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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서우아빠 Sep 22. 2023

[100일 에세이 챌린지] 100. 나가며

100일 연속 글쓰기. 어찌어찌해냈지만 아쉬움이 많이 묻어나는 나날.

이 날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지만 막상 이 날이 오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는 것 무슨 이유일까. 그렇다. 지난 6월 아무도 시킨 적도 없는 '100일 에세이 챌린지'를 호기롭게 시작했고 적어도 100일만큼은 연속해서 매일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글을 써서 10원 한 장 얻는 것도 없고, 육아와 업무 둘 사이에서 글쓰기까지 욱여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싶겠냐만은 그냥 도전해보고 싶었다. 100번째 글을 적는 지금 내 기분은 군대 전역하는 날 같다. 그토록 원하던 날이었지만 전역신고를 마치고 부대 밖을 나설 때 느낀 왠지 모를 허전함과 쓸쓸함이 다시 한번 전해진다. 나 분명한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것 그리고 글쓰기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 인생에 작은 변화가 생겨 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는 것.

100일 에세이 챌린지의 첫 번째 장점은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되고 자칫 잊고 살기 쉬운 인생의 교훈들을 곱씹어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육아를 주제로 선정한 날은 한 번이라도 더 우리 자식들의 모습을 상기하게 되고, 학교 업무에 관해서 기술할 때는 내가 갖고 있는 전문성과 교육 철학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되었다. 늘 먹는 밥상도, 매일 가는 마트도, 출근길의 운전도 글감이 되고 에세이로 차근차근 엮어내면 그 나름대로 평소에 잊고 살았던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장점은 뇌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100일 동안 글쓰기를 위해서는 글을 쓸 만한 소재거리가 쉴 새 없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름의 형식과 틀을 갖춘 하나의 글로 완성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글쓰기 할 소재를 계속 생각하고 글에 대한 얼개를 꾸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쉴 때 쉬더라도 글 생각은 쉴 수 없는 것이었다. 하루는 이것저것 하다 보니 퇴근 후 글 쓰는 타이밍을 놓쳤고 그날따라 밤늦게까지 아이들이 잠을 안 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수십여 일 간 글을 썼던 가닥이 있어서인지 밤 11시 30분에 저장, 맞춤법 검사, 발행의 3박자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아니 내가 무슨 웹툰 작가, 연재 작가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면서도 이렇게까지 하고 나니 뿌듯함은 무엇인가. 묘하게 이 느낌은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자기 효능감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꾸준히 계속 갖고 싶은 감정이랄까.

그러나 단점도 분명하게 있다. 무엇보다도 글의 수준이 점점 떨어진다. 100일 동안 글을 지속해서 써야 하다 보니 퇴고할 시간도 모자라고, 글의 주제도 단조로워지더라.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사회과학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사고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시간과 역량 모두 부족하게 되어 갈수록 내가 쓴 글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게 되었다. 생각의 깊이를 넓히고 사건, 사물에 대해 좀 더 자세하고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길러야겠다고 느끼게 된 나날이다.


또 다른 단점은 글이 주는 성격이 미래 지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글쓰기의 기본 덕목 중 하나인 '정보 전달', '사회적 상호 작용' 측면에서 그 간의 글쓰기는 단지 나의 과거를 회상하거나 현재에 충실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글을 읽음으로써 어떻게 하면 앞으로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 어려운 과정이지 않았나 싶다. 이 또한 글쓰기를 연속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알 수 없는 미래를 언급하기보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반추가 상대적으로 글쓰기 편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쓰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 글쓰기를 멈추기에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포기하기 너무 아까운 소중한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좀 더 내가 잘할 수 있고 잘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육아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기록해 두고 싶고, 학교 업무에 관해 느낀 것들을 기술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 돈과 명예의 간극은 천양지차이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시간이다. 이 선물 같은 시간을 잘 활용해 매일은 안되더라도 글쓰기를 꾸준하게 이어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쓰는 데에만 집중했던 시간을 벗어나 소중하고 유익한 글을 더 많이 찾아 읽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좋은 글을 쓰는 작가분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 날들이다.

도덕 교육에서 교육철학자 래스(Rath)의 가치 명료화 수업 모형이라는 것이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단계는 바로 '공언하기'이다. '공언하기'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한 과정을 거친 후 공동의 도덕성을 추출해 자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단계를 말한다. 글쓰기를 통해 얻게 된 수많은 사실과 감정, 그리고 그를 통해 알게 된 소중한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공언해보려 한다.


저 앞으로도 잘 살면서 잘 쓰겠습니다.

읽어 주신 분들 모두에게 리스펙

꾸준히 좋은 글을 계속해서 써주시는 작가분들 리스펙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글에서 제일 많이 언급된 우리 가족 리스펙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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