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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의 브런치 Jan 27. 2022

[영화] 인생人生 의 희로애락,한치 앞도 모르는 법

장예모 감독 <인생> 줄거리 리뷰 


1940
부유했던 지주의 자제로 태어났던 푸궤이(福贵)는 도박장에서 세월을 보내는 한량이다. 하지만 한량답게 예술적 소질도 있는지, 가끔 도박장에서 공연하는 그림자극에 직접 공연에 참가하기도 한다. 푸궤이는 아버지와 아내 지아전(家珍)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박을 했고, 도박에 빠진 푸궤이를 견디다 못한 아내는 딸 펑시아(凤霞)를 데리고(아들 요우칭(有庆)을 임신한 채로)집을 나가버린다.

푸궤이의 도박상대였던 룽얼(龍二)은 원래 그림자극을 공연하던 자였는데, 타짜였던지 푸궤이는 계속 그에게 도박에서 진다. 결국 도박빚으로 푸궤이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집문서가 룽얼에게 넘어가고 그 충격으로 푸궤이의 아버지는 사망.

 결국 푸궤이는 거리로 쫓겨나게 된다.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도박을 끊고 노점상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중 지아전과 펑시아, 아들 요우칭이 푸궤이에게 돌아오고, 이들을 먹여살리는 처지의 푸궤이는 밥벌이를 위해 마을을 돌며 그림자극을 하게 된다. 원래는 가게를 열려고 룽얼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사정하지만, 룽얼은 돈을 빌려주지 않고 그림자극을 해보라고 하면서 도구를 빌려줬다. 푸구이는 이전부터 도박장에서 심심풀이로 그림자극을 했기 때문에 예전부터 꾸준히 한 탓인지 그림자극을 직업삼자마자 처음부터 꽤 잘한다.그러나 곧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내전. 국공내전이 시작되자 국민혁명군에게 징집되었다. 여기서 동생을 찾아 국민혁명군에 입대한 촨씨를 알게 된다. 국민혁명군은 참패를 하고 있었고, 부상자들은 치료는 커녕 한곳에 모아두고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촨씨는 홍군은 포로에게 친절하니 홍군이 오면 손들고 저항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느날 푸구이, 전씨와 춘성은 눈 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벌벌 떨다가 춘셩이 어디선가 구해온 코트 덕에 추위를 이겨낸고 잠이 든다. 눈을 뜨니 국민혁명군이 자신들만 남겨두고 후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코트는 촨씨가 찾는 동생의 코트였던 것. 촨씨는 이를 보고 어디서 찾아왔냐고 길길이 날뛰고, 손을 들지 않고 시체 더미를 뒤지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촨씨가 총에 맞는 것을 보고 푸구이와 춘성도 도망치지만, 인민해방군에게 곧 붙잡히고,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사살되지 않았다. 푸궤이는 가지고 있던 그림자극 인형 덕분에 밤에는 해방군 병사들 대상으로 위문공연을 하고 낮에는 보급품 운반이나 대포 미는일 등의 짐꾼 생활을 하며 인민해방군에 종군한다. 

전쟁이 끝나자 푸궤이는 이렇게 인민해방군과 함께 행동했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한 제대군인임을 알리는 증명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함께 포로가 되었던 춘셩은 국민당군 때부터 자동차광이어서 차를 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고, 운전병으로서 홍군에 입대하여 계속 군에 남는다.
어느날 푸구이, 전씨와 춘성은 눈 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벌벌 떨다가 춘셩이 어디선가 구해온 코트 덕에 추위를 이겨내고 잠이 든다. 눈을 뜨니 국민혁명군이 자신들만 남겨두고 후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코트는 촨씨가 찾는 동생의 코트였던 것.


 장예모 감독은 이때부터 영화의 주제의식을 넌지시 드러냈다. 춘셩이 시체에서 구해 온 코트를 통해서 추위를 이겨냈지만, 그 코트는 촨씨가 애타게 찾던 동생 시체의 코트였던 것.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한치 앞을 볼 수도 없고 노력해서도 모른다. 새옹지마, 塞翁之馬 :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 감독은 영화를 보고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인생을 대면하는 자세를 바꿔나간다


