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쌓아 올린 트랜스젠더의 이미지
우리는 항상 과거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 지난날의 사람들이 발견하고 발명한 것들을 답습하며 그들의 과오로부터 세상을 발전시킨다. 우리가 현재 보장받는 인권도 딱 그만큼이다. 과거의 사람들이 저질렀던 수많았던 범죄들과 몇몇의 깨어난 사람들의 행적을 따라온 길이 지금 우리의 위치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망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과거의 대다수의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과거 미국에서 흑인은 버스의 뒷좌석에만 앉을 수 있었던 암묵적인 규칙과 같은 인종차별이 일어날 때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면서 보는 평범한 현상에 대한 의심 따위는 하지 않았으며 배운 만큼만 행하던 사람들은 차별이 차별인지 몰랐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이, 보이는 만큼만이 우리 세상의 전부이며 완전하고 최상은 아니더라도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로 아직도 과거의 관념 아래에서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차별하며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2020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는 미디어를 통해 그려진 트랜스젠더 캐릭터들이 얼마나 진실을 왜곡하고 부풀려졌으며 그 부정적인 재현이 실제 트랜스젠더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할리우드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트랜스젠더들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진실을, 아니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진실을 담담하게 전부 드러내 보인다.
미디어는 고정관념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며 그 고정관념은 너무나도 쉽게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현재 트랜스젠더가 영화 속에서 하나의 주체가 되어서 앞에 나설 수 있는 큰 도약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여전히 차별에 고통받고 살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트랜스젠더들, 그들 스스로의 노출 때문이라고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막연하게 그들의 존재를 자주 비추면 그들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완화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들의 캐릭터를 만드는가, 어떤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가이다. 결국 이야기를 하는 사람, 즉 감독의 관점과 인식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제작된 수많은 텔레비전 시리즈와 영화에서 비춰온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는 한정적이었고 그마저도 매우 부정적이거나 혹은 결말이 좋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이 영화는 그 점들을 꼬집는다. 우리가 어떠한 이유로 영화를 보던 그 시간만큼은 감독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일방적인 소통은 우리에게 그들의 신념을 두 시간 남짓하는 시간 동안 천천히 주입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봐야 한다.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는 관객에게 그렇게 형성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크게 연관 지을 수 없을 것 같던 인종 문제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성별 갈등이 트랜스젠더 시네마에 또다시 등장한다. 근래에 들어 미국 엔터테인먼트들은 주류 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제작한 미디어들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 중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전환한 트랜스젠더는 얼마나 찾아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트랜스 젠더를 다루는 미디어에서 소외되는 트랜스젠더 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트랜스젠더 시네마중 소수는 유명한 영화제의 수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고 상업적인 성공을 얻은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곳에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결국 상을 받았던 그 수상자들은 주류 중에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백인이며 이성애자인 남성이 아녔던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자레드 레토, 대니쉬 걸의 에디 레드메인 모두 훌륭한 연기를 펼쳤고 영화가 시사하고자 하는 바도 물론 잘 알겠지만 결국 그것들의 공은 누구에게로 간 것 일까? 그들이 영화에서 벗어나 시상식에서 멋있게 차려입고 그들 자신으로 돌아가면 관객들은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들을 여전히 남성으로 인식하는 것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단지 그들은 머리를 기르거나 예쁘게 차려입고 화장을 한, 변장한 남성이라는 것에 말이다.
영화의 후반부의 배우 젠 리처드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젠은 여타 다른 트랜스 젠더들이 경험하는 자신이 겪는 모든 일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으며 주변의 불편한 반응을 그저 묵묵히 참고 견뎠으며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괜찮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그녀는 한 텔레비전 쇼에서 한 트랜스젠더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를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유니콘 같은 아이라면서 믿어주고 인정해주는 그 모습을 보고는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고 차분히 이야기한다. 자신의 가까운 주변 인물들도 사실은 그녀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그 아버지처럼,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었지 않았던 것인지, 왜 그들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인지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괴로운 것은 자신이 스스로를 그 아버지가 자식을 보듯이 그렇게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도 우리가 보는 모든 미디아를 함께 보고 있는 관객이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우리가 이루어졌던 그대로 편협적인 미디어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면서 인식하지 못하고 그 사실을 그저 주어진대로 받아들이고 있을 수 있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를 다루고 있지만 더 큰 틀에서는 미디어가 관객에게 심는 관념에 대해서 파헤치고 그저 주어진대로 인식하게 되는 관객들에게 비판적인 사고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