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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Apr 01. 2020

난 할머니의 사랑한다는 말이 싫다

큰삼촌 이름으로 돈이 입금됐다. 깜짝 놀라 전화를 드리니 외할머니를 바꿔주신다. 우리 애기 결혼 축하한다고, 결혼 준비하는 데 보라고 하신다. 그러곤 "사랑한다" 하셨다.




난 할머니의 사랑한다는 말이 싫다. 이제 그 말을 들을 기회가 몇 번 남지 않았다는 걸 예고하는 것만 같아서다. 휴대폰 너머 할머니의 목소리는 저번보다 작아져 있다. 상상하지 않으려 해도 늙으신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명하게 그려진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항상 무언가를 주시던 기억뿐이다. 찾아뵐 때마다 떡이며 과일이며 고기를 계속 내오셔서이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인생엔 나눔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예전에 외할머니댁은 무료급식소 같은 곳이었다. 주변에 끼니를 굶은 사람이 보이면 무작정 데려와 밥상을 차려주셨고, 서울에서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 친지들을 몇 달이고 집에서 지내게 하셨다. 그래서 섯 식구가 눕기도 좁은 집은 늘 사람들로 복작였다.

김장철이 되면 김치를 오백만 포기쯤 담그시고, 사는데 바빠 김장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곤 한 일주일은 몸져누워 계시다가, 기운을 회복하자마자 다시 부산히 일거리를 찾으시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신혼시절 외할머니댁의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은 월세와 적금 넣기도 빠듯했다. 식비라도 아끼기 위해 부모님은 매일 저녁밥을 외할머니댁에서 해결하셨고, 전철을 타고 한 시간 거리의 인천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쩌면 그때 실컷 먹은 '엄마밥'의 힘으로, 부모님은 고된 시절을 견디셨는지도 모르겠다.


엄만 몸져누운 외할머니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해 언제까지 그렇게 실속 없이 살 거냐며 나무란다. 이제 본인 좀 먼저 챙기라고 말이다. 그럼 할머니는 들은 체도 안 하고 날 보며 "사과 좀 깎아주랴?" 하시는 것이다. 할머니의 눈은 수정처럼 맑다. 그처럼 한결같이 맑은 눈을 난 본 적이 없다.

교회에 나간 지 오래여서 천국에 들일 사람을 선별하는 기준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천국에 단 하나의 자리가 있다면, 그건 우리 외할머니를 위한 자리일 거라 확신한다. 할머니는 실속이 없는 게 아니라 세상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니까. 할머니는 그 자리조차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것이 분명하다.

외할머니의 밥상에 어린 온기는 내 핏속에도 녹아 있다. 난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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