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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l 29. 2020

비 오는 날 버스에 타면 마포걸레가 반긴다

평소에는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마포걸레가
비 오는 날엔 유독 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주인공은 파란색 몸통을 가진 기다랗고 깔끔한 놈이다. 걸레답지 않게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녀석은 버스 뒷문 옆자리에 얌전히 걸려 있다.  마걸레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습기를 머금고 부풀어 있는 극세사 부분이 왠지 꺼림칙해서다.




마포걸레를 알아들은 당신은 인천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인천에서는 대걸레를 마포걸레라고 부른다. 이유는 모른다. 인천사람들이 '중국''쭝국'이라고 발음하듯, 마포걸레는 처음부터 마포걸레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교실 청소를 시작한 그부터 말이다.

마포걸레는 인기가 많았다. 우린 빗자루질보다는 걸레질이 쉽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청소당번들은 마포걸레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패배자가 쪼그리고 빗자루질을 할 때, 승리자는 허리를 쭉 펴고 의기양양하게 걸레질을 했다.

하이라이트는 걸레를 빠는 시간이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녀석을 짤순이에 넣고 손잡이를 힘차게 누를 때 쏴- 하고 물이 빠지는 느낌술맛과 커피맛을 몰랐던 초등학생의 심장을 강타하는 알코올이자 카페인 같았다. 그렇다고 물을 한 방울도 안 남게 짜는 건 초보나 하는 실수였다. 복도 한편에 걸레를 거꾸로 세워놓고 은 물기가 노란 햇살을 받으며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묘미였기 때문이다.




마포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점점 회색빛이 됐다. 우리가 가진 세제로는 처음의 새하얗던 속살을 되찾을 방법이 없었다. 마침내 제 몸으로 닦던 바닥보다 더 검어지는 날이 오면, 녀석들은 너덜너덜해진 채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새롭게 투입된 마포걸레들이 풍성한 숱을 뽐내며 빈자리를 채웠다. 아무도 사라진 걸레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제 몸을 더럽혀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마포걸레를 보며 우린 무의식적으로 배웠는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이로운 일은 나 자신에게는 좋을 게 없다는 걸 말이다. 내 소임을 위해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쏟을수록 더 빨리 닳고 금방 교체되, 요령 있게 살아야 한다는 세상의 진리도.


실속 없이 사는 건 태만이고, 본분에 충실하면 미련한 사람 취급받는 세상 산다. 자신의 얼룩을 감추기 위해 타인에게 재를 뿌리는 모습이 일상에서 TV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범람한다. 우린 제 잇속만 챙기는 사람을 이기적이라 욕하지만, 어쩌면 그런 삶이야 말 시대적 가치를 실천하는 표본일지도 모른다. 정직과 진심 이미 힘을 잃었,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로 인정받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마포걸레가 뽀얗던 자신의 과거를 그리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포걸레가 아무리 새하얀  역할 없는 삶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아무리 닦아도 다시 더러워지는 바닥을 보며 수많은 좌절을 겪었을 모른다. 그럼에도 같은 자리를 지키며 바닥을 닦았다.  자신의 몸이 검게 물드는 걸 피하지 않고 충실 살다 사라저들의 삶이 좋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중요한 무언가를 남기고 갔다는 생각이 든다.


피부가 상하고 머리가 빠지는 건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자신을 지키기 급급해 마룻바닥에 나를 던지기를 망설이는 일이다. 선택을 주저하 우물쭈물 대다 누군가 나를 사용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삶은 평온할지언정 멋있지도 재밌지도 않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린 우리의 이 흰색 아니면 검정색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차피 린 매일 조금씩 덧칠된 삶을 살아가니까. 그 색깔에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건 저마다의 몫이다. 피땀눈물에 젖어 축축한 하루를 보내면 어떠랴. 짜내고 말리면 그만데.




무언가에 흠뻑 젖어보지 못하고 희멀건한 색깔로 생 마감한다면 내 삶은 무척 후회스러울 것 같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걸레질을 멈추지 않기를, 축축한 마포걸레를 보며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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