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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r 02. 2020

누가 자꾸 나를 깨운다

난 더 자고 싶은데

알람소리에 화들짝 일어나니 달은 중천에 떠있고 시곗바늘은 새벽 네시를 가리킨다. 알람은 개뿔 도시의 밤은 죽음처럼 고요하다. 오늘따라 청초한 초승달만 모두가 잠든 도시를 내려다본다. 다시 눈을 감아보지만 이미 개운해진 뇌는 정신없이 엔진을 리고 있다. 이쯤 되면 잠은 다 잤다고 봐야 한다.




유난히 잠 못 드는 밤이 있다. 이런 날엔 간신히 의식을 놓았다가도 오늘처럼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신이 들곤 한다.

전조가 있다. 혼자 자취방에서 몸을 눕히면 그날따라 감이 이상한 것이다. 곧이어 침대가 어디론가 떠내려갈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한다.

이럴 땐 똑바로 누워 자면 무조건 가위에 눌린다.

예전엔 잠을 푹 자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는데, 이젠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면 잠을 자지 못한다. 불면증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건만,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오백 마리쯤 세다 보면 삿뽀로에서 먹은 양갈비 육즙이 혀끝을 적시는 느낌이 난데없이 생생해 더더더 잠은 달아나고,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대관령 양떼목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나이를 먹을수록 피로가 충전되는 주기는 짧아지는데, 왜 절실한 잠은 점점 달아나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별로 나을 것 없는 오늘이 반복될 것이 뻔해서, 무의식이 잠들길 거부하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30대 중반의 직장인 주변엔 온갖 전염병이 도사린다. 무기력증, 월요병, 조급증, 화요병, 불안증, 수요병 같은 것들 말이다. 내일에 대한 기대로 잠 못 들던 날은 석기시대처럼 오래다. 석기시대 초콜릿이 유행했던 시절처럼 근심걱정 없이 잠들 수 있는 날은 정녕 다시 오지 않는가.


평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업무상 보내는 이메일 말미에 항상 붙이는 말이다.

별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갈수록 귀해지는 세상이니,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담은 셈이다. 


침대에 누워 보들보들한 이불을 목까지 덮고, 죽부인이나 쿠션을 가랑이 사이에 낀 뒤 비스듬히 옆으로 누웠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안락함이 있다.

그 안락함에 날아가버릴 정도의 괴로움만 남기, 우리의 나머지 하루는 평온하길 바란다.


잠 못 드는 불안이나 잠들어선 안 될 것 같은 죄책감 없이, 오로지 만을 위한 은 잠에 들길 기도한다. 좋은 꿈도 나쁜 꿈도 필요 없다. 깨어 있을 때만큼은 삶처럼 살기 위해, 우린 죽은 듯이 자야 한다.


오늘 당신도 죽은 듯이 잠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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