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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서우아빠 Oct 30. 2023

어린이집 체육대회 season 2.

둘째도 함께 참여한 첫 번째 대회. 근데 왜 내가 무지하게 힘들지?

작년 가을,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닌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부모가 되어 어린이집 체육대회 행사에 아빠로서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두 돌을 갓 넘긴 아들은 어린이집 체육대회를 상당히 적응하기 힘들어했기에 행사 3시간 중 절반 이상을 내 품에 안겨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오늘 어린이집 체육대회의 핵심 포인트는 딱 2가지였다.

1. 1년 새 많이 큰 우리 첫째가 오늘은 체육대회 행사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인가?
2. 난생처음 참석하는 체육대회에 둘째는 과연 어떤 리액션을 선보일 것인가?

부지런히 걸어서 행사가 진행되는 인근 종합운동장 내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첫째는 작년에 이곳에서 체육대회를 했다면서 대뜸 엄마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와, 나 작년에 여기서 엄청 울었는데?"

됐구나. 오늘은 작년보다 달리 재미있게 놀고 갈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단번에 캐치해 냈다. '왜냐하면 작년에는 내가 비록 울고 즐기지 못했지만 난 올해 많이 컸으니까 재미있게 놀고 갈 수 있어.'라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멘트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둘째는 어떠하였느냐. 둘째는 첫째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부감각에 대한 두려움은 덜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이지는 않기에 아빠 품에 안겨 한참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근본적으로 흥이 많아 신나고 빠른 음악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모습을 선보이기에 처음 참석하는 것치고 상당히 긍정적으로 체육대회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체력이 다소 부족해서 1,2 경기 참여하고는 졸거나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일 것 같아 그에 대한 플랜 B를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오늘 두 아이의 체육대회 참석은 시작부터 해 볼만했다는 것.

가족별 단체 경기답게 확실히 엄마, 아빠가 모든 경기에 참여해서 우리 팀의 승리를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선물의 중요성을 알게 된 첫째는 다른 형, 누나들이 선물 상자를 가지고 갈 때마다 자기도 선물을 가지고 싶다고 어필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어떻게든 선물을 챙겨주고 싶어 그 이후부터 모든 경기에 자발적으로 나가 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마지막 한 끗차로 패배하는 등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아들에게 선물을 줄 수 없었고 마지막 남은 경기인 '아버지 이어달리기'. 이 한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계주 선수에 뽑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축구 동아리 활동을 10년을 했지만 발이 빠르지 않아 윙어나 풀백의 포지션을 소화한 적도 없다. 그만큼 단거리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아들에게 뭐 하나라도 손에 쥐어주기 위해서 계주 선수를 자처했다. 총 10명의 선수 중 7번째로 뛰기로 했고 출발 신호와 함께 다른 아빠들이 정신없이 뛰는 것을 보며 불안감과 초조함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았다. 이윽고 나의 차례가 왔고 배턴을 받자마자 기억나는 것은 없다. 그저 죽어라 달릴 뿐이었다. 한 2~30초 지났을까. 다음 타자에게 배턴을 넘기고 아직까지 우리 팀이 많은 거리 차이로 이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재빠르게 숨을 골랐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다음 타자였던 우리 팀 아빠가 마지막 바퀴인 줄 알고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분위기가 상대팀으로 걷잡을 수 없이 넘어가더니 아쉽게도 내가 속한 팀은 또 패배하였다.

다행히도 모든 참여한 아버지에게 선물 상자 하나씩이 수여되었고 나는 자랑스럽게(?) 아들에게 아빠가 선물을 탔다고 뭐라도 하나 손에 쥐어줄 수 있게 되었다. 전력질주를 오늘 이전에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뛰었고 거의 모든 경기에서 패배의 쓴 맛을 보았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체육대회를 다치지 않고 즐길 수 있어서 의미 있는 하루였다. 학교에서는 늘 체육부장으로서 체육대회를 주관, 진행하느라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학부모의 입장에서 경험하니 나름 꿀팁도 배울 수 있던 하루였던 것 같다. 삼두, 무릎, 허리 등이 너 나 할 것 없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이러한 통증조차도 '가족'이란 이름의 증표라고 생각하고 감내할 생각이다. 그리고 아들, 딸, 여보 그리고 장모님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또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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