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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an 02. 2020

신년특집, 다짐 같지 않은 다짐

축하합니다 고라니님. 응모하신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라는 메일이 왔다. 읽어보지 않고 바로 스팸처리를 했다. 이름과 메일주소는 오백만 년 전에 유출됐을 테고, 이벤트 응모 한 적이 없다. 난 공짜를 좋아하지만 당첨 확률 낮은 배팅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기대했다 실망하는 도돌이표 루틴에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어서다.


나이를 먹을수록 뜻밖의 일이 없어진다. 아니, 뜻밖의 기쁜 소식이 없어진다. 온통 병들고 죽었다는 소식, 자의 '삼분의 일' 타의 '삼분의 이'로 회사를 관뒀다는 소식, 속고 속이고 배신하고 배신당했다는 이야기뿐이다.


더러 좋은 소식도 들리지만 나의 기쁨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배가 아파서다. 사촌이 땅을 사고 직장동료가 집을 사고 친구가 차를 산다. 대학동기가 미국에서 박사를 따고 고등학교 선배가 한국은행에 들어가고 중학교 후배는 변호사가 된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동력은 시기와 결핍감이다. 누군가 결승에 한 걸음 다가갈수록, 누군가는 한 걸음 멀어진다. 승자는 없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를 이루었다는 사람을 난 본 적이 없다.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산다는 사람도.


<동백꽃 필 무렵>에서 제시카는 말한다. 힘내라는 소리 말고 부럽다는 소릴 듣고 싶었다고. 동정은 쉽고 동경은 어려우니까. 어쩌면 여태 타인에게 건넨 위로 나의 결핍된 자존감을 채우려는 야비한 이기심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너보 낫다는, 그런 껍데기뿐인 위로를 받고 기운이 날 리 없다. 진심 없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고, 생각보다 쉽게 들킨다.


내일에 대한 기대 없이 살아가는 와중에 '아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나의 존재가 흔들린다. 동경의 대상이 생기면 동정받는 신세로 전락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하나. 머릿속은 뒤죽박죽, 심장은 쿵쾅거린다. 열등감지뢰와 같다. 평소엔 잠잠하다 살짝만 건드려도 터진다.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잠잘 시간을 줄여 전문직 공부나 재테크에 열중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내 존재를 긍정한다'며 정신승리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완료형으로, 난 후자에 가까웠다. 목숨 걸고 무언가를 성취해 본 경험도 없고, 투쟁이 필요한 일은 지레 포기했다. 


증명하기 위해 사는 삶은 십 대에서 끝내고 싶었다 하면 변명처럼 들릴까. 타인의 욕망 내 것인 양 모방하고, 남들과의 비교로 스스로를 초라하게 들고 싶지 않았다. 경제적 이익만을 우선하며 인간적인 삶을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위 문단을 방패 삼아 변화를 거부하고, 쉽게 자족하고, 싸움을 피하던 삶 이젠 끝내 한다. 혼자일 땐 괜찮았지만, 이젠 내가 피하면 내 사람이 다친다. 열등감의 얼굴을 잘 들여다보면 내 가족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남들보다 더'가 아니라 '오늘보다 더'.


사람과 행운과 산타를 믿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도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새해 첫날만큼은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상기돼 있다. 긴장하고 있든 설레고 있든 그 얼굴은 조금은 반짝거린다. 올해도 이들과 나의 삶에 로또 1등은 없겠지만, 내년 첫날도 오늘 같은 얼굴로 시작할 수 있다면 올 한 해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출근길 통근버스에서 새 해 다짐을 한다는 게 엉뚱한 소리만 했다. 올해엔 경품 이벤트 같은 걸 바지런히 참가하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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