1950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푸궤이는 생계를 위해 물배달을 하고 있는 아내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딸 펑시아가 열을 앓다가 농아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푸궤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마을 촌장인 뉴촌장은 푸구이의 집을 차지했던 룽얼이 반동분자로 인민재판에 회부되었음을 알려준다. 이것은 반혁명진압운동의 일환이었다. 룽얼이 인민재판에 회부된 이유는 공산당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롱얼의 대저택(이전 푸궈이의 집)을 인민들의 숙소로 제공할 것과 곡식창고를 열어 인민들에게 분배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격분한 롱얼이 공산당 관리를 폭행하고, 자신의 집과 창고를 싹 다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반혁명 사보타지죄로 기소된 것이다. 이 때 뉴촌장이 "자네 집 목재 참 좋던데? 7일 동안 계속 불탔지" 라고 가볍게 농담을 하자 거기에 푸궤이는 "그거 우리집 목재 아니라. 반혁명자 집 목재죠"라며 둘러대버린다. "도박으로 재산을 뺏기지 않았더라면 내가 저렇게 되었을 것이다."고 생각한 푸궤이는 몸서리치며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룽얼의 인민재판을 구경하던 푸궤이는 갑자기 지주의 아들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자기 도 위험하지 않을까 불안해했고, 마침 사형선고를 받고 끌려가는 롱얼과 잠시 눈을 마주친 뒤 곧장 집으로 뛰어가지아전에게 롱얼의 총살형을 알리고 온 집안을 뒤져 인민해방군의 제대군인 증명서를 허겁지겁 착게 된다. 그러나 그 증명서는 푸궤이의 겉옷 주머니에 들어간 채로 지아전이 세탁하는 중이었다. 푸궤이는 급히 옷을 꺼내 군데군데 찢어진 증명서를 잘 말려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그제서야 안심한다. 
"도박으로 재산을 뺏기지 않았더라면 내가 저렇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푸궤이는 몸서리치며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푸궤이는 자신이 도박으로 잃은 집이 자신의 미래를 살려줄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 아니다.  그의 삶을 후회했다. 도박으로 아버지,아내 그리고 아이들을 떠나보낸 자신의 삶을 슬퍼했으며, 후회했다. 하지만 롱얼의 총살형을 본 후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한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르기에, 감히 예측할 수도 없기에, 우리는 삶 앞에서 무력한 존재이고 단정지을 수 없다. 



1960
 얼마 후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을 일으키게 된다. 푸궤이가 사는 마을 사람들도 좋아라 하면서 집집마다 철 공수를 하여 토법고로를 돌리고 조리기구가 없어지자 난생 처음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이런 환경 속에서 푸궤이의 아들 요우칭은 집에서 염소를 길렀는데, 이를 어찌나 소중히 여기던지 평소에도 근처에 올라가 염소 먹일 풀을 가득 뜯어오고, 학교에 있는 도중에도 집에 뛰어와 염소에게 먹이를 줄 정도였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으로 철 공출이 되며 이 염소 역시 공수되고 마는데, 염소를 보낼 수 없었던 어린 소년은 마을에 염소를 모아놓은 곳까지 따라가서 자신의 염소에게 밥을 주는 일을 계속한다.

대약진운동이 지속되며 어른부터 어린애까지 밤낮으로 혹사 당한다. 이 마을에선 제철생산작업을 하고 있었고, 요우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는 이런 일 때문에 요우칭이 잠이 모자라 너무 피곤해 학교를 가기 싫어했는데 푸궤이는 부득불 아들을 업어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러나 학교에 가서도 담장 밑에서 졸다가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혀 무너진 담 밑에 깔려 사망한다. 그런데 하필 그 트럭에 타고있는 높으신 사람은 국공내전 시기 푸궤이와 그림자극을 같이 하며 다니던 후배인 춘셩으로, 간부인 구장이 되어 마을로 금의환향하려 오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춘셩은 푸궤이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범위에서 보상을 하려고 하지만 푸궤이는 아들을 죽인 춘셩을 용서하지 않는다.


요우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는 이런 일 때문에 요우칭이 잠이 모자라 너무 피곤해 학교를 가기 싫어했는데 푸궤이는 부득불 아들을 업어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러나 학교에 가서도 담장 밑에서 졸다가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혀 무너진 담 밑에 깔려 사망한다. 


또 그렇게 푸궤이와 요우칭의 엄마는 슬퍼하고 후회를 한다. 
피곤하던 애를 그냥 집에서 재웠어야한다고, 요우칭을 차로 쳐서 죽게 한 구장을 원망도 한다. 그를 용서할 생각도, 용서하지도 않는다.
 감독은 주인공에게  알지 못 했기에 바꿀 수 없었던 운명을 던진다.
요우칭이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그는 절대로 학교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조로운 일상이었고 우리는 알지 못 했다. 이렇게 슬퍼하고 후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후회에 잠시 머무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듯, 아무리 후회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선택에 대한 후회에 붙잡혀있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 트럭에 타고있는 높으신 사람은 국공내전 시기 푸궤이와 그림자극을 같이 하며 다니던 후배인 춘셩으로, 간부인 구장이 되어 마을로 금의환향하려 오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춘셩은 푸궤이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범위에서 보상을 하려고 하지만 푸궤이는 아들을 죽인 춘셩을 용서하지 않는다.


인생은 길다. 그리고 많은 인연들을 만난다. 

그렇기에

죽마고우라고 불렸던 사이가 하루아침에 틀어질 수도 있고 

서로 죽일 듯 싸우던 사이가 연인이 될 수도 있다. 

