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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서우아빠 Nov 14. 2023

어쩌다 맨유가 이 지경까지

이 또한 계절같이 지나갈 것인가

2000년 무선인터넷의 폭발적인 확장과 함께 집집마다 데스크톱이 마련되던 시기. 우리 집에도 '세진컴퓨터랜드'에서 만든 '진돗개 1호' 펜티엄 컴퓨터가 생겼다. 그때만 해도 기사 아저씨가 공짜로 여러 가지 인기 게임을 컴퓨터에 설치해 주셨는데 그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FIFA2000'이었다. 90년대 중반 부잣집이었던 큰집에 명절마다 놀러 가면 도스 게임으로 즐겼던 피파 시리즈가 우리 집에 들어오다니. 그것도 도스가 아닌 완전 3D 인터페이스로. 놀란 가슴을 억누르고 처음으로 고른 팀은 물어볼 것도 없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요즘처럼 케이블 TV가 활성화되어있지도 않고 해외축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대한민국에서 맨유의 인기는 상당했다. EPL 출범 이후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한 팀이기도 하고 종종 해외단신으로 접할 수 있던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환타스틱 한 플레이는 나의 뇌리에 각인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렇게 맨유에 매료된 나는 해외 사이트를 뒤져가며 맨유 육성군에 있는 선수까지 이름을 외울 정도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2002 월드컵 이후에 대한민국 축구게임계를 강타한 CM을 만난 이후로 나의 맨유 사랑은 더욱더 강해졌다.

CM(Championship manager)이란 지금의 FM(Football manager)의 전신 격으로 플레이어가 아닌 감독으로 구단을 관리, 운영하며 선수 출전 및 전술 구성까지 재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축구 게임이다. 물어볼 것도 없이 당시 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했고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로이 킨, 루드 반 니스텔루이 등과 매일 브라운관 속에서 호흡했다.

그 이후 2005년 박지성 선수의 맨유 영입과 함께 mbc espn을 필두로 맨유의 축구중계를 TV로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주말에 할 거 없으면 친구들과 치킨집에 가서 박지성이 나오냐 안 나오느냐를 기대하면서 맨유의 경기를 거의 빠짐없이 시청했다. '리빙 레전드'인 호날두가 '혼자우도'라는 조롱을 받으며 아직 영웅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을 시기부터 말이다. 어찌 되었건 박지성이 2012년 QPR로 이적하기 전까지 맨유의 경기를 보면서 늘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웠던 때가 많았다. 챔스건 리그건 어찌 되었건 우승 아님 준우승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맨유는 그때의 영광이 무색할 정도로 이도저도 아닌 팀으로 전락한 것 같아 아쉽다.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2013년 리그 7위를 할 때 비난받았을 때보다도 훨씬 흔들리는 것 같다. '스페셜 원' 조제 무리뉴도, 레전드 출신 솔샤르도 퍼거슨 감독의 과거를 재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재 감독인 에릭 텐 하흐 체제에서도 선수들의 태업은 물론, 견고하지 못하고 어수선한 플레이가 고질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그래서인지 모처럼만에 복귀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최하위로 처져 있고, 리그에서도 최하위권팀에게 홈에서 간신히 신승을 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단 있는 책임자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수년 째 봐도 여전히 월클급은 아닌 래쉬포드, 마샬은 맨유의 선발급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제이든 산초 같은 선수는 꾸준히 데리고 있어 봤자 폴 포그바의 전철을 밟을 것이 불 보듯 뻔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단 내에 불호령을 내릴 수 있는 '주장'이 없다는 것이 가장 커 보인다.  로이 킨, 마이클 캐릭처럼 솔선수범하고 성실하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대쪽 같은 선수들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맨유의 플레이를 정성스레 챙겨볼 시간이 많이 사라뎠다. 하지만 꼼꼼히 경기 결과 기사를 챙겨 읽고 하이라이트를 살펴보며 팬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는 있다. 하지만 지금의 어수선함과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확실한 골게터의 영입, 카리스마와 성실함으로 무장한 주장 선발이 지금의 난관을 타개할 급선무인 듯싶다. 유스 시스템과 탄탄한 더블 스쿼드 구축은 당연히 병행하면서 말이다.


맹구, 멘까쏭 등으로 끝없이 고통받고 있는 맨유이지만 분명 세계에서 가장 팬층이 두꺼운 팀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퍼거슨 감독시절 영광의 부활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대체 왜 저기서...'라는 코멘트가 단순 일개 팬인 나의 입에서 자주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Concilio et labore (지혜와 헌신)이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플레이가 다시 한번 꾸준히 재현되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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