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그랬을까.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이해력이 조금씩 느려지는 걸까.
다 큰 성인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늘 설명하는 쪽, 이해를 구하는 쪽 입장이 된다.
내 마음을 아무리 전해보아도, 결국 ‘불통’이란 단어 앞에 멈춰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MZ세대인 아이들은 자기 입장이 옳고,
내가 말하는 건 구시대적이고 틀렸다는 듯 선을 긋는다.
나는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결이 다를 뿐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 나 혼자만 상처 입고 물러나는 입장이 되어 있곤 한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날도 작은 다툼이 있었고,
사실 나조차도 내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우기지 말아야 할 순간이었는데,
나는 끝까지 우기고 있었다.
‘나는 그럴 것이다’라는 나의 확신이,
사실은 아집이었다.
그건 단단한 믿음이 아니라,
자기 고집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자기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고,
상대를 이해하려 하기보단 관철시키려 한다.
그 순간, 대화는 끝나버린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엄마는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된다.
가끔은 스스로를 돌아본다.
같은 상황을 단순하게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지름길이 있었을 텐데,
나는 늘 먼 길을 헤매다 뒤늦게 돌아오는 사람 같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생각이 자꾸 느려지는 것 같다.
벌써 이렇게 둔해진 걸까.
아이들이 나를 조금만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다가도,
나 역시 먼저 아이들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쓸모없는 말은 줄이고,
꼭 해야 할 말만 조리 있게 전하는 것.
그게 앞으로 내가 지향할 어른다움이 아닐까.
오늘 밤은 유난히 달빛이 밝다.
스스로를 다잡는 밤이기도 하다.
에필로그
오늘도 말이 어긋났고, 나는 또 입장을 설명하다 지쳐버렸다.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안다.
아이들도, 나도,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걸.
다만 아직은
말보다 마음이 더 서툴러서,
가끔은 서로의 벽을 넘지 못할 뿐.
달빛이 밝은 밤엔
잠시 그 벽 너머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해 본다.
먼저 다가가는 어른이 되자.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용기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