푸궤이와 춘셩의 사이처럼, 


1970
세월이 흘러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뒤흔든다. 푸구이는 예전에 룽얼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을 다 버렸고, 요우칭을 치어 숨지게 한 춘성이 미안한 감정에 푸구이를 좋은 자리에 앉히려고 하지만 이것도 다 거절하고 아내와 함께 물장사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시기를 무사히 보낸다.이 시기에 뉴촌장의 중매로 딸 펑샤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 완얼시(万二喜)와 결혼하게 된다. 완얼시는 원래 선천적 장애가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친후 발을 절게 되었다. 마오쩌둥과 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데다가, 산업재해 피해자로 혜택을 받아서 근로 감독관이 되었다.

이후 푸구이는 사위 얼시로부터 춘셩이 주자파로 찍혀 비투회에 출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춘성은 주자파로 찍혀 모진 고생을 당하고, 아내까지 자살하는 비극이 닥치게 된다. 견딜 수 없게 된 춘셩은 자신의 모든 돈을 푸궤이에게 건네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나 푸궤이는 통장을 다시 돌려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내야 한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도 살아 돌아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려고 하나?'라고 하면서 춘셩을 다독인다. 지아전 또한 돌아가는 춘셩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목숨 하나를 빚졌으니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고 격려해준다한다. 


  이 장면에서 어쩌면 춘셩을 용서해준 것일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푸구이의 슬픔은 무뎌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고통의 아픔을 겪은 연민의 감정에서 기인 한 베풂과 더 이상 슬퍼한다고 요우칭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기에 저런 말을 한 것아닐까?  


펑샤는 만삭이 되어 산통으로 병원에 입원하는데,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기라 병원에 있던 의사이란 의사들은 죄다 반동으로 분류되어 홍위병들이 죄 잡아가 버려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병원에 온 푸구이 가족은 베테랑 스탭이 하나도 없는 상황을 걱정하고, 완얼시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비투회에 끌려가 있던 대학 교수급 전문의 왕교수를 빼와 진료를 보게 하려 하지만, 그는 홍위병의 등쌀에 며칠간 굶어서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본 푸구이는 밖에 나가 만터우를 사와 왕교수에게 준다. 그 와중에 완얼시와 펑시아의 아들은 무사히 태어났다. 왕교수는 허기에 허겁지겁 먹다가 체했고, 이를 본 푸구이는 물을 가져다주지만, 위속에서 만터우가 물을 만나 불어서 혼절한다.
이때 갑자기 펑시아가 산후 출혈을 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인 홍위병 의대생들이 어버버 하고 있는 가운데서 왕교수는 혼절해 있어서 도움을 주지 못해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여기서 재밌는것은 펑시아의 아들은 이름을 만터우로 짓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옛 사람들이 말하길 음식 이름으로 사람 이름을 지으면 염라대왕이 음식으로 착각하고 수명을 일찍 정하지 않아서 그만큼 더 오래 산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홍위병들이 들었다면 봉건사회의 잔재+미신을 믿는 반동이라면서 펄쩍 뛰었을 것이다. 이후 후일담에서 혼절했던 왕교수는 트라우마로 인해 만터우 뿐만 아니라 밀가루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푸궤이 왈 "그럼 쌀만 먹을 텐데, 쌀값은 꽤 비싼데…"


이를 안타깝게 본 푸구이는 밖에 나가 찐빵을 사와 왕교수에게 준다. 그 와중에 완얼시와 펑시아의 아들은 무사히 태어났다. 왕교수는 허기에 허겁지겁 먹다가 체했고, 이를 본 푸구이는 물을 가져다주지만, 위속에서 만터우가 물을 만나 불어서 혼절한다.


다시 한 번,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왕교수가 먹은 찐빵과 물은 몸 속에서 불어서 체하고 혼절하여, 도움을 주지 못 해서

  펑시아가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 

마지막에서도, 감독은 계속 드러낸다. 

인생은 한치 앞도 모른다고,

왕교수는 혼절해 있어서 도움을 주지 못해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이후 후일담에서 혼절했던 왕교수는 트라우마로 인해 만터우 뿐만 아니라 밀가루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푸궤이 왈 "그럼 쌀만 먹을 텐데, 쌀값은 꽤 비싼데…"


이제는 영화 속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은 어느 누구를 원망하지 않으며, 후회하지 않는다. 

푸구이가 찐빵과 물을 가져다 준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왕교수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제 알고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각자 최선의 선택이기에

과거로 돌아간다해도 똑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영화 전반에서 보여주는 푸구이의 삶은 희로애락 喜怒*哀樂 

그 자체를 보여준다.

가족과의 행복함,

원망의 분노,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을 때의 슬픔, 

그림자 극을 할 때의 즐거움

우리의 삶도 이렇다. 

앞을 알 수 없기에 희로애락을 피해갈 수 없다. 

앞을 알 수 없기에 우리의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즉, 앞을 아는 인생이라면 이 4가지 감정 모두 느낄 수 없을 것이다. 

4가지 감정을 피해갈 수도 없으며

슬픔을 느끼게 함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아마, 새옹지마와 희로애락은 필연적인 뜻일 것이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인생

가족

인연

현재

가정 (假定)

과거

운명

필연성

을 중점으로 보면 더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줄거리 출처: 위키피디아

사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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