종이접기를 경험해 볼 기회조차 없을 뻔했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장모님 내외분들과 와이프가 각자의 종이접기 실력을 뽐내며 첫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십 년 동안 종이접기를 하지 않았던 분들이지만 별, 배, 개구리 등 내가 유년시절 부러워했던 친구들이 그러했듯, 종이로 무언가를 예쁘장하게 만들어 내셨다. 한쪽에서 나름대로 '종이비행기 잘 접는 법'을 검색하며 열심히 비행기를 접었지만 아들은 아빠의 작품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만든 비행기는 날기는커녕, 미사일 격추를 당한 비행기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크. 내 마음도 그렇게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음은 당연하다. 

하긴, 종이 접기가 잘 안 되면 잘 되게끔 노력하고 배우려는 의지를 보였어야 뭔가 성과가 있었을 텐데. 그런 노력을 수십 년간 전혀 하지 않고 살았으니 하루아침에 종이 접기가 잘 될 리가 만무했다. 어쩌면 내가 유년시절에 발휘했던 자기 객관화 덕분에 적성과 흥미에 맞는 활동을 스스로 잘 찾아간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국어, 음악, 체육을 좋아했지 미술 시간은 늘 피하고 싶었던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나의 모자란 부분을 나를 제외한 모든 분들이 나서서 채워주셨고 그렇게 첫째는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깜짝 만남을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로 비행기 접는 법을 한 번만 더 연습해 볼까. 
비행기 사줄 능력은 안돼도 접어줄 줄은 알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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